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의 살의
미키 아키코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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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그녀를 처음 본 순간 그녀는 나에게 꽃이 되었다' 라던지, 느긋한 오후,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중에 문득 문을 열고 걸어오는 남자를 봤는데 '그의 자체발광때문에 눈이 멀 뻔 했다'는 둥... 만약 이렇다면 그들은 인연인가? 그래서 사랑해야 하나? 자신은 원치 않았지만 상대에게 제멋대로 빠져드는 이 마음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지... 알고보니 그는 유부남이었고 그녀는 결혼을 앞둔 여성이었고, 끌리는 마음을 멈출 수 없으니 우리는 로맨스였다라고 주장한다면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그만"하라고 싶다. 냉철하게 판단해서 말 하자면 주위 사람들 싹 다 정리하고 시작하더라도 쉽게 인정 받을 순 없을 것 같다는게 내 생각... 시간이 지나 사랑이 변색뎌지 않는다면 인정해 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기만의 살의>는 로맨스라는 매력적인 가면을 씌우고 거침없이 살의를 드러냈던 추리소설이었다. 얽히고설킨 가계도는 스토리의 흥미를 더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미끼로 충분했고, 반전의 트릭은 추리 소설 속에 또 하나의 추리 작품을 더했다는 사실... 이젠 미스터리 좀 쓴다는 작가의 트릭은 거의 통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추리소설을 소재로 한 기발함은 백톤쯤 되는 해머로 얻어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충격이 컷다. 알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기함하게 만들었던 <기만의 살의>... 정말이지 기똥차게 재미있었다.

 

 

 

 

 

니레 가문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이치로의 사망... 장례를 마친 그의 가족은 저택 안 식당에서 다과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큰딸 사와코가 구역질에 고통을 호소하다 병원에 실려갔지만 이내 사망하고 만다. 그녀가 죽기 전 의사에게 남긴 말 "살려 주세요. 절 죽이려고 해요"... 그 말을 들은 의사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그러는 사이 저택에서 그녀의 양자 요시오도 쓰러져 사망하고 마는데... 그들의 사인은 바로 비소 중독... 사와코는 자신이 마시던 차에서, 그리고 요시오는 바지주머니에 숨겨둔 초콜릿을 먹고 사망.

 

니레 이이치로는 오래도록 의원직을 유지한 가문으로 큰아들은 병사로 사망, 큰딸 사와코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돌계집이란 소릴 듣고 쫓겨나다시피 돌아왔고 둘째딸 도코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다. 데릴사위 하루시게를 중심으로 니레 법무세무사무소를 운영하면서 니레 가문의 후계자로 나서는가 싶었는데 독살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문제는 니레 가문의 얽히고 설킨 관계는 타의적 힘에 의해 형성되었기에 누구하나 의심스럽지 않은 자가 없었다. 다만, 모든 증거의 흔적은 하루시게를 향해 있었고 불륜이 의심되는 사진이 발견되면서 그는 모든 범행을 인정하고 만다. 그렇게 선고된 무기징역...

 

 

이쯤에서 확실히 말씀드리지요.

저는 죄가 없습니다

 

 

 

 

약 40년이 지난 즈음... 가석방이 되어 나온 하루시게는 니레 가문에 홀로 남은 도코에게 편지를 쓴다. 아무 죄도 없는 가족을 희생양 삼아 자신의 무고를 주장할 수 없었던 그는 처자식을 살해한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불륜의 사진은 우리의 마지막 밀회의 사진이었다고..!?!?

 

독자는 <기만의 살의>를 읽는내내 책 속에 들어있는 또 다른 추리소설에 의해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치정관계였던 그들이 주고받은 서신을 통해 독살사건의 전말이 하나씩 드러났고, 첫눈에 반했던 사랑이 연민이 되고 연민의 감정이 커지면서 저 깊숙히 품고 있었던 살의는 친족에게도 거침없었다. 사랑에 목 마른 자가 품었던 연민이라 하기엔 인간만의 도덕적 윤리가 너무나 쉽게 저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허망했다고나 할까? 나이가 들면 사는 날보다 죽음이 더 가까워짐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묻어두었던 한을 드러냈으니 기만의 끝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추리의 정밀기계'란 호평이 전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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