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국가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50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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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뇌관이 터질 듯 팽배한 지금이야말로 옳고 그름이라는 정의에 대한 바른 기준이 혼미한 시대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견이 지금까지 어떤 시대에도 없었던 가장 순수한 진리임을 추호도 의심치 않는다. 이렇듯 타인의 의견에 결코 귀 기울이지 않는 극단적 자기 확신의 시대는 24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 아테네 시대의 재탕이기에 결코 새롭지 않다.

<플라톤 국가>는 정의와 불의의 모호한 기준을 '국가'라는 더 큰 범주 안에서 다룬 철학서다.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가 상대주의적 세계관으로 무장한 소피스트를 비롯한 몇몇의 상대들과 나눈 대화를 책으로 엮었다.

책의 서론에서 궤변을 일삼으며 사욕을 충족했던 소피스트 중 한 사람인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발각되지만 않는다면 불의하게 사는 것이 더 좋고, 행복한 삶이다."라는 달콤한 명제를 제시한다.

실제로 불의한 자들이 득세하며 그들이 더 부요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이 없기에 소피스트의 주장은 사뭇 시대적 적실성을 갖는다. 정의를 힘 있는 자가 규정하는 세상이 작금의 세상 아닌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말의 출처가 살아있는 권력이라면 그것이 진리가 되는 요지경 세상이기에 소피스트의 주장은 매우 친근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그렇지 않음을 단호하게 천명하며 국가라는 더 큰 범주 안에서 개인과 국가의 정의라는 실제적 논의를 확장한다.

우선 <플라톤 국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개념은 이데아론이다. 세상 속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 속 원형의 허상일 뿐이다. 실재는 가장 완벽하고 완전한 선인 이데아에 존재하며 가시적인 모든 것은 비가시적 원형을 통한 모방의 하나다.

책은 그 유명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이데아를 이해하는 소수의 지혜와 그렇지 않은 다수의 무지를 비교한다. 인간이 참된 실재이며 온전한 선인 이데아 세계를 갈망하며 그것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야말로 바른 인간성의 회복이며 정의롭고 올바른 삶의 전형이다.

이데아의 세계를 동경하며 그것에 자신의 성품을 조율하는 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자다. 국가는 이처럼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이 통치자와 수호자가 되어 다스릴 때 정의롭고 착해지는 유기체와 같다. 자기의 이로움이 아닌 피치자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통치자가 다스리는 국가는 이데아가 갖는 정의의 한 단면이다.


반면 이데아에 대한 관념을 부정하는 자들은 소피스트들이 주장하는 정의의 기준을 따른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의를 저질러도 된다. 다만 들키지 말아라!



정의와 불의의 선택 기로에 선 청년들에게 <플라톤 국가>는 중요한 인생의 통찰을 함의한다. 타인의 눈에서 피눈물을 뽑아도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타락한 인간 본성이 극에 달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문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인간보다는 짐승이 더 많은 시대!

위대한 철인 플라톤은 아테네 민주정이 쇠락해가며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인간의 행복과 정의로운 삶은 저질스러운 탐욕과 존재가 갖는 오만함에 있지 않음을 알았다.

이처럼 개인의 정의와 불의에 대한 논제가 국가라는 더 큰 범주 안에서 다루어지는 <플라톤 국가>는 어떻게 사는 것만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으로 가득하다. 더불어 정의로운 삶은 불행하며 불의한 삶은 행복한 삶이라는 가치전도는 구약 성경 선지자 하박국의 신정론적 질문과 결을 같이한다. 이것이 맞다면 누가 정의를 택하겠는가?

책을 덮으니 두통이 몰려온다. 쾌락적 육체의 문화와 신비적 혼의 문화가 융합된 기형적 사회 문화 속에서 제정신을 탑재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플라톤 국가>는 2000년 서양 문명 발전에 있어 정신적 토양을 제공했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소크라테스의 유순한 대화 속에 예리하게 날 서있다.

불의를 정의로 규정하는 데 익숙한 자는 논의의 모든 것이 개똥같다. 무념무상, 먹고 싸는 것이 전부인 인생에게 있어 사유는 고통이다. 나에게 뇌가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는 저작!

저작은 대화의 형식으로 매우 간결하면서도 흥미롭다. 철학서이지만 어렵지 않은 이유다. 더불어 비문이 보이지 않는 번역이 매끄럽다. 플라톤 철학의 다양한 메뉴가 먹기 좋게 버무려져 있기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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