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가문 이야기 - 르네상스의 주역 현대지성 클래식 14
G.F. 영 지음, 이길상 옮김 / 현대지성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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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 들어서 만난 책 중에 가장 흥미롭고 매력적인 저작 한권을 만났다. 독자로 하여금 읽으면서 다음 펼쳐질 줄거리를 기대하게 만드는 책만이 가지는 그 원초적 마력을 지닌 책을 정말 오랫만에 만난다. 본서는 우리에게 르네상스로 알려져 있는 15세기 유럽의 문화적 부흥의 숨은 원동력과 토대를 마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사적 고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는데 그들은 다름아닌 15세기 말 이탈리아 피렌체의 중산층 메디치가 사람들이다. 

중세 유럽, 특별히 이탈리아의 상황은 여러 도시국가들이 자체적인 정치 체제를 가지고 그들만의 정부로 나라를 운영하던 시기였으며 이때 메디치가는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의 중산층 가문으로 출발하지만 은행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토대로 피렌체에서 정치적 막후 실세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자신들의 입지를 넓혀간다. 메디치 가문을 통한 문예부흥은 보티첼리, 도나텔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의 위대한 예술가들을 발굴해 내었고, 그들의 손을 통한 셀 수 없는 예술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또한 수 많은 시인, 학자들과 같은 지성인들을 지원했고, 그들의 연구를 후원했다. 이로써 인문주의의 기틀은 확립되기 시작했으며 중소 상공인의 등장과 그에 따른 중류층의 성장, 인쇄술의 발달로 인한 고전 문헌의 전파와 발굴, 정치의식의 변화, 민족주의의 대두와 같은 시대 조류의 크고 작은 물길을 내는데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서는 메디치가를 탄생시킨 조반니 디 비치를 시작으로 장자 코시모와 차자인 로렌초 계열을 1부와 2부로 크게 나누어 이야기한다. 특별히 장자 코시모와 그의 아들 피에로 일 고토소, 위대한 자 로렌초까지의 이야기는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어떠한 지위와 역할을 감당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후원한 예술가들과 학문적 업적은 어떠했는지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메디치가의 정체성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비단 이들에 대한 관심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르네상스라는 인류 역사와 문명 발전의 한축을 담당한 거대한 사조의 기반을 마련하도록 자양분을 공급한 부유한 가문 정도로의 관심으로 그칠 수 없음은 이 가문을 이끌었던 그들의 정치신념과 시대를 읽는 눈이 가진 독특함 때문일 것이다.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대다수 사람들이 계몽과는 거리가 먼 중세의 무지와 지적 암흑 가운데 있었던 이 야만의 시대 속에서 무력이 아닌 단지 본인들의 허영심 없는 겸손과 고결한 인품, 그에 따라 주어진 인기와 호감으로서만 피렌체의 실질적인 지배 세력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을 따름이다. 어쩌면 저자가 일방적으로 메디치 가문의 평가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편파적 입장으로 본서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의심될 정도로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메디치 가문 사람들의 피렌체에서의 위치와 역할은 가히 놀랍기만 하다. 더불어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는 정적들의 수차례에 걸친 공격을 견뎌내며 급기야는 그 정적까지도 끌어 안을 수 있었던 그들의 관대함은 자신들이 벌어들인 수 많은 유형적 자산을 인류의 찬란한 지적 자산으로 환전시킬 수 있었던 모습을 통해서 동일하게 입증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본서를 읽는동안 '와! 이 책 대박! 기가 막히구만!" 이라는 마치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의 외침을 단말마처럼 시도때도 없이 내밷는 본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특별히 메디치 가문에서 배출한 최초의 교황이었던 레오 10세(조반니)가 등장하는 부분은 눈을 의심케 만들기에 충분했다. 레오 10세는 1513년 교황의 자리에 오른다. 그때가 언제인가? 바로 지금 한국교회가 이야기하고 있는 1517년 종교개혁을 불과 4년 앞둔 시점이었으며 이 레오 10세는 다름아닌 종교개혁이라는 태풍의 눈 한가운데 서 있었던 교황이었다.

즉, 서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던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람이 메디치 가문이 배출한 위대한 자 로렌초의 아들 교황 레오 10세(조반니)였다는 것이다. 물론 종교개혁은 레오 10세 이전부터 로마 카톨릭의 부패한 교권주의로 인해 언젠가는 터질 수 밖에 없는 시한폭탄과 같은 필연성을 가진 이슈였지만 그 시작의 심지에 불을 당긴 사람이 바로 면죄부 판매를 본격화한 레오 10세였다는 점은 결코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성공되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 되어 준 당시의 사상적 배경과 시대정신이 다름아닌 르네상스 인문주의였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일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축적된 부를 이용하여 문학과 학문, 예술의 부흥기를 가져옴으로서 인문주의 시대를 열었던 메디치 가문은 자신들이 배출한 교황 레오 10세로 인해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고, 그 종교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도록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상적 배경과 토대가 바로 그들이 엄청난 재산을 투자하며 애써 발굴해내었던 고대 문헌, 인쇄술의 발달로 인한 수 많은 도서의 보급과 지식 전파와 같은 인문주의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필자는 온 몸에 비늘이 돋는 듯한 전율을 경험했다. 역사적 우연성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는 역사는 반복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인과관계로 영향을 미친다고도 볼 수 있지만 필자는 한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메디치라는 중세 피렌체의 평범한 가문을 준비하여 사용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의 세미한 빛줄기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낀다.

 자인 G.F.영은 시종 메디치가문이 인류역사에 남긴 훌륭하고 유수한 전통과 업적을 밝게 조명하고 변론한다. 나는 가능하면 중립적 배심원의 입장에서 책을 읽어내려가기 위해 노력했고, 분명 그들에 대한 평가는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어느 누구나 역사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면 벌거벗은 전라의 모습으로 공과를 판단받게 되어 있다. 그것은 메디치 가문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중세 암흑의 무지로 점철된 짐승같은 시대에 350년이라는 시간동안 인류 지성의 고양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예술과 학문의 제단 위 타오르는 불꽃 앞에 아낌없이 내어주었던 그들의 몸이 바스라지는 헌신과 열정은 분명 21세기 첨단 문화의 시대를 향유하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감사와 부인할 수 없는 빚진 자의 겸허함을 요구한다.

 

p.s. 책의 내용 가운데 로마 교황의 수위권 주장이 허구임을 밝힌 기독교 인문주의자 '로렌조 발라',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로부터 추방당한 대공위 시대에 잠시 피렌체를 다스렸던 중세의 세례 요한 '기보나 사보나롤라'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발견하는 것은 본서를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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