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벤허 (1900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 그리스도 이야기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 월리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는 좋은 책들이 정말 많다. 그렇기에 매일 매일 셀 수 없을 정도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서점가의 신간 코너에서 독자는 어떤 책을 읽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곤 한다. 다양한 분야 속 다채로운 주제의 책들 그리고 이름이 알려진 관록의 작가들과 이제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신예 작가들의 책까지 정말 많은 책들이 독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그러나 명불허전이라는 옛말이 건재하듯 오랜 세월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사랑받아 왔던 책들은 있는 법. 오늘 리뷰하게 되는 책, '루 월리스'의 <벤허>야 말로 명불허전에 딱 맞는 바로 그러한 걸작 중의 걸작이다. 요즘 폭넓은 독자층으로부터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는 고전문학 작품들을 출간 당시 초판본 커버 디자인을 그대로 살려서 출간하고 있는 출판사 '더 스토리'의 초판본 시리즈가 인기다. 본서도 바로 이 초판본 시리즈 기획 제작의 한권으로서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 성탄절이 되면 특선영화로 방영되곤 했던 영화 <벤허>는 많은 영화팬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명작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빛바랜 컬러 TV를 통해 본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역동적이고 스릴 넘쳤던 원형 경기장 안에서의 전차 경주씬이다. 이 장면은 요즘의 블록버스터와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화면을 압도하는 전차마들의 무시무시한 질주와 그들이 일으키는 흙먼지, 기수들의 살기 어린 눈빛과 경기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관중들의 외침과 환호성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 영화 <벤허>의 스펙타클한 명장면 가운데 하나다. <벤허>는 1880년 미국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루 월리스에 의해서 쓰여진 장편 역사 소설이며 위에 언급한 영화 <벤허>는 바로 이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어 아카데미 11개 부문 상을 휩쓴 명작이다. 소설은 기독교적 배경 속에서 '벤허'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기록한 일종의 대서사시와 같다. 벤허(BEN-HUR), '벤'은 히브리어로 아들이라는 뜻으로서 직역을 하면 '허의 아들, 허 가문의 아들' 이라는 의미다.

주인공은 이스라엘이 로마 제국의 압제하에 있던 당시 예루살렘 부유한 유대 왕족 '허' 가문의 아들 '유다'이다. 사건의 발단은 유대지역의 신임 로마 총독으로 부임하는 발레리우스 그라투스의 행렬을 자신의 집 옥상에서 구경하던 중 낡은 타일이 떨어져나가면서 운 나쁘게도 그것이 그라투스 총독의 머리 위로 떨어지게 된다. 말에서 낙마한 총독은 가벼운 부상을 입지만 유다는 총독 암살 혐의를 받고 현행범으로 체포되고, 자신의 사랑하는 어머니와 여동생 티르자 마저 로마군에게 붙잡혀가는 비극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러한 비극을 옆에서 방조하며 아니 더 부추기며 유다와 그의 가족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사람은 다름아닌 유다와 어린시절부터 죽마고우로 지냈던 로마인 '메살라' 였다. 도움을 요청하는 유다를 뿌리치고 오히려 더욱 더 단호하게 유다와 그의 가족을 총독 암살범으로 몰아가며 그가 얻고자 했던 것은 명예와 권력 그리고 허 가문이 가진 막대한 재산이었다.

이렇게 유다는 총독 암살범이라는 누명을 쓴채 로마 해군의 갤리선 노잡이 노예로 끌려가고, 어머니와 누이 티르자 또한 생사와 행방을 알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됨으로서 하루아침에 정상적인 가정의 행복은 산산조각 나버린다. 이후 벤허 유다는 갤리선 노잡이 노예로 죽음과 같은 3년여의 시간을 보내며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하게 된다. 어느날 그가 탄 배가 그리스 해적선과의 전투 도중 침몰하고, 그 와중에 살아남은 유다는 익사 직전에 있던 로마 해군 총사령관 퀸투스 아리우스를 건져내어 그의 생명을 구한다. 이후 승전보를 안고 로마로 개선한 아리우스는 유다를 자신의 양아들로 삼아 모든 부와 명예를 상속시킨다.

유대 왕족에서 갤리선 노예 그리고 다시 부유한 로마 귀족이 된 벤허에게 이제는 오직 두가지의 삶의 목표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파멸에 이르게 한 옛 친구이자 이제는 그의 원수가 된 비열한 로마인 메살라에 대한 원한과 복수, 그리고 생사를 알 길 없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찾는 일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벤허는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유무형의 도움을 받으며 잠시 언급한 영화 벤허의 명장면 중 하나인 전차 경주를 통해 마침내 그렇게도 바라던 원수 메살라를 수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꺽어버림으로 통쾌한 복수극의 방점을 찍는다. 이 경주의 과정 중 전차에서 낙마한 메살라는 뒤따르던 다른 기수의 말과 전차에 깔려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고, 생명은 건지지만 하반신 불구라는 죽음보다 끔찍한 장애를 입게 된다. 더불어 자신의 승리를 오만스럽게 낙점하며 전 재산을 스포츠 토토하듯 내걸었던 메살라는 패배로 인해 모든 재산을 잃게 되는 인과응보의 살아있는 표본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개인적인 복수를 완성한 유다의 분노어린 칼끝은 이제 그의 가정과 자신의 민족을 압제하는 로마 제국 전체를 향한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어느 비범한 사람과의 운명적인 만남이다.

