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죽음을 배우다
리디아 더그데일 지음, 김한슬기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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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죽음은 좋은 삶에서 비롯된다. p34

 

각종 건강식품 광고, 골목마다 넘쳐나는 피트니스센터, 요가, 필라테스 스튜디오 등 '웰빙'의 열풍이 대단하다. 부동산 투자와 주식의 관심은 들불과 같다. 소위 잘 먹고 잘 사는 일의 광적 집착은 여전하지만 사회 한편에서 조용히 일어난 '웰다잉'의 추구 또한 새롭다. 잘 죽는 것을 생각한다니 다소 생소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죽음보다는 생명에의 열망에 더 친숙하다. 어느새 절대 타자화 된 죽음은 우리 삶의 바운더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21세기 지금의 시대만큼 살기 편하고 좋은 때가 없다. 날마다 올라오는 SNS의 각종 놀거리와 먹거리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결코 심심할 수 없는 재미와 쾌락의 문화가 이 시대를 대변하는 키워드다. 불로초를 갈망했던 진나라 시황제의 집단 환생을 보는 것만 같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화려한 문화 속 불사의 정신은 잘 죽는 일의 중요성을 희석시켰다. 결코 죽음이라는 불경스러운 단어가 끼어들 수 없는 오감만족 육체의 문화 속에서 삶의 욕구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와 같다.

현직 의사가 바라본 죽음에 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엿보이는 정련된 인문 에세이 한 권이 요 며칠 간 죽음에 관한 나의 관점을 뒤흔들어 놓는다. 생을 향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된 우리네 현실 속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역설적인 책이다. 순백의 북 커버가 인상적인 본서는 전쟁과 기근, 전염병 등 매일 아침 죽음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죽음이 일상화되어 있었던 중세 유럽인들이 실천한 잘 죽는 기술 즉 '아르스 모리엔디'를 전한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잘 죽는 기술이다. 그 안에는 죽음의 일상성과 당신도 죽는다는 인간 실존의 문제가 포함된다. 태어남과 동시에 죽어간다는 인간 실존의 근원적 견해는 죽음이 실제로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운 지를 직설적으로 표현했고, 그 안에서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생명의 유한성을 발견한다. 또한 저자는 죽음을 직면해야 하는 실존이 겪는 두려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인간 답지 못하게 맞이하는 죽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 사후 세계에의 의문, 장례의 방법과 애도의 자세 등 잘 죽는 기술로서의 아르스 모리엔디를 통해 인간답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생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방법을 밀도 있는 필치로 기록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빠르든 늦든 우리 모두는 환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사람의 몸은 쇠한다... 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쓸어넘기는 나의 모습을 본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청춘의 흔적들이 사그라져 가는 모습 속 세월의 무게가 나의 육체를 짓누른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인간이 취해야 할 행위는 오직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진중함이 실종된 이 가볍고 까불거리는 문화 속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와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의 가치가 빛난다. 죽음 앞에서 삶이 한없이 투명해진다. 이렇듯 죽음에 관한 묵상은 우리를 절망이 아닌 삶의 소망으로 이끈다. 인간답게 눈부시게 살다가 인간답게 아름답게 죽는 것!

5개월 전 아버지께서 천국으로 가셨다. 아버지의 빈소, 영정을 바라보며 나의 죽음을 생각했다. 불과 잠시 후면 나 또한 저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이 차분하게 교차한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곁에 찾아온 죽음을 직면하는 것, 언젠가 나도 죽을 것이라는 '메멘토 모리'의 재고가 우리를 잘 죽는 일을 준비하는 잘 사는 삶으로 이끈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목회자 '리처드 백스터'는 죽음에 관한 그의 책에서 죽음을 영원한 안식으로 표현했다. 물론 믿음을 가진 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표현이지만 요지는 안식으로 표현되는 죽음이 모든 이들에게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호미넴 테 메멘토!"(한낱 인간임을 잊지 마십시오!)를 삶의 좌우명으로 여기며 삶을 관조하고 죽음을 사유할 독자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한다...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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