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두 도시 이야기 ㅣ 현대지성 클래식 71
찰스 디킨스 지음, 정회성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1월
평점 :

성탄절이 다가온다.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선과 악의 극명한 대립, 궁극적 선의 승리와 환희로 가득한 이맘때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올리버 트위스트>, <오래된 골동품 상점>은 어떤가? 시대가 갖는 음울함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디킨스식 조명과 해석이 놀랄만한 수작이다. 구두약 공장에서의 가난한 시절을 보낸 디킨스의 작품 저변에는 뒤틀려 기괴해진 사회의 제도적 모순과 불합리함, 부조리한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짙다.
이번에 만난 <두 도시 이야기 / 찰스 디킨스 지음 / 현대지성 펴냄>는 혼돈의 시대 속 다양한 인간 군상의 속살을 세밀하게 읽어낸 디킨스의 문학적 천재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디킨스는 18세기 중후반 영국과 프랑스를 배경으로 몇몇 주요 인물들의 삶과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하나의 잘 짜인 역사소설이라는 직조물을 탄생시켰다.
그 안에는 불합리하고 부정의한 시대의 사회적 모순과 병폐가 고스란히 녹아져있으며 그 와중에 배태된 인간애와 자유, 평등의 혁명적 요소가 양념처럼 가미되었다.
이야기는 영국 텔슨 은행 직원 로리가 18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가 풀려난 옛 친구 마네트 박사를 만나러 가는 여정으로 시작된다. 마네트 박사와 아름다운 딸 루시의 재회, 첩자 혐의를 받고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서 구명된 정의로운 프랑스 귀족 찰스 다네이와 그의 석방을 도운 방탕하지만 내면에 따뜻함을 지닌 시드니 카턴, 마네트 박사의 조력자 역할을 했던 혁명가 드파르주 등 다양한 인물들이 서로에게 중첩되어 프랑스 대혁명의 물줄기 속에 내포된 인간 본성의 참된 의미라는 전체적인 거대 서사를 이뤄간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광장 한가운데를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와 같이 달리던 사륜 마차가 급기야 어린아이를 치어 죽인다. 마차의 주인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잔혹한 프랑스 귀족 에브레몽 후작이며 피해자는 힘없는 민초의 어린 아들이다.
아들의 허망한 죽음에 울부짖는 아비 앞에 금화 한 닢을 경멸하듯 던지고 사라지는 잔인하고 오만한 에브레몽 후작은 당시 프랑스 귀족 사회의 위상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형적 인물이다.
철저한 계급 사회 속 힘없는 백성이 성직자, 왕족, 귀족을 위한 부속품으로 여겨진 시대 속 그들은 소모품일 뿐이다. 억압은 폭력을 부른다. 프랑스 대혁명은 예견된 사건이었고, 짓밟힘 속 참된 인간성의 회복이며 폭정과 압제에 대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이 와중에 정의와 평등이라는 확신을 담지한 청년 귀족 찰스 다네이와 다소 속물적이지만 내면에는 깊은 박애를 간직한 청년 변호사 시드니 카턴은 투명한 영혼의 소유자이며 모든 남성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아가씨 루시를 동시에 사랑하는 연적으로 등장한다.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마네트 박사 일가와 찰스 다네이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지만 시드니 카턴의 믿을 수 없는 사랑과 희생, 헌신이 마네트 박사 가족을 죽음의 순간에서 건져내는 기적을 만든다.

책을 덮으며 묘하게 오버랩 되는 책 한 권이 있으니 다름 아닌 성경이다. 디킨스의 종교적 배경이 성공회에 있기에 사랑과 희생, 헌신이라는 기독교적 수사가 작품 기저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종교 소설은 아니니 걱정은 마시라!
다만 시드니 카턴이 자신의 삶을 던져 인류를 구원한 성경 속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일종의 복음적 메타포라는 사실을 민감한 독자라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주요 메시지 중 하나는 시대의 간극을 넘어 인류 역사의 모든 장면 속에 내재한 사회적 불평등과 불합리함, 부정의에 대한 강력한 고발이며 비판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병든 사회는 이 시대의 전형이다.
그렇기에 귀족들이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민초의 고혈을 짜낸 그때나 힘을 가진 1%의 기득권이 전체 부의 98%를 소유한 지금의 시대가 묘하게 오버랩됨은 전혀 생경하지 않다.
더불어 인간애가 실종된 당시 프랑스의 암울한 사회적 배경을 통해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실낱같은 사랑과 희생의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카턴이라는 인물을 통해 시사한 것은 디킨스가 가진 민중에 대한 문학적 존중이며 예의다.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다."라는 첫 문장 속 짙게 깔린 인간 본성의 추악함과 중생한 본성의 참됨을 시대의 수면 위로 끌어올렸기에 원제는 <두 도시 이야기>이지만 <두 시대 이야기>도 제법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