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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 그의 생애와 사역
F. F. 브루스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8년 3월
평점 :
근본적인 기독교 사상과 교리의 뼈대를 세워나간 인물로 사도 바울은 2천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그가 기록한 13권의 신약성경은 복음의 진수를 담고 있는 로마서를 비롯하여 신학적으로나 역사적, 그리고 문학적 가치로 볼 때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과 같은 저작들이다.
이러한 기독교 사상사에 그 출발을 알린 사도 바울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상세하고 풍부한 가르침으로 가득한 본서가 이번에 CH북스를 통해서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개정판으로 독자들을 찾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본서가 가지는 그 무게감은 저자의 이름을 주목하게 될 때 한층 더 묵짐함을 느끼게 만든다. 저자는 다름아닌 '바울 전문가'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저명한 신약학자인 'F.F.브루스' 박사이다.
그렇기에 본서는 여러 신학교에서 바울에 관한 과목의 교재로도 채택되어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그 저작의 가치와 무게감은 상당하다. 책을 받아들었을 때 아마 독자는 기겁을 할 것이다. 우선 500여 페이지 분량의 두꺼운 책의 중량감에서 일차적으로 압도될 것이고, 책장을 펼쳤을 때 한글 9폰트 정도의 깨알같은 글자의 압박에 숨이 막히는 경험을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잠시 숨을 고르고 1장부터 저자가 안내하는 신약시대와 사도 바울의 삶 속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독자는 두꺼운 책의 중량감과 좁쌀같은 글자의 압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은 바로 그러한 외적인 책의 부담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본서 가운데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얻어지는 귀한 체험이다. 로마의 발흥부터 바울의 사상과 역사적인 바울의 평가까지 저자는 단순히 성경의 이야기에서 접할 수 있는 내러티브의 나열이 아닌 바울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그가 기초를 놓기 시작한 기독교 교리와 사상들, 그리고 그가 남긴 지금은 신약 정경으로 인정받고 있는 여러편의 서신서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신학적, 성경적으로 매우 상세히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그리고 기독교 즉, 교회의 시작과 핍박. 그러면서 핍박으로 인한 교회의 흩어짐의 역사를 통해 독자는 그 이면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바라보게 된다. 복음이 유대 땅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 온 땅으로 흩어져야하며 그러한 위대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인물로 하나님께서는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유대교의 교훈과 율법에 정통했던 바울이라는 한 인물을 예비해두신다.
조상들의 유전을 따라 그토록 흠모했던 유대교의 전통 가운데 흠뻑 젖어있었던 시쳇말로 꼴통보수근본주의자라 불릴 수 있는 청년 바울은 유대땅의 예수라는 이단적인 인물로 파생되어진 그의 도(道)를 따르는 자들을 잡아들이고 죽이기 위한 오로지 그 하나의 목적과 사명에 불타서 다메섹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리고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그의 인생의 근간을 송두리채 흔들어놓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사적이고 엄청난 사건을 목도하며 체험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그가 그토록 증오하고 미워하는 이단자들의 괴수,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달려 죽고, 3일만에 부활했다고 들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빛가운데서 만나게 되는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독자는 다메섹에서의 사건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생생한 음성 앞에 거꾸러진 바울이 그곳에서 단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를 따르는 한명의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에 주목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그것은 찬란한 진리의 빛이 바로 그의 어두운 지성의 장막을 뚫고 그의 모든 이성과 의지와 감정의 굳게 닫혀진 문들을 활짝 열어젖히게 만든 그야말로 그의 전인격의 변화를 가져온 형용할 수 없는 신앙적 체험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바울 그가 단순히 한명의 기독교 신자가 된 사실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눈부신 신적 영광과 떨리는 권위 앞에 그 동안 그가 그토록 자신의 의로서 간직한 유대교의 모든 전통과 전승, 율법으로부터 돌아서서 참된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다름 아닌 신학적 회심을 했다는 사실이다. 놀랍지 않은가?
당대 최고의 엘리트, 지성이었던 사도 바울의 회심은 참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그리고 탁월한 선택이자 은혜였다. 스토아 철학이라는 당대 최고의 지성과 사상으로 무장한 그리스,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 앞에 십자가라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지푸라기와 같은 초라한 도(道)를 가지고 당당하게 우뚝 설 수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하거나 따라올 수 없는 명확하고 탁월한 지성과 날카롭고 차가운 이성, 그리고 깊은 신앙적 체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복음을 향한 그의 뜨겁고 순수한 열정만이 로마를 움직였던 당대 최고의 시대 사상과 정면으로 맞짱뜰 수 있는 사람이었음을 아셨던 것이다.
다메섹에서의 복음과 십자가의 도가 바울 그의 전인격을 관통했을 때 결국 바울은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고 경멸했던 역사적 예수와의 조우를 통해 복음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진리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고, 이후 그의 삶은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십자가의 어리석은 도(道)가 드라이브하는 삶을 살아내었던 것이다.
본서를 덮으며 나를 비롯한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된다. 2천년 전 자신을 죽인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유대땅 평범한 청년 예수를 온 인류의 영혼을 위한 구원자로 믿는 십자가의 도(道)야말로 눈뜨고 일어나면 어제의 세상과는 또 다른 변화의 물결이 넘쳐나는 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한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너무나 세련되고 나이스한 이 시대의 조류와 시대 사조 속에서 가장 유치하고 초라한 어리석기 짝이 없는 허무맹랑한 3류 소설과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당시 그리스 로마의 시대가 그랬고, 지금의 시대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독자는 본서를 통해 2천년 전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의 어두운 지성의 장막을 가르고 들어온 찬란한 진리의 빛 앞에 그동안 자신이 신뢰하고 의로서 여겼던 그 모든 최고의 학문과 지식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앞에 한낱 배설물로 고백한 청년 바울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그는 우리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당대 최고의 그리스 로마 스토아 철학자들조차도 상대하기 버거워할 정도의 위대한 지성이었으며 성학이었다. 그런 그가 가장 초라한 유대땅의 예수라는 젊은이가 달려 죽은 십자가 앞에 자신의 전 삶을 드렸다. 그리고 자신의 전 삶을 십자가 복음을 위해 불사르며 마침내는 로마의 박해 때-전승에 의하면-마메르틴 지하 토굴 감옥에서 목베임을 당해 순교한다. 책장을 덮으며 마음이 먹먹해져 온다.
한국교회는 지금 고난주간을 지나고 있다. 복음의 본질이 흐려졌다고 교회 안팎으로 외치는 요즘 본서를 통해 조명되고 있는 바울의 삶과 사역, 그리고 그가 초석을 놓은 주옥같은 기독교 사상들, 무엇보다도 그를 통해 전해진 복음의 순수성이 그립다. 십자가 복음 앞에 자신의 전 삶을 드렸던 2천년 전 노(老)사도의 피를 머금은 외침이 귓가에 멤도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