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평점 :

요 근래 아침 출근할 때마다 차량 흐름이 가장 많은 교차로에서 심심찮게 목격되는 장면이 있다. 바로 철마다 돌아오는 풍경 중 하나인 예비 정치인들의 1인 선거 운동 모습이다. 이 모습을 보니 선거철이 다가옴을 실감한다. 이제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우리는 동네 곳곳에서 번지르르하고 유려한 문체를 사용한 입담의 대결로 청중들을 휘감는 그들의 유세를 보고 듣게 될 것이다. 이러한 단상 속에 집어든 책은 바로 연설과 관련된 고전 중의 고전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이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였던 아리스토텔레스, 이름만 들어도 지성적 위용이 느껴지는 저자가 수사학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썼다. 당시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할 때 본서는 탄생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가진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가 번성했던 시절 작은 도시국가 안에서 정책의 입안과 결정은 많지 않은 수의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의견을 게재하고 토론과 논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내는 등의 직접 민주주의로 꽃을 피웠던 시기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 청중에게 호소하고, 그 호소한 내용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청중들을 사로잡는 연설, 웅변과 같은 말하기 기술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의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윤리적 고려 없이 실용적이고 실천적 지혜를 중시했던 말쟁이들인 소피스트의 수사학은 사실적 증명이 아닌 청중의 감정을 자극하여 자신들의 의견에 동조하게 끔 만드는 것임을 비판하며 올바른 수사학의 필요성을 재고하기 시작한다.
총 3부로 구성된 본서는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진 연설의 기술로서 수사학에 대한 전형적인 지식을 선사하는 저작이다. 저자는 책의 1부를 통해 수사학의 본질과 정의를 시작으로 수사학의 주된 내용임과 동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논리적 추론으로서의 로고스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가 반박하고 비판하였던 소피스트에게 결여된 것이 바로 이러한 사실적 증명을 위한 논리적인 추론과 논의임을 강조하며 바른 수사학의 본질을 강조하는 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이어 2부에서는 청중과 연설가의 감정이 어떻게 연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 설명하는 파토스에 관한 내용과 청중과 연설가의 성격을 드러내는 에토스에 대한 내용을 말한다. 마지막 3부를 통해서는 전달의 실제적 기법들인 문체나 배열과 같은 이슈를 다룬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배우게 된 몇 가지 내용이 있다. 그 중 한가지는 변증학과 수사학의 정확한 차이점이다. 변증학은 귀납법과 연역법을 사용한 논증을 사용하여 절대적으로 참되거나 옳은 것에 대한 필연성을 특징으로 삼는다. 반면 수사학은 자신의 연설을 듣는 재판관이나 청중을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도록 설득할 것인가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대체적으로 참되거나 옳은 것에 대한 개연성을 특징으로 갖는다. 그렇기에 예를들어 종교적 연설의 일종인 개신교의 설교는 절대 진리에 대한 강조를 토대로 하기에 변증학적 요소가 강하며 선거 유세와 같은 정치적 연설은 자신의 정치 신념을 피력함으로서 유권자들의 표를 한표라도 더 얻기 위한 설득적 요소로서의 수사학적 요소가 더 많은 것이다.
또 한가지 연설가는 자신의 논제에 대해 관련사실을 전체 또는 일부라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연설과 설교 등을 듣다보면 연설가에게 있어서 한가지 답답한 점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연설가 본인이 이야기하는 내용의 사실 여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에 본인도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를 정도로 헤매는 경우이다. 이같은 일이 벌어지면 결론은 주장하는 논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서 이윽고 배가 산으로 가는 사태가 벌어진다.
마지막으로 3부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훌륭한 수사학적 연설의 조건이다. 이색적인 단어나 표현을 사용하되 청중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 그리고 문체의 간결성과 명료성에 대한 강조였다. 장황한 문장을 늘어놓거나 논지에서 벗어나 삼천포로 빠지는 연설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바로 간결성과 명료성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청중의 입장에서 나도 모르게 짜증이나고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마치 초등학생 시절 뙤양볕 아래 운동장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교장 선생님의 지루하고 지리멸렬한 훈화라는 이름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들어야만 했던 월요 애국조회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간결성과 명료성, 거기에 더해 이색적인 어휘나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여 연설의 진부함을 한방에 해소하고, 오히려 청중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하며 주의를 환기시키도록 돕는 전달의 장치들은 매우 훌륭한 연설이 갖추어야 하는 필수 조건이다.
수사학은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학문이다. 남 앞에서 대중 연설을 할 일은 별로 없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자신을 둘러 싼 삶의 정황 속에서 타인에게 나의 어떠함을 증명해내야 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만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주장을 타인에게 말하고 이해시키며 설득하게 되는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바로 일종의 증명 작업으로서 수사학의 범주에 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생략삼단논법이나 예증과 같은 방법을 동원하여 체계있고 논리적으로 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자신만의 레토릭 기술을 가졌느냐의 여부로서 드러난다. 이처럼 로고스와 파토스 그리고 에토스에 덧붙여 여러가지 문체, 은유와 같은 전달법의 핵심을 이해함으로서 다른이들에게 내가 가진 생각과 사상, 논지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우리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며 또한 필요하다. 그것은 광장에서 누군가를 찬양하거나 법정에서 변론을 하며 정책 입안을 위한 조언을 하는 등의 거창한 일만이 아니라 작게는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일에 있어서까지 우리의 실생활에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는 실제적인 삶의 기술이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부터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나의 의견과 생각을 개진하고 다른 이들의 호응을 얻어내기 위한 치열한 싸움은 인류 사회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책을 펼쳐드는 순간 독자는 본서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위대한 지성이 베푸는 주장과 설득이라는 미묘한 기술의 지적 통찰과 향연을 누림과 동시에 책을 통해 풍겨져오는 레토릭의 미학 속에 침잠할 수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