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인데도 늦은 저녁처럼 어둠이 감돌았고 이슬날리듯 비가 흩어뿌리는 날의 교실 안은 무척이나 음산했다. 원래 공부할 마음도 없었겠지만 특히 그런 날엔 집중력도 떨어졌기때문에 교실에 들어오는 선생님마다 무서운 얘기를 들려달라고 졸라댔다. 가물거리는 추억이지만 목소리만큼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아마도 사회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사춘기 또래의 아이들이 모두 그렇듯 감수성과 상상력이 흘러넘쳤던 친구들은 선생님이 들려주는 검은 고양이를 듣고 찢어질듯한 비명에 교실전체가 울려퍼졌었던 기억은 여전히 선명히 살아있다. 긴장한듯한 저음의 목소리와 고양이를 학대하는 절묘한 묘사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다물지 못했던 학창시절의 추억... 그 속의 이야기를 다시금 만나게 되었다.
19세기 최대의 독창가며 추리소설의 창시자라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는 생전에 혹독하고 슬픈 삶을 보냈다고 한다. 일찍 부모룬 잃고 입양된 그는 도박과 술에 찌든 삶을 살았고, 아내의 죽음 뒤엔 더 고독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는데 우울증이 깊어지면서 아편복용과 자살 기도로 빈사상태로 다녔다. 그가 다시 발견됐을 땐 정신착란의 증상으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의 삶 자체가 행적을 드러내지 않았던 삶이었기에 사후에도 미치광이 알코올 중독자라는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
에드거 앨런 포의 4개의 단편이 들어있는 이 책은 인간 내면의 나약함과 악한 감정들을 드러내면서 정신적인 문제 또한 드러내고 있다.
<어셔가의 붕괴>는 죽음을 앞둔 로더릭 어셔의 절박한 편지를 받은 친구가 목격한 사건이다. 직계로 이어진 가문의 어셔가... 이 가문의 음산한 기운은 체질과 관련된 병으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병이라 하는데, 아마도 근친상간으로 인한 가문의 붕괴를 보여주는 듯 하다.
<붉은 죽음의 가면극>은 지금 우리가 겪고있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그린 것으로, 병에 걸리면 온 몸의 구멍으로 피를 쏟으며 죽는다는 일명 '붉은 죽음'으로 불리는 돌림병이다. 그곳의 지주인 프로스페로 공은 이를 피해 외딴 섬의 수도원으로 지인을 대피시켜 성대한 날을 보내게 했다. 모든 곳이 안전하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한 것일까? 기괴스런 분장을 하게 했던 무도회는 자정을 울리는 시계 소리에 맞춰 혼동을 가져다 주는데 그것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검은 고양이>는 위에서 언급한 학창시절의 추억이 깃든 이야기다. 유순하고 다정했던 아이의 변신... 검은 고양이는 마녀가 둔갑했다는 미신이 맞는 것일까? 특히 그가 애정했던 검은 고양이 플루토의 영혼은 결국 알코올의 지배를 이겨내지 못한 남자의 나락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도둑맞은 편지>는 중요한 편지를 되찾기위해 뒤팽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건이었는데, 한 걸음도 움직이지않고 자리에 앉은 상태에서 모종의 추리로 사건을 해결하는 기가막힌 스토리다. 당시 그들의 여유롭지 못한 상황을 비추어 부패의 현장을 마주했던 탓일까?
인간의 정신이 가장 나약해 있을 때,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무너지는 상황을 막아내지 못한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 종교적 위안을 받거나 미신의 힘을 믿으며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으려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만 믿는 인간들에겐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처지라고 하지만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의지를 붙들지 못하는 나약함에 안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추리를 기반으로 쓰여진 이 단편들은 우리에게 읽는 재미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주체인 나를 단단히 붙들라는 메세지를 전해주는 듯 했다. 사악한 자들이 구멍난 마음을 차지하기전에.....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