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의 '푸른 십자가'는 탐정소설인 듯 하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직관에 관한 내면적 요소를 드러내어 눈에 보이지않는 철학적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물질에 눈이 먼 인간은 소유의 욕구를 저버리지 못하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 탐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선 범죄자들은 다양한 변신을 통해 부유한 이들의 몸짓과 말투를 연습하고 가지각색의 연기로 자신을 감춘다. 이런 노력을 오히려 성실과 열정의 꿈을 좇아 자신만의 성을 이룩하는 것이 옳은데 쉽게 습득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생을 낭비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러한 희대의 도적 플랑보의 행적에 브라운 신부가 항상 따라다니는데 어수룩해 보이지만 직시적 판단에 근거하고 종교적 사명을 띈 브라운 신부는 그를 끊임없이 용서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면서 문제의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경찰청장이면서 최고의 두뇌를 가진 파리의 유명 수사관 발랑탱은 거물급 희대의 도적 플랑보를 뒤쫓는다. 흔히 플랑보를 일컫기를 독창성이 돋보이는 절도를 통해 변신의 귀재라고 하는데 그를 능가하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브라운 신부다.
전형적인 동부의 촌사람으로 보이는 신부는 둥글 넓적한 얼굴에 연신 실수를 하는 바람에 웃음을 참을수 없게 했는데 눈치없는 신부는 자신이 보석 십자가를 가지고 있다고 떠들어댄다. 어쨌든 플랑보가 런던으로 잠입했다는 소식을 들은 발랑탱은 기차에서 내려 허기를 채우러 식당에 들어갔다가 짠 커피를 마시게 된다. 아무리 봐도 소금통엔 설탕이 들어있고 설탕통엔 소금이 들어있어 따지게 되는데 성직자 두 명이 이 사단을 만들었다며 한탄 섞인 한숨을 내쉬었고 이후 발랑탱은 그곳을 시발점으로 그들의 흔적을 뒤밟게 된다. 도대체 두 신부는 흔적을 남기며 이런저런 사고를 저지르는 것일까?
'기묘한 발소리'에선 참된 어부 열 두 명이란 폐쇄적 클럽에서 그들만의 모임을 주최하는데 종업원 또한 인원에 한정을 두어 비밀리에 진행한다. 그곳에서 벌어진 분실사건을 발소리만으로 유추해 범인을 잡아낸다. 이후 플랑보가 최고로 꼽는 성탄절의 마지막 범죄를 그린 '날아다니는 별들'과 과거 구혼자의 의문의 밀실 사건을 그린 '보이지 않는 사랑' 또한 브라운 신부의 예리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선견지명인지 아니면 참회의 결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른 탐정 소설의 사건해결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용서와 회계를 전제하에 도적질한 것을 되받고 앞으로의 바른 삶을 축복하는 그의 해결방법은 현대 범죄자들에게 주는 상생의 기회와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