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에 대하여 (라틴어 원전 완역본) -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세네카의 가르침 현대지성 클래식 67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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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헐적 폭발 장애라는 말이 있다. 분노조절장애와 비슷한 류다. 빈번하게 터지는 사회의 어처구니없는 사건 사고 중 다수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들이다.

앞에 가는 차가 방향등을 켜지 않고 끼어들었다고 쫓아가서 기어코 보복 운전을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단지 잠깐 쳐다보았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흉기를 동원하여 무차별 폭행하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화를 참지 못하는 내면의 불안정함이 가득하다.

지금은 들끓는 분노와 공격적 성향으로 점철된 야만의 시대다. "어디 한번 걸려봐!" 착검을 한 채 지휘관의 돌격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참호 속 병사와 같이 호전적 기질로 똘똘 뭉친 세대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다.

분노로 열병 난 세대 속 로마제국 제정 초기를 살다간 탁월한 철학자의 화에 대한 담론이 현대인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화에 대하여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 현대지성 펴냄>에는 스토아 철학자로서 '루키우스 세네카'가 저술한 대표적 산문 에세이 14편 중 정수라고 불릴만한 몇 편의 저작이 포함된다.

본서에는 '분노에 대하여', '관용에 대하여', '평정심에 대하여', '현자의 항상심에 대하여'까지 총 다섯 편의 세네카 저작이 실렸다.



네카 사유의 배경이 되는 스토아 철학의 핵심은 미덕에 대한 무한 신뢰이며 사랑이다. 악덕을 이길 수 있는 미덕에 대한 강조는 끝이 없다. 감정이 아닌 이성을 신뢰할 때 짐승에서 비로소 인간이 된다. 감정의 발생은 진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며 진리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거기에는 분노가 포함된다.

제대로 인식하지 못함으로 소리부터 지르고 본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은 인간의 영혼이 이성의 통제 하에서 평정심과 항상심을 유지하여 고결하며 고매한 성품의 향기를 발하도록 격려한다. 그렇기에 스토아 철학의 관점에서 분노란 자신과 주변의 환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불완전한 개인의 이성이 쪼그라듦과 동시에 감정이 활개를 치는 것이다.

현실 정치 무대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세네카에게 물불을 가리지 않고 쏟아내는 분노는 악덕 그 자체인 반면 반역 죄인까지 용서하고 품어주는 통치자의 모습은 관용의 극치다. 힘을 가진 자가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이성과 덕에 기인한 선정을 행함이다.

두번째 '평정심에 대하여'에서는 인간이 말 그대로 평화롭게 마음을 다스리며 평정심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관해 말한다. 무엇인가 끝을 내야 하는 극단의 논리가 아닌 중용의 길을 선택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흑백논리가 아닌 적절한 중용을 견지할 때 유연한 부드러움이 인간에게 평정심을 갖게 한다.

이어지는 '현자의 항상심에 대하여'는 운명을 거슬러 평온함을 유지하는 삶에 관한 사유다. 현대인의 마음속에는 거센 파도가 몰아친다. 아름답고 평온한 바다의 모습은 없다. 항상 비바람이 치고, 물결이 높다.

세네카는 현자라면 추구해야 할 삶의 태도를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다양한 세속적 사건과 소용돌이 속에서 감정을 절제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는 것이다. 마음의 동요와 기울어짐 없이 바람 한 점 없는 눈부신 바닷가와 같은 평온함을 마음속에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지혜 있는 자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미덕이 아닐까?



마 5대 황제 네로의 스승으로 알려진 세네카는 로마제국의 처음부터 5명의 황제를 모시며 죽음의 위기와 정치적 성공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야만 했던 인물이다.

이유 없이 광인처럼 분노하는 황제의 곁에서 분노의 본질을 말하고, 관용의 유익을 전하며 평정심과 항상심의 필요를 강조했던 이 스토아 철학자의 삶은 그야말로 영욕의 세월로 수놓아졌다.

미친 듯이 분노하는 네로 황제 곁에서 악덕으로서의 분노가 가지는 해악을 직접 깨달았을 저자는 분노의 폐해와 관용을 연결했고, 평정심과 흔들림 없는 삶을 강조했다.

감정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작금의 시대 상황을 볼 때 본서의 출간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분노하며 사람을 죽이는 이 미친 세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무너진다. 작은 일 하나에 주변의 모든 것을 고사시키고도 남을 분노를 토사물처럼 쏟아뱉는 무뢰한들이 판을 치는 세상 속 적어도 인간답게는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도처가 분노의 지뢰밭이다. 밟으면 금세라도 터질 듯한 불안한 시대 속 참된 인간상을 구현코자 한다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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