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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볼 때 하은영의 표정은 느슨하지만 집중을 잃지 않았고, 탁자 위에 편안하게 뻗은 연갈색 팔은 건강해 보였다. 한때 쓰는 사람이었던 하은영은 이제 온전히 읽는 사람이 되었구나. 종종 생각했다. 나도 읽는 사람이 되었더라면. 

- 소설 / 주영하 / 아이오와 中 (264쪽)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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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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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을 기점으로 80억 명의 모든 사람들의 정수리 위쪽 50센티미터 가량 지점에 원판이 나타났습니다. 존재하지만 만질 수도 없고 어떤 과학으로도 검증할 수 없는 이 원판은 정의를 상징하는 청색과 부덕을 상징하는 적색 영역으로 이분 되어 있습니다. 이 영역의 비율에 따라 사후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가 정해지는데 비율은 고정 된 것이 아니라 삶의 행적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변화는 개인의 영역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국가적인 동기까지도 참작하여 반영됩니다.

단요 작가의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의 표지엔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이 세계가 망해가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아는데도,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필요한 소설˝이라고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소설 밖의 현실엔 청색과 적색의 원판 모양의 수레바퀴가 없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 확신 할 수 없다는 것이 두렵게만 느껴집니다.

소설을 읽어 갈 수록 늪에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주관적인 ‘나‘는 정의롭다 생각 됩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고 자라 살아가는 곳이 중국이라면, 14억 인구의 거대한 국가에서 태어났다면 수레바퀴의 운명의 색은 좀더 적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이유는 그가 속한 국가가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한편,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는 데 많은 일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잣대로 당신의 죽음 이후의 삶(?)을 판가름 한다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원해서 중국인으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라고 반발심이 안 들겠습니까? 수레바퀴의 색의 비율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직설적으로 행동하라 경고하고 있습니다. 순응하며 살면서, 혜택을 누리고 살면서, 타인이 괴롭힘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이 망해가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중국인이 아니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수레바퀴의 색이 조금은 적색으로 물드는 것은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이 혼란의 소설을 읽어나갑니다.

엉망진창인 세계를 구원할 수 있을 것 같던 수레바퀴가 존재하는 세상은 생각보다 잔인했습니다.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여진 원판을 유지하기 위해 더 악랄한 행위를 일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갱생의 여지가 없는 이들이 경계선에 선 이들을 천국에 보내주겠다며 약속 된 살인을 합니다. 사고 또는 타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수레바퀴의 비율에 어느정도 보정을 받아 천국에 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반전은 소설을 다 읽고 의문부호를 달고 소설의 첫머리로 돌아와 프롤로그를 읽으며 경악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원판을 양분하고 있는 청색과 적색의 비율과 상관 없이 죽음의 순간 원판이 돌아가고, 그위에 존재하던 바늘이 청색에 멈추면 온화한 빛이 영혼을 거두어 가고, 적색에 멈추면 그림자가 갈라지며 앙상한 손들이 영혼을 뜯어내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안타깝게도 바늘이 적색을 가르킨 이의 원판에서 청색의 비중이 9할이 넘어갔음을 발견하게 된다면... 수레바퀴가 운명지은 청색과 적색의 구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세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은 단지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를 소설로 읽지만 미래 세계가 이런 모습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지면서 지금도 최하위인 출생율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책속 어느 분석가의 말이 뼈를 때립니다. 평균적으로 65% 이상이 청색일 때 천국행이 가능한 세상에 과연 나 자신의 청색 비율을 높이기 위해 발버둥칠 시간도 부족한데 아이라니. 이대로 간다면 세계가 망가지는 속도와 함께 결국 이 사회가, 국가가 소멸하는 것은 자명하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습니다.

공정하다는 것, 정의롭다는 것, 평등하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사람(인류)‘이라는 존재 자체로 지구에 온갖 피해를 주고 있으니 완전한 청색의 원판은 존재 할 수 없다는 사실, 그럼에도 자신을 희생해가며 다음 세대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허무하고 비극적인데 그게 어쩌면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공포로 다가오는 소설 입니다.

현실보다 더 어두운 미래를 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합니다. 이로써 제 원판의 색은 조금더 적색을 가지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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