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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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글쟁이는 타고나는가 아니면 노력에 의해 탄생하는가? <개미>,<뇌>,<나무> 등으로 한국에 찐 팬층을 거느린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두 가지 물음에 모두 해당된다. 어린 시절 저능아적 특색이 뚜렷했던 베르나르의 모습은 될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천재 작가들이 가진 기인과 같은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시선은 어느 순간 베르나르 앞에서 멈춘다.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는 베르나르가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임과 동시에 그의 회고록과 같은 책이다.

소년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과 작가로서의 행보가 베르나르 특유의 유머와 위트 섞인 필치로 흥미진진하게 그려졌다. 


인간과 쥐와의 대대적인 싸움을 그린 <행성>을 통해 그의 책을 처음 만났다. 그가 가진 넓고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에 놀랐다. 역사, 과학, 문학은 물론이거니와 고대 점성술과 유대 신비주의 카발리즘, 영지주의, 조로아스터교, 마니교에 이르기까지 고대 종교와 사상, 철학을 두루 섭렵했다.

그가 가진 지식의 스펙트럼이 가히 놀랍다. 이 모든 지적 구조물 속에서 나오는 다양하고 방대한 지식의 씨앗이 탁월한 스토리텔러의 손길 아래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모판 속에 고스란히 이식된다.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를 통해 작가가 얼마나 뛰어난 공상가이며 천재 이야기꾼인지를 대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작가이기 전 한 명의 철학자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그의 글에는 나름의 철학이 있다.

그에게는 모든 인간과 동식물, 사물이 이야기의 재료다. 흔히 지나치는 나무와 개미, 고양이를 자신의 이야기 소재로 삼고, 그 대상물 안에 자신만의 독특한 메시지를 투영하는 베르나르의 상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 저변에는 범신론적 세계관이 짙게 깔려 있다. 일찍부터 요가, 명상을 통한 동양 사상에 눈을 뜬 저자가 가진 문학적 특색의 하나다. 그는 마치 동양 신비주의 영성가와 같으며 수많은 독자들을 그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진리(?)로 이끄는 구루와 같다.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에서는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그의 기념비적 저작들이 어떻게 탄생되었는가에 관한 비화를 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베르나르는 선천적 천재성을 타고난 작가로 비친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든 일정 부분은 후천적인 노력파 천재다.

그를 세상에 알린 공식적 처녀작이며 대표작인 <개미>탄생의 이야기는 왜 그가 후천적 노력파 천재인지를 알게 해준다. 전 세계인이 열광한 <개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아는가? 무려 12년간 총 17번의 개작에 개작을 거듭하며 탄생했다.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은 이 세계적인 작품은 그냥 쉽게 배태되지 않았다. 뼈를 깎는 인고의 세월 속 베르나르에게 해산의 고통을 안긴 작품이 세상에 빛을 발한 직후 그가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는 순간 작가에 대한 경외심과 숙연함마저 든다.

<개미>는 지금의 베르나르를 있게 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35개국의 언어로 번역되고 3천만 부 이상이 팔렸다. 냉동 파스타를 돌려먹으며 월세를 걱정했던 베르나르에게 서광이 비친 순간이다. 눈부신 금전적 성공은 차치하고, 이 한 편의 에세이는 독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커서 뭐가 될지를 염려케 한 소심하고 엉뚱한 소년은 주어진 환경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고백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미친 듯이 몰입했던 베르나르 작가의 삶을 향한 애착은 존경스럽다.


"괜히 일반화하느라 고생할 필요 없다. 진짜일수록, 실제일수록 더 놀랍고 생생한 법이다." p143


충격적인 통찰이다. 자신이 경험치 못한 것을 일반화시키는 일 자체가 곤욕이며 고문이다. 우리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그러나 작가는 몸으로 부딪쳤고, 자신의 체험이 진짜이며 실제라고 믿었기에 일반화의 오류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그의 작품 세계는 피상적이거나 일반적이지 않고 매우 독특하다. 모든 인간과 사물을 보는 관점 자체가 범인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베르나르의 작품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다.

이 책은 대성한 작가의 단순 인생 성공 에세이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과 세상, 자연과 사물에 대한 집약된 이해가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가에 관한 신선한 통찰의 모음이다. 책을 덮고, 관심 작가의 목록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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