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과 무척이나 어울리는 표지의 색감은 '백야'의 늦은 저녁을 보여주는 듯 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라는 느낌의 회색빛은 곧 어떤 일이 일어날 듯 했다. 그렇게 페이지를 넘기면 첫 페이지에 '백야' 감상적 소설, 어느 몽상가의 회상 중에서...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마지막 작품 해설을 보니 1848년 집필된 이야기는 잡지에 처음 게재되었지만, 12년뒤 작품집으로 재탄생시키기면서 지나치게 기재했던 감성적인 표현을 수정했다고 한다.
이렇게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 같은 헛된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은 감정의 기복이 그만큼이나 크기도 하다. 좋게 말해 몽상가라고 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아무 생각없이 멍때린다고도 표현하는데, 사실 뇌과학 분야에서는 멍때려야 뇌의 발달을 돕는다고 한다. 바로 기억과 감정을 축적하는 시간이라는데... 거창한 것 같지만 밤거리를 조용히 걷는 걸 좋아하는 고독한 몽상가가 겪었던 짝사랑 순애보가 '백야'의 스토리다. 짧았지만 깊은 연민을 품었고 마주하고 기뻐했지만 아프고 슬펐던 사랑을 옅보고자 한다.
뻬쩨르부르그의 운하를 걷는 나(책 속의 화자)... 젊은 우리였을 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이 밤... 모든 사람들이 외로운 나를 버려두고 떠나고 있기에 아침부터 찾아온 우수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 이러한 표현만 봐도 앞으로 이 책에서 그려낼 감정적 언어는 독자들로 하여금 미리 대비할 시간을 갖게 한다. 책 속의 화자... 나라고 표현한 그는 자존감이 강한 사람인 듯 하다.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고 그에 속한 모는 것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 온다며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을 불러내, 이 도시와 어떤 친분을 맺고 있는지 확인하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어쨌든 우수에 찬 그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도시를 걷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운하 난간에 기대어 있는 여성의 곁을 지나치려다 울음섞인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나도 모르게 '아가씨'라는 목소리를 내어버린다. 놀란 그녀는 자신을 피해 걸어갔지만 술취한 남성과 마주하는 위험에 빠지게 되고 나는 위험으로부터 그녀를 구하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나의 소녀가 된다.
그녀가 슬픈 이유는 떠나간 연인때문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엄격함에 지쳐 있을즈음 다락방에 이사 온 새 하숙인의 친절함에 연민을 느꼈고 결국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녀...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난 그가 돌아왔지만 여지껏 연락이 없다며 슬퍼하는 나는, 마음으로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겉으론 그녀의 사랑을 응원한다. 나는 우정이란 이름으로 그녀와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 과연...
언젠가 어느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마주한 적이 있다. '우정에도 짝사랑이 존재한다'고...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의지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러한 관계 속에서도 마음의 크기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고 이로인해 상처를 받아 자신이 주는만큼 상대방에게도 그만큼의 관심을 원하게 된다면 관계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정도 이럴진데 그것이 동성이 아닌 이성이라면 더욱 상황이 나빠지기 마련이다. 관계를 유지하면서 어느정도의 경계를 세워두고 거리를 두고 있는 그들이지만 거침없는 감정적인 표현에 역시나 갈대마냥 휘둘리는 그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젊은 날의 그였으니 그럼에도 희망의 끈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