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사람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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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이름만으로도 궁금해서 책을 집게 되죠. 지난번 <방황하는 칼날>을 통해 게이고 작가를 처음 만났습니다. 독자의 흥미를 끄는 스토리 구성과 치밀한 사건의 얼개, 빠른 전개와 완벽한 복선이 미스터리에 특화된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번에 또다시 게이고 작가의 작품을 만납니다. 1998년에 발표한 <수상한 사람들>은 작가의 초기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1985년에 데뷔했기에 그렇죠. 그래서 그런지 플롯 자체가 농익은 듯한 느낌보다는 뭔가 모를 풋풋함이 느껴져요. 아니 신선하다는 의미가 맞겠네요.

 

총 7편의 단편을 한 권으로 엮었습니다. 각각의 단편들이 무겁지 않게 다가와요. 무섭거나 살 떨리는 피 칠갑 스릴러물의 긴장감은 없어요. 그러나 게이고의 천재성은 여기서 발휘되죠. 그것은 바로 섬뜩함의 일상화입니다.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미스터리의 주요 배경으로 설정한 작가의 기발함!

추리 미스터리 소설의 특성상 예비 독자들을 위한 배려로 스포일러는 안 할게요. 다만 게이고는 신혼여행, 직장, 아파트, 낯선 여행지, 친구 등과 같은 너무나 평범한 장소와 사람들을 자신만의 미스터리 문학 장치로 훌륭하게 탈바꿈 시켜놓습니다. 읽으면서 "아! 진짜!?"라는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오게 만드는 작가의 문학적 구성력에 박수를 보내게 돼요.

분위기와 느낌이 기존 작품들과 다른 점 하나는 단편 소설답게 전개가 빠르다는 것이죠. 단편 특성상 이야기의 곁가지를 과감하게 쳐냈어요. 그래서 가독성이 좋아요. 결말을 예측할 수 있는 사건의 복선을 여기저기 던져놓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보물찾기 쪽지 던져 놓듯이요. 하지만 눈치가 어지간히 빠르지 않은 이상 끝까지 결말을 예측하지 못해요. 본서가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유지요.

또 하나의 특징은 개연성입니다. 사실 이게 책을 덮었을 때 뒤따라오는 은근한 저릿함이죠.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라고 웃어넘길 수 없게 만드는 이 뒤끝 있는 끈적함.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여운을 던져줄 수 있느냐의 차이가 바로 명작가의 클래스를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아닐까요? 게이고가 자신의 초기작 <수상한 사람들>에서 이 부분을 여실히 보여주네요.

 

 

인간의 어수룩함이 빚어낸 비극 p289

 

역자는 '인간의 어수룩함이 빚어낸 비극'이라고 총평합니다. 인간의 내면을 다각도에서 관찰하고 이야기로 지면에 풀어냈어요. 작가가 인간의 내면을 얼마나 예의주시하며 바라봤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어요. 사람에 대한 보통의 관심이 아니면 그 안에서 미스터리 소재를 찾아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책은 하나의 플롯이 통일성 있게 이어지는 옴니버스식 구성은 아닙니다. 분명 일곱 편의 단편이 각각의 스토리이고 인물도 전부 달라요. 그런데 책을 덮으며 무엇인가 희미하게 다가오는 묘한 느낌이 있어요. 작가가 책을 통해 말하려는 메시지가 각기 다른 일곱 개의 단편을 하나의 의미로 관통한다는 것이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틀리지 않아요. 쉽게 알 수 없는 다양한 인간의 수많은 복잡한 심리와 내면의 감정이 일상의 정황과 뒤범벅되어 있어요. 진실과 오해가 등을 대고 맞닿아 있지만 서로를 바라볼 수 없기에 진실은 아득함 속에 사라지고 오해만이 커져갑니다. 독자 포인트는 여기에요! 내가 진실이라고 여기고 바라보는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게이고의 천재성이 빛을 발합니다.

"그것 아니야! 네가 오해했어!"라는 외침이 우리네 일상에서 메아리쳐 옵니다.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오해함이 넘쳐나는 세상이 우리의 현실이지요. 그래서 미워하고 반목하며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인간 내면의 어수룩함을 다양한 삶의 상황 속에 깔끔히 이식했어요. 이해와 진실보다는 오해와 선입견이 자연스러운 세상 속에서 소설의 소재가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아요.

옛날 어르신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요놈아! 귀신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이 무서운거여!" 그때는 귀신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줄만 알았어요. 하지만 살면서 느끼는 것은 정말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임을 절감케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네요. 평범함과 개연성으로 무장한 히가시노 게이고식 추리물. 다음 장을 기대하며 조바심으로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넘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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