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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 ㅣ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우스이 류이치로 지음,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커피 그라인더의 진동음과 드립 커피의 진한 커피향이 온몸의 오감을 자극한다. 어느새 아침 루틴이 되어버린 일상의 모습이다. 쌉싸름한 드립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한 권의 책을 편다.
<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 / 우스이 류이치로 지음 / 사람과나무사이 펴냄>는 제목 그대로 커피가 세계 역사를 바꾼 비하인드 스토리로 가득한 작품이다. 도쿄대학 명예교수인 저자는 본서를 통해 전 세계인의 공통 기호식품인 커피를 주인공으로 세계 역사를 조망하는 폭넓은 교양 지식을 선보인다.
책에는 검은 음료 커피가 이제 우리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며 사랑받게 된 그 이면에 숨겨진 흥미롭고 다양한 이야기가 빼곡하다. 그렇기에 한번 펼치면 커피의 중독성만큼 대단한 가독성을 지닌 저작이다.
커피의 기원부터 커피가 어떻게 유럽 사회로 흘러들어갔고, 영국과 프랑스, 독일과 같은 나라들에서 각국의 역사적 흐름을 바꾸는 굵직한 사건의 단초가 되었는가를 서술하는 내용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다. 간만에 독서를 통해 뇌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커피는 이슬람의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교도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기원설이 있다. 수피교 수도사들은 밤마다 행하는 예배 의식 중 쏟아지는 졸음에 힘겨워했는데 마침 커피의 잠을 쫓는 효능이 이들에게는 양약과 같이 다가왔다. 잠을 쫓고, 식욕을 억제하는 등 인간의 원초적 욕망의 제거가 수피교도들의 수행 정진의 덕목이었기에 이들에게 커피는 인간 본능의 억제 수단이었다.
이러한 커피 효능의 발견이 예멘 커피 상인들의 상업자본이 되어갔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대단지 커피 플랜테이션을 조성하여 아라비아와 이슬람의 커피 독점을 빠르게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커피 플랜테이션으로 인해 자바섬 주민들의 생활상은 비참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원주민들에게 있어 벼 대신 커피나무를 재배하는 농업 구조의 전환은 기아와 빈곤이라는 반인륜적 열매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커피나무는 가진 자들의 욕망 아래 못 가진 자들의 피를 먹고 자랐다.
저자는 서구 자본주의와 상업주의가 제국주의의 식민정책과 맞물려 피지배 민족의 노동력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최전선에 우리의 일상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커피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작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서의 커피가 갖는 인문학적 위치다.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으로 전파된 커피가 영국에 상륙한 이야기 또한 흥미롭다. 도시 곳곳에 커피하우스, 지금의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커피하우스는 한 잔의 검은 음료를 마시기 위한 장소로서의 본래의 목적과 달리 사람들이 모여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전반적 여론을 형성하는 아고라와 같은 공간으로의 변천을 보였다.
커피하우스는 친교와 대화, 정보 교류의 장임과 동시에 근대 시민사회가 갖는 다양한 이슈에 대한 공론이 배태되었기에 일종의 인큐베이터와 같았다. 그러나 이렇게 성행했던 커피하우스도 시간이 지나며 쇠퇴의 길을 걷는다. 이유는 모든 이에게 진입을 허락했던 커피하우스가 어느 순간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제한적인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일종의 폐쇄적 사교 클럽처럼 변질되어간 이유에서다.
더불어 영국 여성들에게 조차도 커피하우스는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다. 지금의 카페 손님 대다수가 여성인 점을 감안할 때 성별로서 손님을 차별했던 당시 커피하우스의 쇠락은 예견된 결과가 아닐까?
그 외 커피가 프랑스 대혁명에 끼친 영향, 독일혁명의 도화선이 된 커피 이야기 등 정치권력은 커피를 갈망했고, 커피는 정치권력을 동경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골목마다 카페가 즐비하고, 하루에도 몇 군데의 카페가 문을 열고, 문을 닫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시대 속 커피가 갖는 위상과 의미를 재고해 볼 수 있기에 본서는 커피 마니아라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도 재미있을 내용으로 가득하다.
요즘 별다방에서 스티커를 모으면 상품을 주는 겨울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매 시즌마다 상품을 받기 위한 전쟁이 치열하다.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이들은 몇 개의 상품을 복수적으로 득템하는 반면 어렵게 모은 스티커를 가지고도 단 한 개의 상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은 업체를 원망하며 일갈하는 글들을 연거푸 쏟아낸다.
때마다 수피교도들이 자신들의 신을 예배하는 데 각성제의 역할로 사용한 커피가 상업주의와 결탁해 또 다른 현대 자본주의의 신을 경배하는 아이러니한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책상 위 따뜻한 드립 커피 한 잔의 향기가 짙다. 사람은 커피를 마셨고, 커피도 사람을 마신다. 우리의 일상 속 깊이 뿌리내린 커피라는 재화가 갖는 역사와 의미를 배울 수 있는 인문서로서 읽는 내내 즐거웠고, 행복했기에 이 책과 서평을 커피의 신전에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