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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의학자 - 의학의 눈으로 명화를 해부하다 ㅣ 미술관에 간 지식인
박광혁 지음 / 어바웃어북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 본서가 매우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이라는 것으로 서평의 서두를 시작해본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미술과 의학이라는 두 분야는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전혀 연관성이 없는 학문이고 분야들이다. 그렇기에 본서를 접했을 때 약간의 의구심으로 저자가 미술과 의학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뚱한 소재를 어떻게 접목시키고 집필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고 나아갈지가 관심의 주된 초점이었다.
소화기 내과 전문의로서 저자가 가진 해박하고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인류 역사를 통해 특별히 중세와 근대 유럽 사회 예술의 꽃을 피웠던 너무나도 유명한 예술가들의 캔버스에 남겨진 위대한 작품들 속에 풀어놓는 과정을 지켜볼 때 독자는 그 전혀 관련 없을법한 두 분야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에 탄성과 함께 그 재미와 흥미로움 속에 깊이 침잠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류 의학의 눈부신 발달을 가져온 것이 다름아닌 해부용 사체 '카데바'라는 사실을 화폭 속에서 찾아내고, 쑥을 주원료로 만든 압생트라는 가난한 노동자의 술을 통해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작품 속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며, 중세 유럽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내몬 무서운 전염병 '페스트' 와 관련된 작품 속에서 인간의 무기력함의 레토릭을 발견하는 등 그의 작업은 저자가 의사가 아닌 미술학자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그의 미술 작품에 대한 해박하고 전문적인 지식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곧바로 저자가 우리같은 범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의학지식을 소유한 전문의이기 때문에 본서와 같은 저작이 탄생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따뜻하고 격정적인 예술의 세계와 차갑고 이성적인 의학이라는 학문의 만남은 결코 외적으로 어울리지 않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결과물들을 창조해낸다. 그리고 본서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본서가 독자에게 주는 더 깊은 깨달음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예술과 의학이 모두 인간에 대한 학문과 분야라는 사실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인간과 함께 숨을 쉬고 함께 먹고 마시며 희노애락을 공유했던 모든 인간사의 소소한 일상이 한폭의 예술 작품으로 남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쓰라림, 마음 속 어두움과 죽음에의 공포까지 의학이 맞닥뜨려야하고 만나야만 하는 모든 현실적이고 현재적 아픔 모두 그 주인공은 바로 우리 인간들이라는 사실에 대한 발견!
본서의 전체를 관통하는 인간사에 대한 고뇌와 슬픔, 그리고 생존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과 갈증이 한 의학자의 예리하고 차가운 지성과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펜을 통해 펼쳐짐을 바라 볼 때 독자는 작은 캔버스와 이젤을 벗어나 한편의 잘 짜여진 인문학 저작 한권을 만나게 되는 흥분을 맞보게 될 것이다. 열정적인 예술의 세계와 차갑고 이성적이며 지성적인 의학의 세계가 혈관 속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의학자의 광범위한 시각 속에서 교차되고 교류하는 모습 그 자체는 종이로서 이루어진 책만이 줄 수 있는 본서가 독자들에게 베푸는 시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