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명화 수록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5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외젠 들라크루아 그림, 안인희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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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평생의 역작으로 남긴 작품 <파우스트>는 인간 본성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탁월한 저작이다.


희곡 형식으로 기록된 방대한 분량의 대서사시를 저자와 작품의 명성만을 보고 가벼운 읽을거리로 생각하며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얼마 전 <파우스트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현대지성>가 완역본으로 출간되었고, 2주간 매우 긴 호흡으로 정독했다.


책은 중세의 대학자 파우스트가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계약을 통해 인간 이성의 무한 가능성에 대해 온전한 나래를 펼치고자 하는 도전으로 시작한다.


파우스트는 모든 학문을 넘어 마법까지 섭렵한 대학자였지만 평생 작은 서재에 갇혀 살며 자연과 인간사의 또 다른 면모를 간과했다. 이런 스스로의 삶을 증오하며 떨쳐내고자 원하는 그의 몸부림이 예사롭지 않다.


마침내 스스로 삶의 목적을 마음껏 향유하길 원했던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배팅한다.



작품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로 하여금 젊음을 되돌려주며 아름다운 여인 마르가레테를 그의 정욕의 대상으로 던져준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과 그녀의 어머니, 오빠 모두를 죽음으로 인도하게 된 파우스트는 홀연히 자리를 벗어난다.


2부는 뭔가 판타지스럽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만났다가 매우 오래된 그리스 로마신화의 시대로 시간 여행을 한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지상 최고의 미녀 헬레네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그녀와의 행복은 잠시뿐 다시 장면이 전환된다.


황제를 위한 전쟁에서 싸운 파우스트는 상으로 봉토를 부여받는다. 바다를 간척한 땅에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하며 영주로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경험한 파우스트는 이 행복한 순간이 멈추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순간이여! 멈추라!"라는 외침은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와 자신의 영혼을 걸고 내기를 시작할 때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금칙어다. 행복과 만족을 모르는 탐욕의 갈망자가 족함을 인정하는 그 순간은 곧 죽음이다.


그렇다면 파우스트 영혼의 종착지는 지옥인가 천국인가? 괴테는 파우스트의 영혼이 천국으로 인도함 받음으로 묘사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통해 괴테를 처음 만났다. 인간 이성에 대한 예찬이 괴테의 저작에는 짙게 깔려있다. 18세기 계몽주의의 시대 사조 속 괴테의 사상 자체가 기존 기독교의 신 관념을 배제한다. 그 자신이 일루미나티에 연관되어 있었고, 신비주의에 영향을 받았으며 스스로가 비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기독교적 하나님이라는 종교적 심상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작품 저변에는 이러한 그의 사상이 스며들어있다.


2주간 씨름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파우스트>를 통해 몇 가지 독자 포인트를 발견한다. 첫째는 파우스트가 모든 인간 본성의 보편성을 담지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걸리지만 않는다면 마음껏 자신의 정욕과 탐욕을 채우고 싶어 하는 모든 인류가 가진 부인할 수 없는 타락한 죄성에 기인한 갈망.


둘째는 모든 학문의 끝에서 기어코 인간 자아실현의 극대화, 인간 능력의 우월성과 이성에의 영원한 신뢰를 선보이는 파우스트의 모습을 통해 역시 본서는 계몽주의의 결정체임을 발견한다.


마지막은 "순간이여! 멈추어라!"라는 단말마적 외침 속에 깃든 이성과 주체성의 확신을 통해 시간과 운명마저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는 사유 속 절대자의 자리는 없다. 내가 곧 신이고 신이 곧 인간인 세상, 스피노자의 범신론에 깊은 영향을 받은 괴테 다운 진술이다. 더불어 파우스트의 영혼이 천국으로 간다는 설정은 전통적 기독교 구원 교리에 대한 철저한 조소다.


탐욕과 병든 주체성으로 혼잡한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파우스트>는 충분한 반면교사가 된다. 메피스토펠레스와 같은 유혹과의 야합이 판을 치는 작금의 세대 속 바른 인간의 모습은 스스로의 능력과 인간 이성에 대한 무한 신뢰가 아닌 잃어버린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선한 연대다.


본서의 독서 팁은 당시의 시대 사상을 함께 살피며 읽어갈 때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희곡이기에 각 행과 연의 구분이 확실하여 독자로 하여금 호흡을 놓치지 않도록 도와준다. 더불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선지식은 책을 더 수월하게 이해하도록 길잡이가 되어준다.


저자와 저작의 명성만큼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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