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스의 교육 - 키로파에디아 현대지성 클래식 51
크세노폰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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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은 리더십의 정수를 <키루스의 교육>이라는 위대한 저작으로 남겼다. 진리와 정의, 미덕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플라톤과 달리 크세노폰은 실용주의적 관점에 입각한 진리 탐구에 천착했다.

그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끊임없이 정복하는 야만의 시대 속 참된 인간성과 행복의 근원을 인간 자체에서 찾으려 노력했다. 그런 그가 바라본 한 명의 위대한 인간이며 군주가 바로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대왕이다.

성경 속 70년간 이스라엘 민족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해방시킨 장본인으로서 등장하는 '고레스'가 본서의 주인공 키루스 대왕이다. 유일신 사상으로 무장한 유대인들이 유독 하나님의 종으로까지 상찬한 이방인의 왕 키루스의 인간 됨을 살필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저작을 현대지성 클래식을 통해 만난다.

키로파에디아(키루스의 교육)는 BC 380년 경 쓰였다. 전술했듯 플라톤은 행복을 진리를 직관하는 데서 찾았다. 그와 달리 크세노폰은 시민들이 각자의 몫을 갖고 정의롭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에 행복이 있음을 믿었다. 이처럼 크세노폰의 사상은 그가 얼마나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었는가를 보여준다.

실제로 그리스와 스파르타의 용병으로 참전 경험을 가진 그였기에 그에게 있어 참된 미덕과 정의는 탁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선혈이 낭자하고, 살점이 튀는 현실의 터전에서 꽃 피며 열매 맺음을 믿었다.

<키루스의 교육>은 키루스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된다. 총명함과 온화한 마음씨를 지닌 소년 키루스가 자라 지혜와 용맹을 갖춘 왕자가 된다. 이후 자신의 외삼촌 메디아(메대)의 왕 키악사레스의 요청에 의해 페르시아(바사) 군의 총사령관으로 참전하여 신바빌로니아 제국과의 전쟁을 치른다.

저작은 고대 근동의 메소포타미아 정세를 한눈에 관통하는 일종의 역사 이야기다. 그러나 역사적 고증을 통해 분명 다른 점이 눈에 띈다. 메디아를 공격한 신바빌로니아의 나보니두스와 발샤자르(벨사살)를 일관되게 아시리아 왕으로 지칭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본서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었지만 픽션의 요소가 없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러한 논제는 이 책의 주요 관심이 아니다. 오히려 책의 가치는 오랜 시간 리더십의 고전으로 평가받음에 있다.



저자는 키루스의 사람됨에 주목했다. 그에게 있어 소용돌이치는 국제 정세 속 믿고 따를 수 있는 미덕의 근거는 그동안 주류로 여겼던 정통 철학의 이상이 아닌 인간의 삶을 돌보는 참된 군주의 모습 속에 있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보이는 온화함과 관대함은 포로들을 대하는 키루스의 태도에서 만개한다.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간 장교들과 달리 방진 대형을 갖춘 채 끝까지 죽음을 불사하며 싸우려는 이집트 적병들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장면은 키루스 인간 됨의 극치다.

항복으로 인한 불명예와 그들의 목숨 모두를 상처 하나 없이 보듬을 수 있었던 이유는 피아를 구별하지 않는 키루스가 가진 인간에 대한 근본적 애정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원수들조차 키루스의 그늘 아래 머문다.

책은 두 가지의 재미있는 점을 보여 준다. 첫째는 키루스가 자신의 부하들에게조차 일관되게 존칭을 사용하며 존대한다는 점이다. 물론 번역과 편집의 묘일 것이다. 하지만 독자는 번역의 작은 것 하나에서 키루스라는 인물이 가진 상대방을 존중하는 참된 지도자의 향기를 맡는다.

또 하나는 본서에서 유독 식사하는 행위에 대한 강조가 도드라진다. 키루스는 고위 장교들과는 물론이거니와 사병들과도 스스럼 없이 겸상했다. "식사를 합시다! 식사를 했다" 등의 표현이 정말 많다. 여담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에 있어 식사를 통한 유대 관계의 형성, 식탁 교제의 중요성을 간파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작 <군주론>에서 키루스를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제시했다. 감투만 쓰면 사람이 돌변한다. 완장만 차면 아랫 사람을 프레스에 넣고 쥐어짠다. 인간적 친분, 이런 것 필요 없다. 목적과 비전을 위해 자기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의 골수와 진액을 뽑아낸다.

우리는 각 분야에서 리더가 리더답지 않은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키루스의 교육>을 통해 만나는 참된 리더의 모습이 사뭇 이채롭다. 정의와 공정, 재물과 욕망에 대한 절제, 인재의 중용과 원수조차 품는 관대함과 관용은 키루스 리더십의 정수다. 이런 리더가 그립고, 이런 리더가 되고 싶게 만드는 저작! 책의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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