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흄세 에세이 1
알베르 카뮈 지음, 박해현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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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는 카빌리 지역의 극빈 지역을 방문한 후 그가 목도한 가난과 궁핍의 참상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카빌리의 비참>이라는 르포 형식의 에세이를 남겼다. 카뮈의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중요한 양분을 제공한 듯한 이 작품을 작년에 읽었다.

얼마 전 <결혼>이라는 카뮈의 또 다른 독특한 에세이집 한 권을 만났다. 제목에서 풍기듯 남녀 간의 사랑과 결혼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주제를 다루는 핑크빛 에세이로 생각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카뮈의 나이 24세, 푸릇한 청춘의 시기에 쓴 마치 습작과 같은 에세이다. 총 네 편의 짤막한 단편 에세이가 하나의 책으로 엮였다. 청춘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이 가장 서정적으로 서술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달아오르는 열정과 관능의 발산은 뜨거운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의 풍경을 묘사하듯 사뭇 뜨겁다.

네 편의 작품 모두 매우 회화적이다. 아름다운 지중해 작은 도시를 한 폭의 액자에 담아내듯 카뮈의 문체는 풍경화의 그것과 같다. 세밀한 붓의 터치와 같이 그려지는 글의 향연이 청년 카뮈가 가진 극강의 서정성을 짐작게한다. 때묻지 않은 푸른 청춘의 고백이 마치 사랑하는 연인에게 향하는 순백의 대사와 같이 빛난다.

작품 속에는 카뮈만의 인간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이 내포된 하나의 글이 있다.

"사형집행인은 카라파 추기경의 목을 비단 밧줄로 매달았지만, 밧줄이 끊어졌다. 두 차례나 더 매달아야 했다. 추기경은 굳이 말 한마디 해주지 않은 채 사형집행인을 바라봤다."

한 번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도 사형수에게는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데 밧줄이 끊어져 두 번의 고통을 맛보게 된 카라파 추기경. 그러나 추기경은 실수를 저지른 사형집행인을 물끄러미 쳐다만 본다. 아무런 불만이나 분노가 없다.

여기에서 카뮈가 바라보는 인간 실존과 죽음에 관한 그의 독특한 관점과 철학을 발견한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순간의 고통조차도 사실적으로 직면하는 것. 삶과 죽음에 대해 비겁하지 않으며 당당할 수 있는 인간 실존이 가진 또렷한 자의식에 대한 강조다.

이는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태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또한 <페스트>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 속 인간 실존이 보이는 상반된 관점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청춘이 느낀 삶과 죽음, 세계와의 연관성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의 결혼과 같다. 삶과 죽음이 가진 양면성과 같이 결혼 또한 행복과 불행이라는 양면성이 공존한다. 삶은 아름답고 죽음은 불행하다는 이분적 관점으로는 생사에 대한 이해가 온전치 않음을 청년 카뮈는 알았다. 삶과 죽음이 인간 실존에 있어 모두 품어야 하는 것이듯 청춘 남녀의 결혼 또한 행복과 불행의 모든 것을 기꺼이 품을 수 있을 때 진정한 결혼이 된다.



카뮈는 네 곳의 장소를 다니며 그곳에서 느낀 자신만의 생각을 글로 풀었다. 청년 카뮈의 정신은 장소에서 느낀 고유의 깊은 사유를 통해 높이 고양됐다. 자연과 사물을 관조하며 그 안에서 사람과 인생, 죽음의 상관성을 생각하며 성찰했다. 생각이 깊어지고 말이 익어가는 순간이다.

카뮈는 자신이 실존주의자, 실존주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 철학을 할 만큼 합당한 이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카뮈만큼 자신이 살았던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성적 이해가 충만한 사람이 없다. 살아가면서 한 번도 자신과 이웃, 세계에 대해 깊은 사유의 작업을 하지 않고 죽는 사람이 태반인 세상 속에서 카뮈와 같은 인물은 비범하다.

100여 페이지의 짧은 책장의 마지막을 덮으며 왜 책의 제목을 결혼이라고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네 곳의 장소를 거닐며 도시들이 갖는 영화와 쇠락, 탄생과 소멸의 쳇바퀴를 본다. 도시에서 만난 젊고 싱싱한 육체들을 보며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그만의 깊고 농밀한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모순과 부조화의 세계 속에서 하나 됨과 조화의 의미는 결혼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수렴된다. 청년 카뮈의 순수한 정신이 보석처럼 빛나는 대목이다.

1차원적 인식 속에서 세계의 이질적 모습만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존재 자체의 어우러짐과 결합의 진면모를 보았다. 세상의 참모습을 직시할 때 인간에 대한 참된 이해와 세상의 부조리를 일갈할 수 있는 내면의 저력이 탄생한다. 우리는 그것을 <이방인>과 <페스트>에서 확인한다.

파릇한 청년 시절 카뮈의 설익은 습작 같은 저작이지만 세상과 인간을 향한 상념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 농익은 듯하다. 인생에 관한 그의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 찬란한 아침 햇살 같은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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