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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의 씨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평점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4
『 석류의 씨 』
이디스 워튼 / 휴머니스트
거짓말이란 입밖으로 꺼내긴 쉬운데 다시 주워담기는 어려운 법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왜 허세에 찌들어 헤어나오질 못하는걸까? 오래전에 인연을 끊어낸 친구가 있다.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결혼했던 예쁘고 착한 친구... 결혼한지 몇년쯤 지났을즈음 난 그 친구의 전화가 점점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졌다. 돈 많은 시부모에 돈 잘 버는 남편자랑까지는 참을 수 있었는데 어느날부터인지 나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인생을 다 살아본 것처럼 그리고 뼛속까지 나를 다 아는 것처럼 도가 지나칠 정도로 내 삶을 간섭하기 시작하는데 너무한다 싶었다. 겹겹이 안좋은 감정이 쌓였던 어느날 문제의 사건이 터졌다. 급한 일이라며 돈을 빌려달라고 전화가 온 것... 긴 사연이 있지만 이 친구는 나를 친구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잘못에 인연을 끊고 말았다. 속상했지만 뒤는 후련했던 것 같다.
<석류의 씨>는 거짓으로 행복을 만들어 내거나 행복하기 위해 거짓된 삶을 살았던 그녀들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단 한편을 제외하고는... 편지 석류의 씨 하녀의 종 은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지만 빗장 지른 문은 후회를 회복하기 위한 거짓같은 자백을 했던 한 남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을 사는 우리의 현실이 진정한 행복을 찾아 향해가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누군가를 속일거라면 철저하게 나 자신조차도 속이며 살아야 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그들에게 정상에서 본 것을 소리쳐 말해주고 싶어 못 견딜때가 있었다.
왜 다른 훌륭한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고 비틀거리는데
자기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이
운 좋게 거기로 향했는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편지>는 뻔한 러브스토리같지만 사랑이 아니어도 살 수 있다는 무언의 메세지를 담고 있었다. 가정교사였던 아가씨와 주인님과의 비밀스런 만남... 낡은 호텔에서 함께 투숙을 하는 친구들은 과연 이런 행복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과는 상관없지만 리지는 누가봐도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라고 쓰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아내가 사망하고 상속문제로 미국을 향하게 되면서 편지로 안부를 묻는데... 얼마지나지 않아 그의 편지가 끊겼다. 절대 그럴리 없을거라 믿었던 그녀는 그대로 무너질 것인가...
<빗장 자른 문>은 내적심리를 자극하여 강박으로 인해 무너지는 인간의 나약함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마지막까지 진실과 거짓에서 한참을 헤매게 했던 이야기였다. 자신이 쓴 희곡작품이 인정받지 못하자 자신은 후회스러운 삶을 살았다며 과거의 죄를 자백하기로 결심한다. 그래니스는 법률 사무소의 변호사, 인베스티게이터의 편집장, 지방판사 등의 지인에게 '조지프 렌먼의 살인사건'의 범인은 자신이라며 자백을 하는데 이들은 정신이 아픈 친구라며 불안정한 심리상태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의 자백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자꾸 부풀려진다는 점... 삶이 후회였다지만 그가 진정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석류의 씨>는 알 수 없는 힘에 한 가정이 휘둘리는 기이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아내 엘시를 잃은 케네스 애슈비는 샬럿과 재혼을 하게 된다.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샬럿은 안전한 사랑이란 믿음으로 그와 결혼을 하게 됐는데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의문의 회색 편지로 조금씩 믿음이 깨지기 시작한다. 남편의 편지를 뜯어보기는 두려웠고 누가 보냈는지 모를 수신인란에는 아주 흐릿한 글씨만이 끄적여 있었다. 더 의심이 갔던 이유는 편지가 오는 날이면 남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는거... 편지를 보낸 이는 과연 누구일지...
<하녀의 종>은 불안한 가정이 가져오는 삶의 몰락을 보여준다. 하녀 일을 찾기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있는 하틀리... 그녀가 앓았던 병때문에 귀족들은 그녀의 고용을 꺼려한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허약한 조카딸을 돌봐달라며 허드슨의 시골집을 소개한다. 어차피 조카 사위는 집을 비우는 일이 많고 음침하긴 하지만 집이 커서 하틀리가 지내기에도 불편함이 없을 거라는데, 이상하게도 브림프턴 부인의 시골집은 암울한 어둠에 휩싸인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한 첫날, 마른 몸에 하얀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와 마주치게 되는데...
모든 단편의 흐릿한 엔딩은 독자를 더욱 안달나게 만들었다. 인간이 가장 느끼기 싫어하는 두려움이란 무기로 마구 쥐고 흔들었던 <석류의 씨>는 의식의 경계를 무참히 무너뜨리고 만다. 모든 시작은 진실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내뱉는 언어에 다를 말이 더해지고 또 부풀어지면서 거짓으로 번져가는 것... 어쩌면 인간은 스스로 몰락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되돌아갈 수 없으니 지금도 괜찮다며 계속해서 자신을 자극하니까... 조건적 삶이 수단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 메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