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컬러 일러스트 수록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55
김시습 지음, 한동훈 그림, 김풍기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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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조선 제일의 판타지 문학. <금오신화 / 김시습 지음 / 현대지성 펴냄>에 붙는 수식어다. 세종대왕이 인정한 당대의 천재 '김시습'의 작품으로서 본서가 갖는 문학사적 의의는 뒤따르는 수식어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금오신화>는 총 다섯 편의 한문 단편 소설이다. 수록된 작품 가운데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은 본서의 백미다. 스토리가 큰 재미를 선사하기에 인기가 많다.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의 주요한 이야기 줄기는 청춘 남녀의 만남과 사랑이다. 한 폭의 신비스러운 동양화를 보는 것 같은 몽환적인 일러스트레이션과 더불어 저자의 빼어난 한시가 매 페이지를 장식한다.

각각의 작품에 등장하는 청년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 하지만 비극적인 외환으로 말미암아 이 여인들은 모두 생명을 잃게 되고, 결국 여인들의 혼령이 등장하여 못다 한 이승의 정을 나누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마치 '사랑과 영혼'의 조선판 버전과 같다.

<취유부벽정기>는 술에 취한 부자 청년 홍생이 부벽정을 거닐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는 이야기다. 그의 요청에 따라 여인은 수려한 솜씨의 시 한 편을 선사하고 하늘로 올라간다. 알고 보니 이 여인은 위만 조선에 멸망 당한 고조선 준왕의 딸로서 망국의 슬픔을 안고 선녀가 되었다.

<남염부주지>에서는 박생이라는 글을 잘 아는 유생이 꿈 속에서 염라대왕을 만나 다양한 주제를 갖고 대화하고 토론을 펼친다. 염라는 박생의 학문과 됨됨이를 높이 평가하여 자신의 뒤를 이어 염라가 되기를 청한다.

마지막 작품 <용궁부연록>은 뛰어난 문인 한생이 용왕의 초대로 용궁에 가서 겪은 이야기다. 용왕 딸을 위해 멋진 글 한 편을 지어준 후 용궁을 구경하고, 용왕으로부터 구슬과 비단을 선물 받고 집에 돌아온다.

각 작품의 공통된 특징은 이야기의 중간에 아름답고 수려한 한시가 원문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당대에 수재라는 평가를 받은 저자 김시습의 빼어난 시문이 작품의 질을 높인다. 한문이 낯선 대다수 현대의 독자들이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조금씩 읽다 보면 작품의 맛을 더 깊이 음미할 수 있다.

현대지성에서 출간된 본서가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책의 후반부에 '김시습 깊이 읽기'라는 파트가 부록처럼 첨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김시습의 일생과 그의 작품이 갖는 문학적 의미를 동시대 또는 근시대 인물들이 기록했기에 저자에 대해 더 상세하게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생후 8개월 만에 글자를 깨쳤으며 세 살 때 시문을 지었다고 하니 지금으로 말하면 영재가 아니겠는가! 세종대왕이 직접 데려다가 문학적 재능을 시험한 후 향후 인재로 등용하겠다는 약속을 했을 정도로 김시습은 어린 시절부터 그 천재성이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했다는 소식을 듣자 모든 책을 불태운 후 방랑의 세월을 시작한다. 그에게는 질곡의 세월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사육신 사건이 벌어진 후에는 머리를 밀고 승려가 되어 전국을 유랑한다.

정계에 등단하여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꽃 피우려고 했던 그의 꿈은 초장부터 꺾였다. 이후 속세를 떠도는 방랑객이 된 김시습은 1465년 경주 금오산에서 불멸의 작품 <금오신화>를 남긴다.

다섯 편의 작품 속에는 세상이 품지 못했던 비운의 천재 김시습의 시대를 향한 메시지와 사상이 짙게 녹아있다. 외환으로 인해 생을 달리해야만 했던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의 여인들에게는 단종의 양위라는 시대적 비극 속에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꽃 피우지 못한 생육신 김시습 본인의 아픔이 겹쳐있다.

그렇기에 부조리한 시대와 불의한 정치 현실의 아픔이 그로 하여금 작품 안에 고스란히 투영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작품 어느 하나에도 그림자가 없다. 도리어 독자는 저자의 작품 속에서 어두움 대신 애틋한 그리움과 바른 세상을 향한 소망을 발견한다.

천재 문인이 지어낸 한시 자체의 빼어남과 당시의 시대적 아픔과 유교적 배경 속 불교 승려의 삶이라는 이색적 이력이 사상 속에 혼재한 본 작품의 가치는 이루말 할 수 없이 크다.

당대 최고의 지성이라고 불린 송시열 조차도 <금오신화>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구할 수 없었다. 작품은 임진왜란 후 실종되었다가 20세기가 되어서야 발견됐다.

불합리함과 부조리한 현실을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녹여 낸 세상이 품을 수 없었던 천재 문인의 명작, 한번 쯤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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