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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더 이상 없다 ㅣ S & M (사이카와 & 모에) 시리즈 8
모리 히로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S&M 시리즈'의 여덟번째 스토리... 오래된 영사기가 홀로 돌아가는 듯 이번에 만날 '지금은 더 이상 없다'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척이나 크다. 되돌릴 수 있는 오래된 기억은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는 의중을 품은 것이 아닐까 한다. 누군가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는 아픔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이카와모에 시리즈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기가막힌 트릭으로 하드보일드의 매력을 톡톡히 느끼게 되었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게 다양한 구성으로 기발하게 책과 책 사이를 넘나들고 전혀 아무렇지도 않는 소제목의 구성으로 시작부터 미스터리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엔 의미 없는 프롤로그, 필요 없는 막간, 중요하지 않은 막간, 없어도 되는 막간, 쓸모라고는 없는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흑백의 논리를 따지듯 구성했다. 과거와 현재를 구분한 이번 스토리는 미스터리의 열렬한 팬일지라도 읽는내내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본격적인 추리를 하다가도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 아니면 대화중에 끼어들어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는 상황? 아마도 후자가 가장 어울리는 예시인 듯 하다.
휴가차 찾아 온 별장에 모인 사람들부터 소개해야 겠다. 일단 별장의 주인이자 패션디자이너인 하시즈메 레이지, 그의 아들 세이타로, 가공적인 듯한 외모를 가진 가미야 미스즈, 세이타로의 여자친구인 아사미 유키코와 동생 아스코, 별장의 고용인 다키모토, 그리고 책의 화자인 사사키와 그의 약혼녀 이시노 마리코... 이렇게 총 여덟명이 모여 있다.
많은 사람이 북적대는 게 불편한 사사키는 산책을 나온다. 그러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하는데 그녀가 대뜸 도움을 요청한다. 그녀의 이름은 니시노소노... 고모님과 다툼이 있어 밖으로 튀쳐나왔고 갈 곳이 없다는 그녀는 역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지만 갑작스런 폭풍우때문에 자신이 묵고있는 별장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벌어진 사건... 각각의 다른 방에서 밀실 상태로 두 자매가 사망한다. 폭풍우때문에 모든 연락이 두절되었고 믿을 건 구식 무전기... 다행스럽게도 경찰과 연락이 닿았지만 별장까지 오는 도로가 끊기고 만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니시노소노도 그곳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는데 새벽에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잠을 깼고 사사키를 깨워 사건을 함께 풀어나가기 시작하는데...
사건은 점점 수면으로 가라앉는 듯 했으나 사사키와 니시노소노가 함께 현장을 탐색하다 사사키는 약혼자의 존재를 잊고 니시노소노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말아무는 모습이 꽤나 요염했던 니시노소노는 뛰어난 판단력과 유니크한 매력을 겸비해 그의 이성을 무너트리고만다. 과연 이것은 진실일까?
이성의 무너짐은 책 속의 인물뿐만 아니라 독자의 이성마저도 무참히 뭉개졌다. 처음부터 모에와 사이카와가 자신의 별장으로 향하는 중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이라며 조언을 구하는 상황이었다. 그럼 과거에 모에가 이런 고백을 받았던 것일까? 책 속에서는 이미 나이를 거짓말했다며 사건현장을 계속 그려내고 있었는데 독자는 흑백의 책의 트릭속에서 허우적댔던 것이다. 어쩐지 해설문에 미스터리 작가는 선량한 사람을 속이는 마술사나 사기꾼이라고 표현한 것과 딱 드러맞게 흥미롭고 생각지도 못한 전개로 저자의 진면목을 보여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