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대한 철학자들의 죽음 수업 -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사랑할 것인가? ㅣ 메이트북스 클래식 12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외 지음, 강현규 엮음, 안해린 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3년 1월
평점 :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의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세상이다. 오늘도 우리는 천년만년 살 것처럼 먹고 마시며 치장을 한다. 영겁의 세월 속 먼지와 같은 존재로서 살며 느낀 것 한 가지는 가진의 것의 유무와 배움의 격차가 아무리 크다 한들 어차피 먹고사는 것은 다 똑같다는 평범한 사실이다.
잘났건 못났건 매일 세 끼를 먹고 매일 싸지르는 삶이 우리의 생이다. 그렇기에 잘남으로 화장할 필요도 없고, 못남으로 주눅들 필요도 없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아등바등 치고받는 일상 속에서 더 중요한 삶의 가치를 흘려보내는 게 어리석을 뿐.
죽음을 마주할 때 삶은 한없이 투명해진다. 인류 역사에 획을 그은 위대한 성학들이 쏟아낸 죽음에 대한 단상이 요 며칠 나의 머리를 말끔하게 씻어준다.
'몽테뉴'는 말한다. 태어난 날부터 우리는 죽음을 산다고... 생과 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신선하다. 죽기 위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지 않도록 살 수도 없다.
로마 5현제 중 마지막 황제였던 철황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한다. 아주 오래 산 사람이나 요절한 사람이나 그들이 잃게 되는 것은 같다.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현재'라는 것만을 잃을 뿐...
시간에 대한 스토아 철학자의 관념이 담박하게 드러난 명문이다. "어차피 모두 다 죽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가는 것이지!" 일평생을 제국의 안위를 위해 전장의 장막 속에서 보낸 상무 정신과 스토아 철학의 만남이 수많은 병사들의 죽음을 목격하며 인생무상, 깨달음의 꽃을 피운 것이 아닐까?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말한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끝없이 샘솟는 우물에서 시간을 퍼다 쓰기라도 하듯 시간을 낭비한다."
세네카의 명문이 마음에 정동을 일으킨다. 헛되이 흘려보낸 수많은 시간에 대한 죄스러움으로 낯이 뜨겁다. 그냥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이 눈물 날 정도로 아깝다. 세네카는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묻지만 독자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응답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희소하고 귀하다.
로마의 위대한 철학자 '키케로'는 말한다.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충만해진다." 원숙함은 죽음이 가까웠다는 표징이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키케로는 원숙함이라는 멋진 어휘로 표현했다.
익지 않은 과일은 쉽게 딸 수 없다. 반면 잘 읽은 과일은 스스로가 쉽게 떨어진다. 인간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떠날 때가 되면 원숙함으로 쉽게 떨어지면 그만이다. 가지 않겠다고 붙잡고 있음 자체가 추하다.
키케로 본인이 '안토니우스'에게 목과 두 손이 잘리는 비참한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죽음의 칼날 앞에서 키케로의 영혼은 원숙했다. 생전 그가 말한 대로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낸 그였기에 그의 말은 후대에 의해 믿음으로 새겨졌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말한다. "작고 무한한 현재만이 존재한다. 이 현재 속에서만 우리의 삶이 존재한다." 과거는 지나갔기에 더 이상 없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없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어느 작은 한점에 불과하다.
우리가 가진 시간의 관념은 현재만 있을 뿐 어제와 내일이 없다. 그렇기에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찬란하게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잘 죽는 죽음을 위한 최선의 준비다.

각기 다른 시대와 상황을 살아낸 다섯 명의 위대한 현자들이 말하는 죽음에 대한 단상은 비슷한 것 같지만 전부 결이 다르다. 몽테뉴는 죽음이라는 그 명제 자체를 숙고했다. 아우렐리우스는 인간 존재와 죽음을 스토아 철학자답게 매우 이성적인 관점으로 직시했다.
세네카는 죽음보다는 인생 자체를 관조했으며 키케로는 노년이 맞이하는 죽음에 대한 상념을 풀었다. 톨스토이는 죽음을 관통하는 시간과 삶의 의미에 집중했다.
영원토록 살 것처럼 이전투구하는 삶을 살아간다. 하나로도 더 빼앗으려고 이빨을 드러낸 맹수처럼 삶의 현장으로 뛰어든다. 더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미친 듯이 내달린다.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인격을 군화발로 걷어찬다. 더 소유하며 더 누리고 싶어서 온몸에 열꽃이 핀다.
지금을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민낯이다. 우리 모두 죽는다.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의 절반도 못되어 죽는다는 점이다. 50년 후에는 이 세상에 없다. 그런데 1000년을 살 것처럼 산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한 구약 성경 전도서 기자의 고백이 새롭지도 않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쏟아놓은 죽음에 대한 숙고가 우리의 삶을 맑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