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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과 비르지니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9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 지음, 김현준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평점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09
『 폴과 비르지니 』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 / 휴머니스트
죽음도 불사하는 사랑이 과연 존재할까? 오래도록 의심하였다. 상대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지 매번 확인하고 다시 또 물어보고... 무엇에 대한 불안인지 입 밖으로 사랑을 말하지 않으면 마치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사랑이란 목마름에 고취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정한 연민과 저버릴 수 없는 사랑이 있었으니, 바로 폴과 비르지니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인적이 드문 포르루이 섬... 상처있는 두 여인의 용기있는 성장기를 거쳐 그녀들의 아이에 이르기까지의 거친 여정이 기록되어 있는 <폴과 비르지니>... 프랑스의 섬에 머물면서 자연의 생생한 감동의 현장을 기록하고 계절색의 변화를 그리며 작품을 끄적인 저자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 모리셔스 섬의 초록의 녹지와 저 멀리 보이는 바닷내음이 그대로 밀려오는 듯 했다. 한가로운 전원의 조용한 삶을 기억하게 했고 거친 바다를 통해 상실을 보여준 삶의 굴곡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은 진정한 사랑이었지만 얻고자하는 욕망에 의한 파멸 또한 그려내고 있는 이 책은 적지않은 메세지를 담고 있었다.
그녀들은 언젠가 더욱 행복하게 살아갈 제 자식들이,
유럽의 잔인한 편견에서 멀리 떨어져,
사랑의 기쁨과 평등의 축복을
동시에 누리리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지.
프랑스의 섬... 포르루이... 산의 동쪽 사면엔 폐허가 된 오두막 두 채가 덩그러니 다 쓰러져가듯 외로이 서 있었다. 오두막의 발치에 앉아 그곳을 지나가던 백발 어르신의 발걸음을 붙잡은 누군가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는데... 20년 전에 사람이 살았었지~라며 목소리를 낸 이 책의 화자인 어르신의 이야기로 <폴과 비르지니>의 아프지만 그럼에도 진정한 사랑을 담고 있었던 추억이 재생된다.
노르망디 출신의 라 투르... 지원했던 군 복무가 허사로 돌아가자 사랑하는 여인과의 결혼을 마음먹는다. 부유한 가문의 출신이었던 여자의 집에서 극도로 반대하자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는 이곳으로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던 그가 마다가스카르로 떠난지 얼마되지않아 열병으로 사망했고 포르루이에 남겨진 라 투르 부인은 그렇게 뱃 속에 아이를 품은 과부가 되고 만다.
한편 귀족의 욕정으로 철저하게 이용당한 뒤 버려진 마르그리트... 자신의 과오를 숨기기 위한 피난처로 삼은 곳이 바로 포르루이... 그녀 또한 임신한 상태였고 그렇게 둘의 관계는 연민과 신뢰를 바탕으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두 채의 오두막을 지어 그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 꿨던 두 여인은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것이다. 먼저 출산한 마르그리트는 아들 폴을 낳았고 린 투르 부인은 딸 비르지니를 낳아 두 아이의 미래 또한 설계하며 그곳에서의 풍요로운 삶을 유지했다.
친남매처럼 성장하던 폴과 비르지니의 감정은 날이 갈수록 짙어졌고 가족이란 우애를 넘어 사랑으로 번져 나갔다는 사실... 그러나 세월은 흘렀고 부모는 늙어갔으며 흑인노예 또한 병들어 그들의 생계는 점점 어려워졌다.
죽음은 가장 큰 복 입니다.
그러니 죽음을 바라는 것이 당연하지요.
삶이 하나의 형벌이라면,
응당 그 끝을 염원해야 하는 것이요,
삶이 하나의 시련이라면,
짧게 끝나길 바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라 투르 가문에 홀로 남겨진 이모가 위독한단 소식과 더불어 비르지니에게 자신의 유산을 남기겠노라는 편지가 도착한다. 점점 빈곤해져 갔던 라 투르 부인은 비르지니를 이모님 댁으로 보내기로 하는데... 무엇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생제랑호를 삼켰던 거친 풍랑과 파도는 그들을 어디로 데려갈지... 어쩌면 지금부터가 이 책의 시작일지 모르겠다.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그 속에서 평화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했음을 느끼게했던 소설이다. 두 개의 발췌문에서 보았듯이 그녀들의 희망적인 다짐과 다음의 파멸의 메세지는 상반되어 있다. 이국의 섬과 그곳에서 찾은 행복이 어떻게 무너지기 시작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얼마나 아팠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결국은 진실한 사랑이었음을 전하고 있었던 <폴과 비르지니>는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을 엔딩을 담고 있었다. 지금 당신의 사랑이 그토록 불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