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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페미니즘
웨인 A. 그루뎀 지음, 조계광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20년 3월
평점 :

오래 전 TV 광고 카피 중에 "모든 이들이 YES! 라고 말할 때 NO!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오늘 리뷰하게 되는 책이 바로 이 광고 카피와 같은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신앙을 고백하는 전통적 개신교의 신자들에게 있어서 삶의 최종적인 권위는 바로 성경이다. 성경만이 오직 우리 삶의 유일한 권위이며 행동과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러한 성경의 권위는 결코 변개하거나 훼손할 수 없으며 이러한 성경의 순수성과 무오성을 수호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수 많은 성도들은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본서 <복음주의 페미니즘>은 바로 이와 같이 모든 개신교 신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받아들여지는 성경의 권위에 기초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밝힌 탁월한 저작이다.
이 책의 저자 '웨인 그루뎀' 박사는 복음주의 목회권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저명한 성경신학자이자 조직신학자이다. 그런 그의 2006년 발간된 너무나 귀한 책이 이번에 CH북스를 통해 번역되어 한국 교회에 소개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고 기쁜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의 제목인 복음주의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대다수 신자된 독자들에게 매우 낯설다. 현대사회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어휘가 갖는 느낌이나 분위기가 사실 썩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 없기에 책의 제목은 더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논쟁의 주된 핵심은 바로 20세기에 들어 개신교내에서 첨예한 신학적 대립의 구도를 보이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교회의 지도자적 위치에 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성 목회자 안수에 관한 문제가 논의의 중심이다. 그리고 책의 제목 '복음주의 페미니즘'은 바로 20세기 초중반부터 거세어진 신학적 자유주의(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부인하는 사상체계)의 영향 아래 복음주의 교단 안에서 벌어지는 여성 목회자 안수와 지도자적 위치에 대한 허용을 인정하려고 하는 시도들에 대한 신조어로서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저자인 웨인 그루뎀 교수는 이러한 복음주의 교단 내에서 벌어지는 복음주의 페미니즘이 왜 성경적으로 잘못되었고 그것이 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에 반하는 배교적 사상인지에 대해 성경과 신학, 전통과 역사적인 모든 분야의 자료와 고증을 통해 입증하고, 경고하기 위해서 이 책을 집필했다.
책은 크게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의 성직 안수에 대한 승인과 자유주의의 역사적 연관성,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거나 부인하는 복음주의 페미니즘의 다양한 견해들, 논거가 희박하거나 거짓된 주장에 근거한 복음주의 페미니즘의 견해들, 복음주의 페미니즘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그런데 우선 독자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2가지 중요한 개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평등주의와 상호보완주의이다. 평등주의는 말 그대로 성경은 교회와 가정 안에서 남성과 여성의 위치와 지위, 사역의 역할 등에 대해서 구분을 두지 않는다라는 주장으로서 다름아닌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주된 사상이다. 반면 상호보완주의는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가치를 지니지만 교회와 가정 안에서 남성과 여성은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위치와 지위를 가지며 사역에 있어서도 역할의 차이와 구분이 있음을 말하는 전통적인 복음적 개혁주의의 주장이다. 이러한 일련의 기본적인 용어를 이해하고 책을 읽어내려가다보면 각 진영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전후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상황 속에서 절대진리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성과 관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대조류의 영향은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신학적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시도된 여성 성직 안수는 이후 복음주의 교단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면서 남여의 성경적 동등성을 주장하는 동등주의로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일부 복음주의 진영의 급진적인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급기야는 미국 내 적지 않은 복음주의 교단과 교회들이 여성 성직 안수를 승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저자는 책을 통해서 여성 성직 안수의 문제가 분명 하나님께서 성경의 말씀을 통해 금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훼손하면서까지 강행하는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행보에 대해 큰 우려와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저자는 책을 통해 평등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유주의자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평등주의자들이 구사하는 논리가 성경의 권위를 거듭 훼손하며 교회를 점차 신학적 자유주의로 이끄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2부와 3부를 통해서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고 부인하는 복음주의 페미니즘의 견해들과 논거가 희박하거나 억측에 가까운 그들의 주장을 제시하며 탁월한 성경적 식견과 냉철한 신학적 통찰력으로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함으로서 복음주의 페미니즘의 오류를 여과없이 들춰내고 고발한다. 특별히 고린도전서와 디모데전서는 교회 내 여성들의 위치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견해가 가장 잘 드러난 성경 말씀이다. 그렇기에 이 성경의 내용은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가장 많이 변개하고 자의적 해석으로 훼손시키는 성경 말씀 중 하나이기에 저자는 매우 공들여서 그들의 반론에 대해 날카롭고 예리한 역반론을 펼치며 그들의 거센 공격을 방어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부를 통해서는 그렇다면 이제 복음주의 페미니즘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가고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저자는 교회 내 여성 안수와 지도자적 위치를 승인하는 문제는 결국 교회를 신학적 자유주의로 이끄는 지름길임을 밝힌다. 왜냐하면 20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는 교단과 교회들은 모두 여성 목사 안수 허용과 교단내 지도자 위치의 승인, 그리고 나아가서는 동성애 인정과 동성애자 목사 안수의 문제까지 승인한 상태에 와 있기에 그들의 전례를 고스란히 답습해가는 복음주의 페미니즘을 따르는 그들의 교단과 교회가 신학적 자유주의로 기우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결론부에서 결국 "궁극적으로는 성경이다!" 라는 의미심장한 한마디의 말을 남긴다. 그리고 성경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무이한 당신의 말씀이며 그분의 말씀이 일점일획의 거짓이나 오류가 없는 무오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믿는 신자라면 무엇이 옳은 것인지 이 책을 통해서 분별해보기를 바란다는 바램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책을 덮으며 몇가지 상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우선 책을 읽는내내 저자인 웨인 그루뎀 교수의 그 신앙적 절개와 믿음 그리고 용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성경의 말씀을 왜곡하고 곡해하여 어떻게든 가정과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여성 성직 안수와 지도자적 위치를 동등하게 차지하려고하는 수 많은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거센 도전과 반론 앞에서 그가 너무나 외로워 보였다. 반면 상호보완주의를 지지하는 전통적 개혁주의자들의 목소리는 왜이리 작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웨인 그루뎀이 밀려오는 좌경화된 사상의 물결에 맞서 성경의 절대성과 유일성, 무오성을 수호하기 위해서 정말 몸이 바스라지는 지성적 헌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진중한 부르심 앞에 순종하여 연구실에 앉아 몰려오는 반대와 저항의 압력 속에서 본서를 집필해갔을 저자의 뒷모습 속에서 교황주의자들을 비롯한 수 많은 대적자들에 둘러싸여 죽음의 위협 앞에서 성경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전 삶을 불태운 하나님의 사람 존 칼빈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