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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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이 벌써 만 2년을 향해간다. 여전히 세계는 아프다. 혼돈과 혼란의 아수라장 속 인간이라는 존재가 공통적으로 찾는 삶의 행태는 신(神) 존재에 대한 갈망이며 염원이다. "이 고통의 수렁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는 인간 심연의 외침이 지금 시대만큼 들끓은 적도 없다.

몇 년 전 <라틴어 수업>, <로마법 수업>이라는 인문학 도서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 저자는 한국인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한동일 신부다. 이번에 출간된 저자의 신간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종교와 믿음, 신과 인간이라는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주제의 담론이다.

전대미문의 전염병과 함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종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종교와 신을 신앙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다각도의 인문학적 해석의 틀로 관찰하고 기록한 내용이 사뭇 흥미롭다. 한때 가톨릭 사제였던 저자가 사제의 옷을 벗고 한 명의 종교인으로서 인간을 둘러싼 신과 믿음에 대한 단상을 담담한 필치로 남겼다.

저자는 종교의 참 모습과 종교 속 신을 믿는 인간의 태도라는 큰 주제로 이야기를 푼다.

 

L'abito non fa il monaco

라비토 논 파 일 모나코

수도복이 수도승을 만들지 않는다. p120

 

성직의 옷을 입었다고 성직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사람의 태도를 말한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가르침이 내가 속한 사회 공동체와 이웃에게 나의 종교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성직이 어느새 나와 내 가족이 먹고살기 위해 성도들 코 묻은 돈이나 빨아먹는 밥벌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업이 되어버렸을 때 이미 종교는 타락한 것이며 그 사람의 소명은 더 이상 순수하지 않다.

 

저자는 옷의 의미를 간결하게 요약한다. 그러나 속뜻은 무겁다. 옷의 무게는 그 옷의 주인이 걸쳐야 할 삶에 진중함을 더한다. 옷에 걸맞은 삶을 살지 못하는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삶이 자신의 종교를 현대판 아편의 일종으로 변질시킨다.

 

 

"너만이 연주하도록 신이 네게 준 악보는 어디 있는가?" p12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 신이 준 악보를 가지고 인생이라는 음악을 연주해야 할 책임이 주어졌다. 우리 앞에는 80평생을 불협화음 속 악다구니하며 물고 뜯다가 신 앞에 설 것인가 아니면 아름다운 선율로 세상에 예쁘고 착한 음악을 들려주고 그리할 것인가의 선택이 놓였다. 저자는 이 악보를 신이 우리에게 준 '사명'이라고 말한다. 정말 멋진 말이다!

19편의 아름답고 유려한 라틴어 문구로 수놓은 명문이 매 챕터마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새벽이슬처럼 영롱하게 맺혀있다. 어느 것 하나 사유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문장 가운데 마음을 아리는 글귀가 눈에 띈다. 인간의 고통은 서로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사라진 사회가 만들어 낸 구조적 문제일 것이라는 저자의 진단이다. 신을 신앙하지만 정작 신앙이 신념화되어 나와 이웃을 찌르고 아프게 한다.

저자는 존재의 태도가 천국과 지옥을 좌우함을 말한다. 인간이 인간을 돕는 순간 우리 삶은 지옥에서 천국으로 한걸음 더 다가간다. 책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코로나19의 맹위는 수그러들 줄 모른다. 모든 이들이 힘겨워한다. 아픔과 고통의 아우성이 하늘을 울린다. 저자는 부요하여 가난을 모르는 사람들이 현재 가난한 이들의 삶을 논할 때 외치는 정치적 구호와 종교가 말하는 이웃 사랑은 허황된 메아리이며 경험의 이중성을 내비친다고 일갈한다. 종교 공동체(교회)가 스스로 가난을 택할 때 귄위가 생긴다. 슬픔과 탄식이 우리네 삶을 잠식한 이 팬데믹의 시대 속 종교와 종교인들의 사명은 무엇인가?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치장한 은혜와 믿음, 사랑만을 강조한 설교는 넘쳐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종교가 독려하는 타자를 향한 진실된 삶의 태도는 없다.

책을 덮으며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는다. 세상의 모든 아픔과 고통의 근원, 책임을 오롯이 종교에 전가시킬 수는 없지만 이웃의 베인 상처를 끌어안아야 하는 일정량의 책임이 종교에 주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높은 강단의 이론을 낮은 삶이라는 실제에 접목시키지 못할 때 생명은 없다. 오늘도 우리는 밥을 먹고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정말 잘 '믿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신과 인간, 종교와 믿음의 오묘한 역학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저작. 올 가을 추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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