로마 제국을 향해 피의 복수를 꿈꾸고 계획하던 벤허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그분은 왕이 되는가가 아니라 어떤 왕이 되는가의 여부를 궁금케 만든 사람이다. 벤허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그분을 로마제국으로부터 유대 민족을 해방시킬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지도자로 이해했다. 그리고 유대인의 왕께서 로마 제국에 대해 거사를 일으킬 때 자신 또한 그동안 갈고 닦았던 무예와 병법으로 왕을 도와 로마 제국 타도의 최전선에 서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 대목에서 복음의 신비를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논란은 지금 이 세상 속에서도 여전하기에 벤허가 살았던 당시는 더욱 더 미스테리한 주제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간이 필멸의 육체와 불멸의 영혼, 두 가지가 하나로 합해진 존재임을 모르거나 이해못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수수께끼다." 벤허의 추측과 생각이 핀트가 나가도 한참 잘못된 방향으로 벗어났음을 독자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780여페이지의 어마무시한 두께, 책마니아들의 농담으로 벽돌책이라고 불리는 대작이 가지는 문학적 가치와 책이 뿜어내는 진중한 무게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리뷰의 서두에서 말한대로 정말 좋은 책이라고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책을 표현하는 미사여구가 빈약할 따름이다. 로마로부터 가족과 재산, 자신의 인생까지 송두리채 빼앗긴 벤허라는 캐릭터가 표현하는 전반적인 느낌은 뼈에 사무치는 원한과 혈관을 얼어붙게 만드는 복수에 대한 갈망이며 동시에 헤어진 가족들에 대한 애뜻한 연민이자 그리움이다. 그러나 본서는 벤허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룸과 동시에 2천년전 유대땅에 성육신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기록해나간다. 그렇기에 눈치가 빠른 독자는 본 소설이 일종의 '투 트랙'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 벤허의 이야기와 성경 속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 사건이라는 2개의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마치 씨줄과 날줄로 엮이고 중첩되어지듯 맞물리면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책을 통해서 '루 월리스'의 작가적 역량에 대해 무한감탄하며 읽었다. 본서를 단지 기독교적 색채를 띤 종교소설 정도로만 이해하면 이 책을 한참 오해한 것이다. 그리스도 탄생 당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이집트, 로마,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까지 근동 지방의 인문적 특색과 문화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작가의 방대한 역사적 배경 지식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렇기에 본서는 단순 종교적 색채를 띈 소설의 범주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와 시대적 배경이 어우러진 인문고전으로서 평가하기에도 결코 손색이 없다.

몇일동안 새벽잠을 반납하며 읽는 중 가장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던 장면은 그라투스 총독 암살범의 누명을 쓰고 갤리선 노예로 끌려가던 벤허와 이름모를 어느 갈릴리 청년의 조우였다. 갈증 속에 허덕이며 개처럼 끌려가던 벤허에게 다가와 물 한잔을 건네던 이 청년은 다름아닌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예수였다. 그리고 이 장면은 8년이 지나 골고다라는 언덕에서 동일하게 재연된다. 단지 물을 건네는 사람의 위치가 바뀌었을 뿐. 유대인의 왕으로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던 예수에게 벤허는 자신에게 물을 건네셨던 예수를 기억하며 포도주를 건넨다. 갤리선 노예로 끌려가던 벤허와 청년 예수의 만남은 작가 루 월리스가 만들어낸 완벽한 복선이다. 소설의 한 측면이 워낙 성경에 기반하고 있기에 마치 실화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지만 픽션임을 감안한다해도 작가가 어떻게 이런 허구적 복선을 완벽하게 구상했을까 생각하니 다소 소름끼치는 전율과 감동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읽는내내 개신교 신자로서 깊은 감동의 연속이었다. 비단 종교를 떠나서도 흥미로움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는 책이 많지 않은데 이 책은 그러한 독자의 두가지 욕구를 모두 만족시켜주기에 충분한 저작이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아직 읽어본 적 없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단연코 서점 장바구니 구매 1순위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원한과 복수 그리고 사랑으로 승화되어 그 모든 미움과 증오를 이기는 진정한 힘의 실체를 깨달은 한 남자의 인생 드라마는 여전히 반목하고 미워하며 질투하고 질시하는 깨어짐과 투쟁이 일상화 되어버린 현대인들의 가슴에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동과 따뜻한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더 스토리 출판사의 초판본 시리즈 <벤허>와 함께 따스한 봄 햇살 속에서 한권의 고전이 주는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껴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