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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 폴란드에서 온 건반 위의 시인 ㅣ 클래식 클라우드 28
김주영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6월
평점 :
쇼팽을 만나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그의 음악을 찾아 들었다. 그리고 관련된 자료와 기사도 찾아보던 중 '나의 우주는 인간의 영혼과 마음'이라는 말로 그만의 음악세계에 몰두해 있었다. 음악의 낭만파 시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쇼팽은 평생을 피아노곡만 썼을 정도로 건반에 심취되었고 그렇게 건반위의 시인이라 불렸다.
예술가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폴라드에서 태어났고 여러 차례 국토가 분할되면서 프랑스로 향했던 그는 부드러운 선율의 소유자였지만, 고국의 그리움을 표현할 땐 무척 정열적인 음악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유전적으로 몸이 쇠약했던 그는 39년간의 짧은 생을 머물렀지만 약 2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음악은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다.
프랑스어 교사였던 아버지와 폴란드의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 쇼팽의 인생은 이미 예견된 듯 일찌감치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일곱 살의 나이에 '폴로네즈'란 춤곡을 만들어 냈다. 놀라운 사실은 폴로네즈가 즉흥곡으로 탄생했다는 사실... 어린 나이였지만 그의 천재적 창작 활동은 계속되었고 그가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곁을 지켜준 조력자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특히 그의 부모는 성실한 관계를 통해 훌륭한 교사와 기품과 인격을 갖춰야 한다는 조언으로 영향을 줬고 그의 영혼의 친구들도 곁을 지켜주었다.
그랬던 그에게도 아내 상드의 소설로 균열이 생기기도 했다. 소설이 화제가 되었으나 문제는 소설의 내용을 보면 누가봐도 주인공이 상드 자신이고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한 대상이 바로 쇼팽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쇼팽의 친구들은 그를 욕보였다며 상드를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는 아니었지만 결국 그들은 헤어졌고 이후 쇼팽은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세상에 짧게 머물다 간 그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메세지를 기록하기도 했고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준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1년내내 참배객들의 꽃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그의 음악은 지금도 살아서 숨 쉬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