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한중록 (패브릭 양장) - 1795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혜경궁 홍씨 지음, 박병성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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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후기 왕실 속 비극의 역사로 회자되는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의 죽음이 아닐 수 없다. 본서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 싼 이야기를 그의 아내 혜경궁 홍씨가 직접 기록한 자전적 회고록으로서 18세기 조선시대의 문화와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사료적이며 동시에 문학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궁중문학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책은 필사본 총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저자의 친정 조카 홍수영의 청에 의해 회고록의 형태로 자신의 출생과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한 이야기 등이 기술된다. 이후 기록들은 혜경궁 홍씨가 남편 사도세자가 시아버지 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가슴 아프고 억울한 사실을 자신의 손자인 순조에게 알리기 위해서 쓰여졌다.

어린 나이에 부모의 품을 떠나야만 했던 사뭇치는 비애와 친정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읽는 이의 마음을 아릿하게 저며온다. 입궁 후 왕실의 일가로서 엄격한 왕실의 법도를 준수하며 세자빈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지켜나가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했지만 안쓰러움으로 다가온다. 시아버지 영조와 남편 사도세자 사이의 숨막히는 관계는 발 한 번 잘못 내딛으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는 위험스런 외줄타기와 같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묘사된다. 모든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조선시대 그것도 궁중 여인의 그 말못할 사연이 오죽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하다.

이후 남편이 아버지에 의해 뒤주 속에 갇혀 죽게 되는 충격적인 사건을 아녀자의 몸으로 오롯히 받아내야만 했던 슬픔이야말로 죽음보다 더 큰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안타까움은 그러한 슬픔조차 마음대로 내비칠 수 없는 서릿발과 같은 당시의 상황에 대한 원망이다. "모자(母子)를 보전함이 다 임금의 은혜 덕분입니다" 남편을 죽인 시아버지 앞에서 소위 표정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막힌 사연이 또 있을까?

사도세자가 죽고 난 이후의 이야기는 대체로 자신의 친정 가문에 대한 정적들의 모함과 음해에 대한 기록들이다. 화완옹주와 그녀의 양아들 정후겸, 홍국영과 김종수 등 정적들은 아버지 홍봉한, 남동생 홍낙임 등을 역적으로 몰았고, 혜경궁 홍씨의 집안을 역적으로 몰아 폐가멸문 시키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다. 이러한 풍전등화와 같은 친정을 살리기 위해서 온갖 수모와 수치를 견뎌낸 이야기들이 슬픔과 분노의 감정과 적절히 혼합된 채 매우 절제된 필치로 기록된다. 그리고 마지막권에서는 남편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한권 전체의 지면을 할애하여 상세하게 기록함으로서 손자인 순조에게 할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여과없이 남기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사도세자의 아내로서 혜경궁 홍씨가 곁에서 남편을 지켜보며 모든 사건의 전말을 기록한 본서의 내용을 통해 후대의 독자들은 당시 사건의 정황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는 유익함이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당시 인물들의 성품과 성향을 너무나 상세하게 기술한다. 영조의 인품과 사도세자의 사람 됨됨이 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 싼 왕실 인물들인 정성왕후, 정순왕후, 선희궁, 화완옹주, 친아버지 홍봉한 등등 인물들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본서의 1차적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게끔 만든다. 책은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를 축으로 하는 일종의 가족 비극사라고 보아도 무방하지만 이는 작품 감상에 있어 한 단면만을 바라보는 너무나 단순한 관점이 아닐 수 없다.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에 있어서 가장 큰 관심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야기의 백미는 다름아닌 임오화변, 즉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게 되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두고 다양한 관측과 해석이 분분하다. 그중 하나는 아버지 영조가 아들 세자에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사랑 대신 매사에 비난과 비판을 쏟아부었고 이로인해 어린 심성에 쌓인 그 네거티브적인 영향이 세자를 비뚤어지게 만들었으며 그것이 세자를 정신적으로 병들게하고 마침내는 죽임 당하게 했다는 가족 비극사적 관점에서의 해석이다. 세자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그 홀대와 냉대로 인해 자신의 화를 못이겨 궁중 내인의 목을 쳐 살해하고,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는 일종의 정신분열 행동을 보이는 모습 또한 세자의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을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결국 그를 뒤주 속에 갇혀 죽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이었을까는 재고해볼 여지가 있는 문제이다.

 

 

또 하나의 관점은 사도 세자가 당시 노론과 소론이라는 당쟁의 희생양이라는 견해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당시 영조와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 싼 복잡한 정치적 지형과 주변인들의 암투와 계략 속에서 얼키고 설킨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당쟁의 과정 가운데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부자지간 이루어져야 할 건강한 관계의 결핍 등이 어우러지며 급기야는 이 모든 것이 복합적 원인이 되어 사도세자를 죽음이라는 비극의 장으로 내몰게 된 것은 아닐까 자문해본다.

영조 또한 자신의 이복형 경종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지만 본인이 정실 법통의 문제에 있어서 무수리 출신 어머니의 아들로서 핸디캡이 있었을 것이고, 자신을 지지하는 노론파 세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소론을 지지했던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와는 보이지 않는 감정적 반목이 있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다. 또한 한중록을 보면 종묘사직의 안위를 위한다는 명분 하에 사도세자를 죽이라는 '대처분'의 의견을 제안한 사람이 다름아닌 노론파 사람으로서 사도세자의 생모인 선희궁이었다는 사실도 어찌보면 사도 세자가 당쟁의 희생양이 아니었을까하는 충분한 개연성을 내포한다. "소조의 병이 점점 깊어 바라는 것이 없으니, 소인이 차마 이 말씀은 모자지간의 도리로 보아 못할 일이지만, 옥체를 보호하고 세손을 건져 종사를 평안히 하는 일이 옳으니 대처분을 하소서"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사도세자의 아내로서 본서의 저자인 혜경궁 홍씨 또한 노론파 사람이었다는점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한낱 세자비가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싶지만 자신의 아들 세손(정조)과 자신의 목숨과 친정의 안위를 위해서 태연하게 몸가짐을 바로했던 혜경궁 홍씨의 모습이 괜시리 무섭기도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이렇듯 영조와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견해와 주장은 너무나 분분하다. 역사에 만약과 추측은 있을 수 없다고 하기에 나의 견해 또한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이 가진 역사적 가치와 국문 여류 문학으로서의 가치는 탁월하다. 세자빈이라는 상류층 여성의 수려하고 아름다운 문장과 극도로 절제된 필치는 여느 문학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 '뒤주대왕',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팩트는 옆으로 잠시 밀어놓고, 한중록이라는 저작이 가진 문학적 깊이감에 침잠해볼 수 있다면야 그것으로 이미 행복한 독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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