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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동품 상점 (양장)
찰스 디킨스 지음, 이창호 옮김 / B612 / 2024년 11월
평점 :
<올리버 트위스트>는 기구한 운명을 갖고 태어난 한 소년의 역전 드라마와 같은 스토리로 다소 신파적이기는 하지만 마음 한 켠에 진한 감동을 선사해 준 작품이다. 그러면서 당시 빅토리아 여왕 치리 하의 회색빛 영국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었던 것 또한 '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서다.
더불어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으로 기억되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워낙 유명한데 반해 이번에 만난 <오래된 골동품 상점 / 찰스 디킨스 지음 / B612북스 펴냄>은 디킨스의 작품치고는 생소하다. 무려 1000페이지 가까운 소위 벽돌 장편 소설이라는 저작이 갖는 분량의 무게감이 독자에게 도전적 독서욕을 불러일으킨다. 도대체 작가가 어떤 내용을 썼길래 이런 대작이 탄생한 것일까?
고전은 고전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함을 믿기에 기꺼이 본서를 집어 들었고, 순간적으로 디킨스의 마법에 넋을 잃는다. <올리버 트위스트>나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작가가 견지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오래된 골동품 상점>의 스토리 라인 곳곳에 숨어있다.
부모 없이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가엾은 소녀 '넬'은 천사와 같은 순백의 아이콘이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낡은 골동품 상점이 넬과 할아버지의 유일한 생계수단이며 안식처다.
할아버지는 손녀딸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며 그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을 정도로 넬에 대하여 헌신적이다. 할아버지는 넬의 장래를 걱정하며 자신이 죽고 난 후 넬의 인생이 시궁창 밑바닥으로 떨어져서는 결코 안되기에 나름의 대책을 강구한다.
밤마다 어린 소녀 넬을 집에 혼자 두고 외출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심상찮다. 돈을 벌기 위해서 무엇인가 밤에 일을 하고 돌아오는 것으로밖에는 비치지 않는다. 돈을 벌어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라도 넬의 인생이 결코 가난에 떠밀려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그물망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심야 외출의 목적은 충격적이다. 할아버지는 난봉꾼 난쟁이 퀼프로부터 돈을 빌려 도박에 손을 대고 있었다. 일확천금 로또 당첨을 꿈꾸듯 할아버지의 갈망이 허무한 시도로 끝맺고, 빚쟁이 퀼프에게 골동품 상점마저 빼앗긴 할아버지와 넬의 운명이 서글프다.
급기야 사악한 퀼프는 가엽고 여린 소녀 넬을 자신의 둘째 부인으로 삼고자 하는 야욕을 드러낸다. 이런 위기 속에서 할아버지와 넬은 퀼프의 손아귀로부터 탈출하여 길고 긴 장도에 오르며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게 되는데...
디킨스는 인간 본성의 명암을 극명하게 묘사하는 데 있어 천재적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분명 선과 악의 실체가 치밀하게 잇대어 있고, 그것이 인간 누구나가 갖고 있는 본성의 본질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는 가여운 소년 올리버를 소매치기로 이용해먹으려는 사회적 악이 존재하지만 반면 올리버를 돕는 노신사와 같은 선이 대척점에 서 있다. 본서 또한 넬이라는 여린 생명이 갖는 선의 이미지와 퀼프라는 무지막지한 절대 악의 본질이 대항마로 등장한다.
디킨스가 살다 간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암울함이 작품 저변에 깔려 있다. 영국의 짙은 안개와 흐릿한 가스등,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과 희부연한 연기를 통해 산업혁명의 명암을 느끼게끔 만드는 시대적 배경이 작품 전체에 묘하게 녹아있다.
선과 악의 실제가 명확하고 그것을 통해 인간 세상은 분명 감각적 고통이 실존하는 공감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손녀의 인생을 위해 도박을 선택한 조부의 모습과 빚 대신 골동품 가게와 어린 소녀를 원하는 악당의 모습은 인간사 불의와 부조리의 명징한 묘사다.
<오래된 골동품 상점>이라는 책의 제목이 풍기는 디킨스의 메타포는 독자에게 생각거리를 던진다. 세상에 새 것이란 없다. 인간 본성과 세상이 갖는 본질이 새롭게 탄생한 것이 어디 있는가? 그 모든 것이 낡은 상점에 진열되어 있는 고물, 골동품과 같이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한 요소다.
선을 위해 돈을 갈망하여 도박에 손을 댄 할아버지나 자신의 아내를 끔찍하게 학대하며 골동품 상점과 넬을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된 파렴치한 퀼프나 모두 다 새 것이 아닌 인간 안에 상존했던 오래된 골동품과 같은 본성의 본질을 보여준다.
빈곤과 사회적 불의에 대해 관심을 보였던 디킨스였기에 <오래된 골동품 상점>은 분명 인간 세상이 갖는 모순과 죄악에 대한 그만의 기막힌 레토릭이 아닐까?
고전이 갖는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이질적 느낌을 원한다면 집어 들고 읽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