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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ㅣ 팡세미니
알퐁스 도데 지음 / 팡세미니 / 2021년 11월
평점 :

19세기 이솝의 환생! 책을 펼치고 마치 이솝 우화를 보는 것만 같은 순간적 착각에 빠진다. 19세기 프랑스의 극작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과 함께 수록된 6편의 단편들이 뿜는 첫 느낌이다. 작고 아담한 단편집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생각의 깊이를 더한다.
프로이센(현 독일)과 프랑스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그의 작품들이 가진 특징은 매우 사실적이다. 인간사의 비극과 현실의 냉혹함, 인간 본성의 민낯을 아름다운 동화 속에 기막히게 녹여냈다.
특별히 인상 깊은 몇 편의 단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타이틀 작 '마지막 수업'은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영토분쟁 속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마지막 수업의 장면을 그린다. 프랑스 사람이라고 잘난 체하지만 제 나라말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꼬집는다. '꼬마 간첩'에서는 오락을 위한 푼돈을 위해 프로이센에 프랑스군의 정보를 팔아넘기는 어느 꼬마의 이야기다. 탐욕이 가져온 비극이다.
'스갱 씨의 염소' 이야기는 울타리를 벗어난 염소 블랑케트가 자유를 누리다가 이리를 만나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을 그린다. 제약이 따르는 안전이냐, 자유가 있는 모험이냐의 선택 속 염소 블랑케트는 후자를 선택했다. 동이 뜰 때까지 밤새 이리와 혈전을 벌이다 쓰러져 가며 하는 말이 압권이다. "르노드(염소)아주머니보다 더 오래 버텼어."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준다.
'황금 두뇌를 가진 사나이'는 자신의 생명이 깎여나가는 것도 모른 채 황금 두뇌를 야금야금 떼어 파는 남자의 아이로니컬한 이야기다. 욕심과 지혜롭지 못함의 전형이다. 두뇌가 황금이지만 생각은 돌덩어리다.

단편집의 백미는 '왕자의 죽음'이다. 병에 걸려 죽어가는 왕자가 죽음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수를 강구한다. 경비병과 대포를 동원해서 죽음이 접근하는 것을 막도록 지시한다.
어마마마, 걱정마세요! 죽음이 감히 저를 데려가진 못해요.(중략) 저는 이 나라의 왕자인걸요.
누군가 꼭 죽어야 한다면 나 대신 내 친구 베포를 죽게 하면 안 되나요?"(중략) 돈을 많이 주면 되잖아요?
저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왕자일 테니까 그나마 마음이 놓입니다.(중략)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왕자에 맞는 특별 대우를 해 주실 게 아니겠어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옷과 가장 예쁜 비단신을 가져다주세요.(중략) 천국에 가면 천사들이 있을 거예요. 그 천사들에게 내가 왕자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요.
왕자이기에 죽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 어린 왕자의 치기가 불쌍하다 못해 안쓰럽다. 돈이면 자신의 죽음도 다른 이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왕자의 모습은 황금만능의 시대적 예표다. 죽어서까지 자신이 왕자이기에 특별 대우를 받을 것이며 왕자의 신분을 자랑하고 싶다는 대화는 현대인들의 허세와 뿌리 깊은 인본주의적 사고를 제대로 건드리는 도데의 문학적 장치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가야 하며 돌아가고 있다는 지극히 유아적 사고의 발현은 현시대가 얼마나 프톨레마이오스적인지를 우회적으로 비꼰다.
예쁜 일러스트레이션이 함께 수록된 아름답고 서정적인 일곱 편의 단편집은 매우 사랑스럽다. 자극적이지 않고 섬세하기에 어리석음마저 순수해 보인다. 알퐁스 도데가 극작가이기에 그의 글은 더 회화적이며 시각적인 것 같다. 하지만 잔잔히 흐르는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윽고 현실이라는 냉혹함과 자기 실재 앞에 서게 된다. 도데의 문학적 천재성과 반전의 미학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학창 시절 <마지막 수업>을 통해 도데를 처음 만났다. 다 큰 어른이 돼서 다시 만나는 <마지막 수업>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아니 내게 있어서만큼은 전혀 다른 작품이다. 예쁘고 아름다운 동화 속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앙증맞은 리본과 꽃무늬 포장지로 한껏 멋을 냈다. 독자 포인트는 두 가지다! 그냥 어린 시절 읽었던 아름다운 기억 속 동화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도데가 숨겨놓은 기막힌 메타포를 찾기 위해 예쁜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풀어볼 것인가! 선택은 책을 집어 든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