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놀기 - 스노우캣 드로잉북
스노우캣(권윤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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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매우 자주 기름종이라고 불리는 '트레이싱 페이퍼'를 대고 글자도 따라 쓰고, 지도도 따라 그리는 등의 학습 활동을 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보통 한장의 50원이면 살 수 있었던 기름종이를 가지고 마음 먹고 그림과 글자를 그리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 때의 추억이 되살아나게 만들어 준 워크북 한권을 만난다.

'스노우캣 드로잉북'

눈처럼 하얀 익살스러운 고양이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분한 본서는 말 그대로 기름종이를 원본의 그림에 대고 드로잉하는 워크북으로서 전체의 구성은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스노우캣의 여러가지 동작과 장면들을 단순하게 따라그리면 되는 매우 단순한 작업이 주를 이루는 책의 전반부와 좌측면에 제시되어진 일정한 스토리를 읽고 우측면의 빈공간에 독자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 그림을 그려넣는 창작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책의 후반부가 바로 그것이다. 즉 모방과 창작이라는 두개의 컨셉으로 기획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차피 창작은 모방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책이 도착하자마자 7세 아이와 함께 모방과 창작의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모든 그리기 작업을 혼자 완수하겠다는 욕심 가득한 아이를 구슬러 몇 장 겨우 얻어내어 선을 따라 그리다보니 어느새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 속 코흘리개 초등학생이 되어 버린 듯 하다. 본서는 가능한 비뚤어지지 않게 선을 따라 그리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그만큼 집중력과 주의력을 요구하고, 손가락의 협응능력을 필요로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그림으로 시작하지만 책장을 넘길 수록 난이도 있는 원본 그림들이 등장한다. 손쉬운 그림을 통해서 워밍업을 한 후 점차 복잡한 그림에 도전하도록 만든 제작 의도가 엿보인다. 순식간에 몇장의 그림을 그리고 난 후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아이의 눈치(?)를 보며 한장 넘겨받아 눈을 부릅뜨고 손가락에 힘을 줘 선을 따라가 본다. 어느 새 원본의 그림이 기름종이 위에 본 모습을 드러날 때의 그 작은 희열은 트레이싱 페이퍼 드로잉이 가져다 주는 소소한 기쁨이며 즐거움이다.

 

앉은 자리에서 함께 몇장의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 만큼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없다. 간혹 몇장을 얻어서 그리는 처지가 되었지만 말없이 제법 진지하게 집중력을 발휘하는 아이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그 시간은 본서가 가져다주는 아이와 아빠의 보이지 않는 라포 형성이라는 보너스적인 선물이다.

후반부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그림을 그려내야 하는 작업은 워낙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없기에 부끄러워서 리뷰 사진에 담을 수 없었다. 그러나 후반부의 작업 또한 아이와 함께 대화를 하며 하나 하나의 삽화를 채워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익살스러운 하얀 고양이 스노우캣의 다양한 동작과 표정, 스토리를 포함한 장면들의 선을 따라 그리기 시작할 때 모방을 어머니로 한 작품이 탄생한다. 그리고 독자는 원본이 주는 혜택을 온전히 자신의 손놀림을 통해 아무것도 없는 노란 기름종이라는 무의 공간 속에 풀어놓음으로서 유형의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창조의 과정을 경험한다.

단순히 선을 따라 그리는 추억의 놀이와 같은 워크북 그 이상이다. 트레이싱 페이퍼 드로잉북 그 자체는 바로 점과 선이라는 1차원적 단순성을 통해 2차원이라는 평면적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점과 선의 미학을 가장 단순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해주는 매체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족이라는 더할나위 없는 사랑스러운 존재들과의 시간의 공간 속에서 이루어질 때 그것은 바로 독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시혜를 베푸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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