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여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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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2

『 회색 여인 』

엘리자베스 개스켈 / 휴머니스트




억압받는 여성들의 두려움과 공포는 자신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가정이 있는 여성들에게 찾아오는 우울감은 남편과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가정이 파괴되는 위기를 겪기도 하는데, 당시의 여성은 왜 억압된 삶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뚜렸하게 전달하지 못했을까? 남성의 권위를 무너뜨리면 안된다는 압박 속에 그저 조신하게 행동하며 따르는 것이 그 시대의 여성상이었기에 어쩔수 없었던 것인지... 이러한 상황을 보면 현대여성들은 변화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단단하고 꾸준하게 성장해 온 듯 하다.


어릴적 무척이나 엄격한 가정에서 살았던 나는 아버지의 말씀은 법이며 이를 행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처벌을 받았던 전형적 가부장적 가족이었다. 조금이라도 목소리가 커졌다싶으면 가족 모두 초긴장상태였고 늦은 밤 잠자리에 들 때까지 숨죽여 지내야 했던 어린시절... 어쩌면 나 조차도 어떻게 그 시기를 버텨냈는지 지금에와서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회색 여인」 「마녀 로이스」 「늙은 보모 이야기」 세가지 단편이 들어있는데, 그녀들이 겪어내는 억압된 감정과 드러내지 못하는 두려움 그리고 군중을 선동한 마녀사냥과 대물림되는 공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적지않은 메세지를 선사한다. 전형적인 고딕소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책을 마주하면서 인간의 내면을 억제하는 감정 사이에 앞으로의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삶을 설계해야 할지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다들 그 사람만큼 훌륭한 사람이 없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여자라고 말하게 했지.

그러나 난 그 사람과 있으면서 한 번도 마음 편해본 적이 없었어.

안 오면 왜 안 올까 궁금하면서도 왔다 간 후에는 늘 더 안심됐어.


친구들과 셰런의 제분소에서 커피를 즐기는 중 갑작스레 쏟아진 비에 집안으로 대피한다. 그곳에서 눈에 들어온 초상화 속 여인은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대고모 아나, 바로 '회색 여인'이라 불렸던 여인으로 딸이 사랑하는 남자를 인정할 수 없다며 쓴 장문의 편지문이다. 과연 어떤 사연이길래 오랜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진상을 털어놔야 했을까?


그 제분소는 과거 아나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곳으로 아버지는 공장의 수석 수습생 카를과 아나를 결혼시키려 했다. 카를의 관심은 짜증이 났고 그의 애정표현은 부담스러웠기에 아나는 잠시 그곳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초대로 카를스루에 방문하게 되었고 사교클럽에서 눈에 띄는 멋진 남자와 마주하게 된다. 자신을 '므시외 드 라 투렐'이라 소개한 남자 또한 아나가 싫지 않았는지 친구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고 올때마다 애정가득 담은 시선과 선물공세에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석연치않은 행동과 차가운 말투에 위축되어 조금더 시간을 두고 싶었지만 주위사람들의 지지로 덜컥 결혼을 하게 된 그녀...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으니 남편의 정체가 까발려지는 순간 기겁한 그녀는 도망자의 삶을 살게 된다. 끊임없는 추적에 아름다웠던 그녀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고 뱃속의 아이는 간절히 딸이기만을 바랬는데 이렇게 대물림되다니...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있는걸까?


특히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마녀 로이스'는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어른아이 할 것없이 많은 희생양을 만들었고 틀어진 인간관계의 무서움을 극적으로 보여준 이야기다. 강요로 인한 자백은 신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신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에 의해 처단되고 마는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또한 이런 상황을 적지않게 만나게 되는 것을 보면서 과연 누구를 위한 마녀사냥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했던 이야기였다. 마찬가지로 '늙은 보모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리 과거의 잘못이었다 하더라도 그 원죄는 언젠가 심판을 받게 되리라며, 자신의 악행은 결국 대물림된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내가 잘못하면 자식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



<회색 여인>의 세 단편을 보면서 공통으로 느꼈던 점은 여인의 입을 닫게 했다는 것 그리고 두려움을 극대화시켜 벼랑끝으로 몰았다는 점이다. 더 섬뜩했던 점은 내면의 공포가 대물림된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화를 불러왔다. 왜 이렇게나 억압당했어야 했는지... 지금은 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음지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녀들이 존재하고 있기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이 책을 마주하면 멈출 수 없는 압박에 시달려 끝까지 읽어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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