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 - 계절마다 피는 평범한 꽃들로 엮어낸 찬란한 인간의 역사 현대지성 테마 세계사 4
캐시어 바디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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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는 유채꽃과 동백꽃이 유명하다. 보통 3~4월이 절정인 유채꽃이 올해는 1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했다.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밭을 보고 있노라면 잠시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은 황홀경에 빠진다. 꽃 한 송이가 전해주는 그윽한 향과 시각적 아름다움은 수많은 탐미적 인간들에게 열광의 대상이다. 인간의 오랜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로서 이어져 온 꽃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를 고찰해볼 수 있는 독특한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영문학자 '캐시어 바디'의 <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는 사계절을 대표하는 16가지의 꽃들을 인간 역사의 한 장으로 불러낸다. 꽃은 기쁨과 축하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임과 동시에 슬픔과 애도를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전쟁, 혁명, 이념, 미술, 종교, 문화와 같은 인간 의식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각 계절을 대표하는 꽃들을 4가지씩 선별했다. 흔히 우리의 정서 속 어버이날의 꽃이라고 여기는 카네이션이 가지는 내적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변종으로 탄생한 녹색 카네이션은 동성애를 상징하며 붉은 카네이션은 노동자의 권리와 저항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반면 흰색 카네이션은 어머니날과 가족, 모성애를 상징했지만 19세기 중반 미국에서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인종차별적 상징으로서 매우 불명예스럽게 사용되기도 했다. 보통 사랑하는 여인에게 선물하는 장미는 어떤가? 저자는 장미가 역사적으로 인간의 성(性)을 떠올리게 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고 말한다. 장미가 가지는 성적 갈망의 의미와는 반대로 기독교의 자선, 행복에 대한 기대와 같은 전혀 다른 의미 또한 가진다고 하니 이것 또한 흥미롭다. 국화는 반전의 상징임과 동시에 일본에서는 벚꽃과 더불어 전쟁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했으니 이 또한 역설이다. 천황을 위해서 벚꽃과 같이 떨어져야 한다고 외쳤던 일본은 태평양 전쟁 당시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의 공군 조종사들이 미국 항공모함을 향해 떨어지도록 종용했다. 그뿐인가? 물불 안 가리고 총검 돌격을 감행했던 일본 육군의 일명 '반자이 어택' 또한 벚꽃과 같이 천황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미군의 기관총탄 앞에 내던지게 만들었다. 아까운 젊은 군인들의 목숨이 꽃과 같이 졌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역사적으로 꽃에 이름을 부여하고 의미를 덧입힌 것은 인간이다. 계절에 따라서 항상 그 자리에서 피고 지는 꽃은 가치중립적이다. 이념도 없고 탐욕도 없으며 투쟁도 없다. 꽃은 꽃 자체로서 아름답다. 그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심미적 인간들에게 기쁨과 정서적 만족을 주는 꽃은 날것 그대로 좋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라는 흔하디흔한 유행가의 가사처럼 정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가? 책에서 느끼는 것만으로는 결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지는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반목과 다툼, 욕망과 정욕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인간은 오늘 길가에 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의 꽃과 비교해도 별로 아름답지 않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요즘 우리 집 2호가 혀 짧은 소리로 자주 부르는 노래다. 그렇다. 아무 데나 피어도 꽃이고 생긴 대로 이름 없이 피는 들꽃이라도 모두 다 꽃이다. 나는 아이가 부르는 노래 가사 속에서 꽃이 인간에게 전하는 작은 메시지를 발견한다. 생각과 사상, 성향에 따라 출신과 편을 가르고 무언가를 자꾸 규정하며 정의하여 무형의 프레임을 굴레 씌우는 세상을 향해 이 동요의 메시지는 부드럽지만 날 섰다. 책을 읽고 동요를 들으니 섬찟하다. 책의 내용 전체가 인간이 꽃에게 부여한 의미와 이미지가 이렇기에 그렇다. 꽃은 그냥 생긴 대로 이름도 없고 욕심도 없이 피었다 진다.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확실히 인간은 꽃보다 아름답지 않은 게 맞다! 꽃이라는 평범한 소재가 역사와 만나 묘한 향내를 풍기는 독특한 저작이다. 단순히 흥미로운 꽃 이야기를 떠나서 우리 자신을 성찰함과 동시에 깊은 인문학적 교훈을 길어올 릴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책, 예쁜 꽃 화보집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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