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암살범이 가지고 있었다는 책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책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1년 미국의 작가 'J.D. 샐린저'에 의해서 쓰여진 소설이다. 16세 한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거짓과 허위, 위선으로 가득찬 세계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비판이 실린 일종의 성장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 사회와 인간군상에 대한 노골적 반항과 비아냥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순과 가면 뒤 숨겨진 사람들의 폐부를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데 있어서 본서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에게 박수갈채를 받는 위대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크리스마스를 몇일 앞두고 영어과목을 제외한 전과목 낙제라는 마치 학교에 대한 반항적 기질의 발로와 같은 형편없는 결과로 인해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는다. 이후 기숙사를 나와 3일간 뉴욕 시내를 방황하며 자신이 만나고 격게 된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회상의 형식으로 풀어놓는다. 특별히 본서의 특징 중 하나는 저속한 비속어와 은어 심지어는 걸죽한 욕설까지 여과없이 기록됨으로서 마치 독자가 주인공 콜필드와 함께 옆에서 그와 동행하는 듯한 현장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문제투성이의 소위 하자있는 인간들이다. 그의 기숙사 룸메이트인 스트라드레이터와 애클리와 같은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한때 관심 가졌던 여자 친구 샐리, 뉴욕 시내를 방황하며 만난 택시 기사들, 자신을 속이고 돈을 훔쳐간 호텔의 벨보이이며 동시에 포주인 모리스 그리고 창녀 서니 등 콜필드를 둘러싼 인물들의 대다수는 그가 그토록 증오하는 인간군상의 대표적 캐릭터들이다.

하지만 반대로 콜필드로 하여금 그래도 세상에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함을 알게함으로서 이후 소설의 결말에서 그가 다시한번 자신의 삶에 대해 소망을 갖고 일어날 힘의 원동력이 되어 준 인물들 또한 등장한다. 자신이 믿고사랑하는 여동생 피비와 뉴욕 거리를 방황하다가 만난 두명의 수녀들 그리고 약간의 오해로 서먹해진 자신의 옛 스승 엔톨리니 선생 등이 그들이다.

콜필드가 바라보는 세상은 대체적으로 어둡다. 그리고 비관적이다. 16세 사춘기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은 정직함과 진실함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뒷골목 쓰레기장과 같다. 저자인 샐린저는 바로 이와 같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마치 중2병 걸린 것 같은 콜필드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사회의 모순과 인간들의 위선 가득한 참모습을 마음껏 비꼬고 희화화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콜필드가 퇴학을 당한 학교라는 공간은 콜필드에게 있어서는 모범적인 학생은 이렇게 공부해야하고 이러이러한 바른 행실을 가져야 한다라고 강요하는 또 하나의 불합리함과 부조리함의 온상이다. 더불어 추운 겨울 3일 동안 뉴욕 시내를 배회하며 만나게 된 사람들 또한 이러한 사회가 낳은 병적 부산물일 수도 있다는 콜필드만의 정의를 가능케 만든다.

개인적으로 본서를 아주 오래 전 완독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책이 주는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만큼 당시 나의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이 제한적이고 미숙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좀 더 나이를 먹고 책을 재독하며 느끼는 것은 그래도 이제는 저자 샐린저가 콜필드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말하고자하는 진의를 대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이 마지막 책의 뚜껑을 덮으며 나의 마음을 훈훈하게 채운다. "어차피 사는건 누구나 다 똑같어! 너무 유별나게 굴지마!"라고 말하는 사회의 목소리가 우리 모두를 획일성의 프레임 안에 가둔다. 그리고 대다수의 범인들은 그러한 사회가 전달하는 무언의 압력 속에 굴복하며 그 틀 안에 자신을 쑤셔넣는데에 열심이다. 샐린저는 어쩌면 당시 미국 사회가 요구하는 그 전통적인 관습과 기성 세대가 말하는 무형의 윤리적 기준에 대한 반발을 주인공 콜필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래 전 감명깊게 본 영화 한편이 있는데 다름아닌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파인딩 포레스터>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자말' 이라는 빈민가의 흑인 소년은 우연한 기회에 동네에서 당대 전설적인 작가로 알려졌지만 첫 작품 이후 자취를 감추고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은둔하고 있던 '윌리엄 포레스터'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자말의 불우한 배경으로 인해 그가 쓴 글마저도 우숩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포레스터는 자말의 글쓰기 개인 선생이 되어줌으로서 자말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하며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포레스터와 자말은 스승과 제자의 우정을 키워간다. 이 영화는 개봉 후 영화에 등장하는 천재 작가 윌리엄 포레스터가 바로 본서의 저자인 J.D. 샐린저를 모델링했다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왜냐하면 샐린저 또한 아내와 이혼하고 1968년 이후 실제로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은둔의 삶으로 사라진 인물이기에 그렇다.

영화의 주인공이 본서의 저자를 염두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진위는 알 수 없지만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독자는 왜 저자가 은둔의 삶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까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본서를 통해 어렴풋이 발견하게 되는 작가의 사고와 정신의 한 편린을 볼 때 본서의 내용과 작가의 삶이 어느 정도 중첩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모든 사물과 세상, 인간에 대한 그 중2병적 사고와 관점으로 똘똘뭉친 주인공 콜필드에게 그의 여동생 피비가 "그럼 도대체 오빠가 되려고 하는 것은 뭐야?" 라고 물었을 때 콜필드는 "착한 어린이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게 그들을 지켜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대답한다. 인간 정신의 순수함이 사라진 세대 속에서 어쩌면 콜필드의 생각은 우스꽝스러운 광대와 같은 사고이며 4차원적 의식 속에 살아가는 이방인과 같은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콜필드가 말하는 호밀밭의 파수꾼과 같은 선한 의식을 지닌 인간을 이상하게 여기는 기존 세상이 가지는 목소리와 의식이 더 비정상적이고 병적인 것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아마도 샐린저는 바로 이와 같이 병들고 비뚤어진 세상에 대한 반감과 염증을 안고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숨은 것은 아닐런지...

입술에서는 온갖 욕설과 비속어가 튀어나오지만 어린이들이 지나다니는 복도 벽에 적힌 음담패설을 지나치지 못하고 애써 지우려고 노력하는 주인공 콜필드의 진짜 모습을 통해 우리가 사는 현실 세상 속에도 '호밀밭의 파수꾼'과 같은 사람들이 필요함을 느끼고 싶다면 단연코 이 책은 일독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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