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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
빅터 프랭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50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수백만 부가 팔린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인간 존재의 참된 의미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이들을 통해 새로운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충격적 저작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완독 후 한동안 넋을 잃고 상념에 젖었던 기억이 있다. 책 한 권이 던지는 메시지의 후폭풍이 그렇게 클 줄 예상치 못했기에 사유의 갈피를 잃었던 경험이다.
아내, 부모, 남동생이 학살되었고, 여동생과 자신만 살아남았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생지옥에서 생환한 저자 '빅터 프랭클' 박사의 어조가 너무나 담담했기에 소름 돋았다. 그런 그가 생전에 강연한 네 편의 글이 하나로 엮여져 <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 지음 / 북하우스 펴냄>라는 작품으로 세상에 나왔다.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아비규환의 현장 속 저자가 깨달은 사유의 총체는 전작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밀도 있게 녹아져 있다. 반면 후속작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믿기 힘든 광기의 시대 속 인간 실존의 진짜 의미를 찾고 바른 삶에의 방향을 제시하는 저자의 지성적 혜안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인간이 인간을 푸줏간 고깃덩어리로 취급한 강제수용소의 현장 속에서 '의미'라는 기괴한 명제를 제시했다. 당장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가스실로 들어가 한 덩어리의 시신으로 분하는 공허의 현장 속 의미를 찾는 행위는 그야말로 넌센스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이러한 해괴한 의미 찾기는 '로고 테라피'라는 정신심리학적 기법으로 명명되었다. 그 현장이 바로 지옥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포기치 않는 갈망과 그로 인한 살아야 할 이유와 의미를 되새긴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까지 살아남더라는 것!
사람은 살아야 할 의미를 상실할 때 살아갈 생의 의지를 잃는다. 반면 살아야 할 실낱같은 이유와 명확한 의미를 붙잡은 이들은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서 아리아드네의 실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무사 귀환할 수 있었던 테세우스와 같이 아수라의 현장 속에서 인간 세상으로 생환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시대를 의미 상실의 세대로 진단한다. 살아야 할 참된 의미를 상실한 현대인의 대표적 보상 기제는 쾌락이다. 더불어 공허함은 채움을 갈망하기에 진짜 삶의 의미와 의지를 잃어버린 이들은 인생이 어찌할 수 없다는 숙명론적 태도와 대충 살아가는 삶의 행태를 보이고, 소망이 없는 극강의 허무와 공허함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깊이 배어 나온다.
프랭클 박사의 캐나다 방송 협회 TV 인터뷰 녹취록 또한 흥미롭다. TV 강연 사회자는 저자의 '로고 테라피'가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가 묻는다. 돌아온 답변은 생의 의지와 의미에 관한 저자의 깊은 철학적 사유는 이미 그가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 탄생했고, 수용소에서의 경험이 오히려 그의 정신심리학 이론을 체계화시키며 그의 확신에 정당성을 부여한 임상의 현장이었음을 말한다.
저자가 삶의 의미를 타의에 의해 송두리째 강탈당하는 경험을 자신의 정신심리학 이론을 확증, 발전시키는 기회로 선용했다는 점이 믿기지 않는다. 수용소 동료들과 자신의 삶으로 입증한 '로고 테라피'는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깊은 영감과 생의 의지를 일깨운 훌륭한 교보재가 된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아우슈비츠가 있다."라고 말한 저자의 통찰 또한 예리하다. 참된 의미를 상실한 시대 속 쾌락과 물질적 풍요만을 좇는 현대인의 텅 빈 사고와 공허한 심상은 그 자체가 아우슈비츠다.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사유함을 고통스러워하는 세대 속 인간 실존이 보이는 삶의 양상은 천사 아니면 악마다. 프랭클 박사 또한 인간은 두 부류가 있는데 품위 있는 인간과 품위 없는 인간이 그것임을 역설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사유하며 사회적 연대 책임에 대한 의무를 신성시하는 품위 있는 인간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의 앞날은 밝다. 인간의 유한성과 필멸성이 인정될 때 잘못에 대한 책임은 강조된다. 시간이 없기에 그렇다. 반면 인간 실존의 불멸성이 강조되면 집단의 과오와 시대적 아픔에 대한 책임은 희석된다. 분명 모두 다 죽지만 영원히 살 것이라는 착각이 집단 책임의 짐을 가볍게 만들기에 그렇다.
타자의 아픔과 책임, 공감 능력의 상실은 별다방 논란으로 사회를 시끄럽게 만든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며 이는 곧 본서에서 빅터 프랭클이 말한 품위 없는 인간이 존재하는 사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실례다.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관한 농도 짙은 사유의 작업을 행할 수 있는 <죽음의 수용소 이후>를 통해 품위 있는 인간상에 한걸음 더 다가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