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국내 최초 스페인어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6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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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지혜는 좀 먹지 않는 금과 같다. 이는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결코 변하거나 변색되지 않는 영원성을 지닌다. 여기 17세기를 살다간 탁월한 지혜자의 금과옥조와 같은 저작이 있다. 예수회 신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사람을 얻는 지혜>는 약 400여 년의 시간적 간극을 뛰어넘어 인간사의 보편적 삶의 지혜를 설파하는 고전이다.


총 8부로 구성된 저작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온전한 인간이 되는 길과 방법이다. 바르고 좋은 인간이란 어떤 모습이며 그런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지혜가 필요할까?


짤막한 격언을 300개의 소제목 아래 기술하여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 가진 고민과 의문에 대해 선인의 지혜는 탁월함으로 빛을 발한다. 


"윗 사람을 이기려고 하지 말라.(중략) 우월함은 늘 남의 반감을 불러오기 마련인데, 윗사람보다 우월하면 훨씬 더 많은 반감을 산다.(중략) 사람들은 남들이 행운을 누리고 좋은 기질을 가진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난 것은 참지 못한다." p33


나도 모르게 나지막한 탄식이 흘러나온다. 어쩜 이렇게 정확할까! 자신의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이 자신보다 탁월하고 능력 있으면 윗 사람은 결코 그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아랫사람이 자신보다 더 큰 칭찬과 찬사를 받으며 인정받는 것을 결코 눈뜨고 봐줄 수 없는 타락한 인간 본성의 민낯을 그라시안은 정확히 꿰뚫었다.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렵다. 행동은 삶의 본질이고, 말은 삶의 장식이다.(중략) 행동은 생각의 열매다. 따라서 생각이 지혜로우면 행동도 훌륭하다." p242


언제나 말은 쉽다. 하지만 그 말을 행동으로 살아내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한 사람의 본질을 파악하는 지름길은 그가 자신이 뱉은 말대로 행동하고 살아가는가를 보는 것이다. 


저자는 말이 삶을 꾸미는 장식에 불과함을 알았다. 번드르르한 말은 인간의 외적 삶을 꾸미는 데 있어 훌륭한 재료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말대로 살아낼 수 없는 불완전함이 인간에게는 수치다. 그래서 저자는 지혜롭게 생각하면 따라오는 행동도 훌륭함을 덧붙인다. 언행일치와 심사숙고의 중요성을 간결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조심스러운 침묵은 지혜의 성역이다" p29


말이 넘쳐나는 세대, 무분별한 말로써 상대방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현대인들의 삶에 경종을 울리는 문구다. 고요함과 정적을 참지 못하는 이 소음과 광란의 세대 속에서 말을 참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다. 침묵이 금이라는 격언은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정말 금 같은 가르침이다. 


내뱉지 않아도 될 말 한마디가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많은 이들에게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주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보는가! 저자는 깊이 생각하고 말하며 조심스럽게 침묵을 지킬 줄 아는 것은 지혜이며 그것이 성스러운 영역에 속한 행위임을 알았다.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과 깊이 우려낸 지혜는 실로 놀랍다. 17세기 합리적 이성주의의 파도가 일기 시작한 시대 속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은 저작 탄생의 필연적 귀결이다. 인간 본성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관심을 기울인 것은 온전한 인간성에 대한 회복을 염원한 저자의 또 다른 바람이 아니었을까?


로마 가톨릭 예수회 소속의 신부였지만 저작에는 종교적 색채가 거의 없다. 철저히 인문학적이고 인본주의적이다.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림과 동시에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윤리적이고 합리적인 조언이 가득하다.


온전한 인간, 바른 인간으로 가는 첩경으로 수많은 지혜가 동원되었다. 온전한 인간은 흠결이 없는 인간임과 동시에 완벽한 인간, 모든 어려움과 삶의 장애를 극복하고 뛰어넘는 인간으로의 지향이다. 


왜 이 책이 '프리드리히 니체'로부터 극찬을 받았는지에 대한 실마리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뛰어넘는 사람, 극복하는 사람 초인, 위버멘쉬가 뜻하는 긍정적 삶에의 주체가 되기 위한 근원적 지혜가 그라시안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날 현대인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온전한 인간의 삶인가에 대한 해답에 목말라한다.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미신적 신앙으로 치부한 채 옆으로 밀쳐두었기에 그렇다. 근본적 삶의 해답은 없지만 인간의 삶과 본성에 대한 통찰에서만큼은 책의 가치가 금처럼 빛난다. 깊이 사유하며 읽어야 할 독자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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