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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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대 문학계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희망의 끈>. 초판 찍고 2개월 만에 2쇄 찍는 기염을 토했다. 역시 베스트셀러 각이다! 장인이 펼쳐 갈 이야기의 향연을 기대하며 <희망의 끈>을 편다.

저자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이야기를 투 트랙으로 진행한다. 두 가지의 스토리에 접점과 연결 고리를 찾느라 나름 애썼다. 독자에게 책 들고 킬링타임 하지 말고, 생각하며 읽으라고 던져 놓는 게이고식 과제다.

한 가정에 두 아이가 지진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생을 달리했다. 단장의 고통 속 부부는 새로운 아이를 임신한다. 장면이 바뀌어 어느 카페의 여사장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수사가 시작되는 즈음 경시청 형사 '마쓰미야'는 의문의 전화 한 통을 통해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다.

카페 여사장의 행적을 캐기 시작하며 그녀의 이혼 전 남편과 동거녀의 실체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더불어 마쓰미야는 일면식도 없는 생부의 존재를 파악 후 혼란스럽다.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얽힌 실타래 같다.

독자가 발견할 수 있는 전체적 구조는 지진 피해 부부와 카페 여사장의 죽음이 하나의 플롯이라는 점, 형사 마쓰미야의 가정사가 또 하나의 플롯이라는 점이다.

게이고는 성격이 다른 플롯을 결국 가족이라는 큰 틀에 절묘하게 대입했다. 구성의 한 가운데에는 '아이'가 있다. 지진 피해 가정에 새로 태어난 아이와 마쓰미야의 어린 시절은 소설의 중심 재료다. 독자의 심정을 애태우며 소설의 중후반부까지 진득하게 끌고 가는 묵직한 중심추다.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게이고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문학적 탁월함이다.

지진으로 잃은 두 아이를 대신해서 태어난 아이는 부부에게 삶의 희망이자 모든 것이다. 부부를 부부 되게 이어 준 일종의 끈이다. 살해된 카페 여사장과 그의 전 남편, 그리고 현재의 동거녀 모두에게도 아이라는 존재는 그들 서로를 연결시키는 끈이다. 물론 이들은 원하지만 아이가 없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가 자신의 피붙이 마쓰미야 형사를 찾는 이야기도 결이 같다. 자신의 아들이 세상 속에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아들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쉽게 다가갈 수 없었지만 연의 끈은 이어졌다.

기존 게이고식 추리 스릴러의 면모는 없다.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혼란스러움과 모골이 송연해지는 오싹함을 원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감정선이 플랫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게이고가 왜 천재 작가라는 소리를 듣겠는가? 그만이 가진 탁월한 문학적 구성력이 독자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게이고의 마법은 카페 여사장의 범인이 밝혀진 중반부터 펼쳐진다. 책의 커버에 적힌 대로 단순하게 가족의 참된 의미를 말하는 소설일까? 게이고를 쉽게 본 것이다. 너무 나이브하다. 해석의 렌즈를 갈아끼고 게이고가 숨겨놓은 진의를 파헤치기 시작할 때 독자는 게이고의 문학적 천재성에 탄식을 금할 수 없다.

게이고는 두 가족의 중첩된 이야기를 통해 외로운 현대인의 실존을 가족과 아이라는 수사를 사용해 적절하게 그려냈다.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의 외로움과 고독한 현대인의 실존적 고민을 해결할 근원적 해답, 외로움의 수렁에서 구출해 줄 희망의 끈은 다름 아닌 아이다.

게이고는 두 가족, 아니 어쩌면 세 가족의 삶을 이어줄 희망의 끈으로서 아이라는 존재를 그의 문학적 메타포로 사용했다. 아이는 그들에게 존재의 고립과 고독을 해결해 줄 끈이다.

현대인들이 이러한 끈을 붙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근원적 존재의 외로움, 그리고 그 외로움과 소외가 주는 상상할 수 없는 공포에 기인한다. 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빈집에 TV를 켜놓는지 아는가? 적막감이 뿜어내는 고독과 소외의 기운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서다.

혼자가 편해 싱글이 좋다고 외치지만 결국 인간은 타인의 존재를 무한 갈망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존재다. 존재적 외로움의 DNA가 항존 하기에 그렇다.

아이가 없더라도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책을 덮으며 생각을 확장해 본다. 결국 끈을 갈망하는 인간은 끈에 의존한다. 가족은 특별한 타인이라는 쉽사리 인식하기 어려운 명제는 끈을 놓친 사람들에게는 요원한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끈 없이 살아내야 하는 게 우리네 삶 아닐까?

스릴러가 가진 카타르시스는 없지만 생각거리를 던지는 명불허전 작품이다. 인간 실존의 문제를 한 편의 소설 속에 진득하게 녹여 낸 게이고는 역시 천재다. 게이고가 게이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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