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심리 현대지성 클래식 39
귀스타브 르 봉 지음, 강주헌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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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혼자일 때는 온순한 양이었다가 함께하면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사자가 되는가? 멀쩡한 남성이 예비군 훈련만 가면 흙바닥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고, 노상방뇨를 한다. 이처럼 미스터리한 의문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고전을 만난다.

19세기 프랑스의 의사이며 사상가인 '귀스타브 르 봉'은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이후 1871년 '파리 코뮌'이라는 시민과 노동자가 세운 혁명 자치 정부의 출현을 직접 목도한다. 이후 르 봉은 역사와 문명을 뒤흔드는 '군중'이 갖는 의미에 주목하게 되고 이러한 관심 속에 탄생한 저작이 바로 본서 <군중심리>다. 책은 군중에 관한 사회심리학 보고서로서 지금까지도 세대를 뛰어넘어 인정받는 탁월한 저작이다.

                            

개인이 모여 군중이 되면 개인으로 존재하는 때처럼 이성적으로 추론하지 못한다. p260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의 사고 체계를 한순간에 무력화시키는 비결은 군중이 가진 독특한 심리학적 메커니즘에 기인한다. 군중 속 개별성을 상실한 인간은 스스로 생각할 능력을 상실하고 군중 안에서 제시되는 견해와 행동을 반성 없이 따른다.

군중은 항상 무의식에 지배를 받는다. 개별 지성은 군중 안에서 소멸되고 무의식적 감정과 행동이 지배한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똑똑한 지성인들도 군중으로 모이면 생각할 능력을 상실한 채 야만인이 되는 이유다.

군중심리의 특징은 이성적 추론보다는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일시적이다. 군중에게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감정을 자극하는 언어의 이미지화가 중요하고 적절한 경구와 언어는 군중을 자극하여 행동케하는 데 매우 중요한 key다. 어떠한 사실에 대한 설득보다는 확언과 반복이 통하고 반복을 통해 형성된 무형의 메시지는 주변으로 전염된다. 전염된 사실은 마침내 위신이라는 권위를 얻게 되고, 위신은 사람들의 판단력과 분별력을 마비시키며 복종과 인정만을 요구할 뿐 어떠한 반론도 허용치 않는다.

 

 

'요제프 괴벨스'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대중을 나치의 전쟁 도구로 삼는데 크나큰 역할을 한 대중 연설과 선전의 대가다. 독일 국민은 군중으로서 괴벨스라는 선전가에 의해 전쟁의 당위성을 암시 받았다. 집단 최면과 환각에 빠진 군중은 비판정신을 결여한 채 군중이 주는 익명성의 면죄부 안에서 개인이라면 결코 저지르지 않았을 끔찍한 범죄도 서슴없이 자행한다. 600만 유대인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비극이 개인의 사고와 사유의 능력을 상실한 군중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악의 평범성을 말한 '한나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을 때 인간이 괴물이 된다는 사실을 '아이히만'의 모습을 통해 봤다. 르 봉은 생각하지 않는 군중 또한 야만 그 자체이며 괴물임을 역설했다.

또한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은 생각의 준거와 기준이 상실된 인간 집단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상세하게 보여 준 흥미로운 저작이다. 인간이 짐승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인간 본성의 변질과 인간성 파괴의 민낯을 본다. 집단 환각과 군중 속에 내재한 야만성을 보여주는 문학적 예시다. 이처럼 역사와 문학을 들추면 군중의 타락한 지성이 뿜어대는 열기로 질식할 정도의 실례가 수북하다.

정치와 종교의 영역에서 군중심리의 미묘한 기제를 간파한 영리한 지도자들은 군중을 통해 꿀을 빨았고, 빵을 먹었다. 반면 군중의 특성을 외면한 지도자는 버림받았고 내쳐졌다. 몇 해 전 영화 속 대사에서 국민을 일단의 미개한 동물로 표현하여 한동안 회자되었던 영화가 있다. 군중의 단순성을 정확히 이해한 원작자가 쓴 대사였다.

 

우리 또한 5년 전 군중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정국은 내년 대선의 열기로 예열되고 있다. 현대 정치 또한 유권자라는 군중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성패의 관건이다.

책을 덮으며 오로지 관찰만으로 군중의 살아있는 심리를 이해하고 연구한 저자의 천재성에 감탄한다.

군중은 다수의 개인이라는 세포가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다. 하지만 개인이 모여 군중이 되면 개인의 개별성은 사라진다. 그렇기에 똑똑한 지성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군중과 무지렁이 무식자층으로 구성된 군중의 지적 차이가 전혀 없다. 모두가 열등하고 단순 무식하다!

 

군중 속 개인은 복잡한 현대 사회 속 주어지는 수많은 아젠다와 거대 담론에 대해 충분히 사유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렇기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 남들이 모두 Yes라고 말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개별성의 추구라는 무모한 듯한 용기다.

개인의 의식과 개성, 각성과 성찰, 사고의 자유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동반되지 않을 때 군중 속 현대인의 삶은 순식간에 몰아쳐오는 집단정신의 파도 속에 함몰될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군중이라는 바닷속에서 열심히 헤엄쳐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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