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니카의 황소
한이리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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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있다면 나약해진 인간의 심리를 쥐어잡고 뒤흔드는 일이다. 어떤 제품이 좋다고 하면 몇시간을 기다려서라도 사야 하고 누구하나 먹이삼아 죽일 놈을 만드는 일되 너무나 쉽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이 바로 이성과 감성을 소유한 것인데, 그것을 무기로 조금만 흔들어대도 갈대처럼 뒤바뀌는 인간심리는 그야말로 현혹되기 쉬운 나약한 존재라는 것... 인간을 자극하는 강력한 말 한마디로 타인의 삶을 조종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게르니카의 황소>는 분열된 인간 심리를 겨냥한 잔인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미친 소녀들 편에 서지 않을거야

그러니 난 그 개자식을 내 손으로 직접 처단해야 해

 

 

 

미친 소녀들? 소녀들을 미치게 만든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게르니카의 황소>를 시작하기 전에 비판적 사고를 발동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은 미쳐서 태어나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는 것... 미친 소녀들이 있다는 것은 그 소녀가 성장하면서 미칠 수밖에 없었던 환경적 요인이 있었다는 것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게다가 그 개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처단한다는 결심은 읽는내내 책 속에서 개자식을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 이정도 결심이 섰다면 이 책의 첫 페이지를 과감히 넘겨도 될 것 같다.

 

 

 

 

 

신앙심이 강한 어머니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남편과 딸을 죽이고 자신은 자살하라고... 처음부터 너무나 강렬한 메세지에 책에서 떨어지지않는 손을 부여잡고 한자리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겨버렸다. 어쨌든 어머니는 닭을 자르던 부엌칼을 들고 거실에 있는 한 남자를 해치워 버리고 친구집에 놀러간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열 한살 정도어 일어났던 일이라 하지만 나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양아버지가 해준 말을 전해 들었을뿐...

정신병원에 감금된 어머니는 침대시트를 찢어 목을 맸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나는 당시 정신병원의 부원장인 닥터 칼 번햄의 입양으로 케이트 번햄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사건에 대한 기억이 없던 케이트의 첫 기억은 스페인 여행중에 만난 피카소의 '게르니카'... 무기력한 인간의 비참함을 그린 그림 속 황소는 모든 고통을 담담하게 견뎌내는 듯 했고, 소녀가 처음으로 가지고 싶은 욕심이 들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잔혹한 자의 피를 이어받은 케이트는 양아버지의 전적인 지원으로 평범해지기 위한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다. 문제는 자신의 방 벽에 그려진 황소가 소녀를 광폭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소녀는 반년간 정신병원 신세를 지고 만다.

 

 

미쳐서 그랬다니, 입만 열면 구라야 저년은.

염병할, 뭐가 꿈이고 현실인지 구분할 수가 없으시다? (중략)

개수작 부리지 말고 솔직히 말해, 쌍년아.

내가 한평생 정신병원 독방에 갇혀 있었으니까,

거기서 온종일 그림만 그려대며 죽지 못해 사는 걸 세상은 모르니까,

내 그림들을 훔쳐다 네가 그린 척,

꿈에서 '영감을 얻는' 천재 화가인 척,

온 세상을 속여서 크게 한몫 잡아보려 했다고.

 

 

 

병원에서 나온 케이티는 어느날부터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꿈을 꾸게 된다. 꿈에서는 그리는 게 너무나 쉬웠는데 깨고나면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 기억해 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그녀는 혼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꿈의 잔상이 남았던 어느날, 지금이 기회라며 부지런히 붓을 움직였던 그녀는 찰나의 순간이 지나 눈처럼 새하얀 공백만 남은 캔버스를 마주하게 된다. 꿈이 자신의 그림을 훔쳐갔다며 결국 꿈 속으로 도망치게 된다. 아버지의 정신병원에서 그림을 가르치던 케이트는 아버지가 자신이 다시금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까봐 몰래 도망치다 비명소리를 듣게 된다. 그렇게 찾은 비밀스런 공간... 그리고 나를 노려보는 여자? 아니면 기억나지 않았던 생모? 그도 아니면 무감각한 허상의 인물 '에린'을 만나게 된다.

정신병원 지하의 어느 구석에 감금된 에린은 미친듯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세상에 이목이 쏠릴만큼 작품의 완성도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서로가 원하는 바가 있어 모종의 계약을 한 그녀들은 함께 흔적을 감추고 만다. 그리고 한커풀씩 벗겨지는 비밀은 그녀가 감당하기엔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는 것...

 

어떻게 인간에게 이렇게나 잔인할 수 있는지...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더욱 기함할 수밖에 없었던 건 가면뒤에 숨은 사악한 인간의 본 모습을 봤기때문이다.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 사회 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중적인 악마는 결국 한 인간을 벼랑끝에 몰아세우고 만다. 꿈과 현실의 혼동 속에 케이트가 의지할 수 있었던 건 나 자신밖에 없었고, 그녀는 그렇게 흔적을 지우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깊숙한 곳에 숨고 만다. 안타깝게도 스스로 격리를 시켰던 것이다.

게다가 정신과 레지던트로 아버지의 뒤를 이은 언니, 로스쿨 최우등 졸업으로 뉴욕의 검찰이 된 오빠, 잔혹 범죄자의 딸로 번햄가문의 수치였던 케이트는 투명인간처럼 살아야 했다는 것... 천재성을 가졌다며 그녀를 위한 전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왜 그녀는 자신이 이런 골칫거리라고 생각했을까? 모든 인간은 어느 하나쯤은 결여된 자들로 완벽한 존재라는 것은 없는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조종할 순 없는 법... 최소한의 인간 윤리가 무엇인지, 인간으로서 무엇이 기본이 되야하는 것인지를 되뇌이게 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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