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사색노트 - 날마다 새로운 하루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최종옥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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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톨스토이 고백록>을 통해서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자전적 이야기를 접한 기억을 안고 집어든 책이 바로 오늘 리뷰를 남기는 <톨스토이 사색노트>이다. 일반적인 단행본과는 달리 본서가 가지는 두드러진 특징은 독자 참여형 도서라는 점이다. 책을 펼쳤을 때 한면은 톨스토이가 발췌한 세계 역사 속에서 크고 작은 발자취를 남긴 인류 지성들의 촌철살인과 같은 짧막한 경구와 금언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반대 페이지에는 독자가 이렇게 귀한 삶의 교훈과 지혜를 묵상하고 사색하면서 오늘 하루 발견한 자신의 모습과 내일을 위한 오늘의 키워드를 직접 손글씨로 적을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놓았다. 오늘 하루 톨스토이의 손을 빌려 재탄생된 지적 유산들이 내 삶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며 이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 나는 누구이고 매일의 삶의 각축장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내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와 같은 보편적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는 삶의 고뇌와 그에 대한 해답을 연필을 쥐고 써 내려갈 때 비로소 독자는 머릿속을 휘감았던 실타래와 같았던 삶의 난제가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희열을 맛볼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버리기 아까운 보석같은 삶의 지혜가 담긴 조언들을 전부 소개하고 싶지만 지면상 불가능하기에 리뷰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가장 깊은 인상으로 각인된 몇개의 경구를 나열해본다. "쓸데없이 잡다한 지식으로 머릿 속을 어지럽히지 말라"라는 테마 속 제시된 교훈은 로마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가 말한 것이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거나 쓸데없이 잡다한 지식으로 머릿속을 어지럽히지 말라. 진실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그 무엇을 얻고 싶다면 좋은 책을 가려 읽어야 한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마구잡이식 독서는 오히려 두뇌를 망가뜨릴 뿐이다." 세네카가 말한 조언을 통해 내 자신의 독서 습관을 돌아본다. 하루에도 수십수백권씩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 이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 모든 책들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지적 허영으로까지 여겨질 잡식 스타일의 독서 습관은 분명 욕심에 기인한 것임을 고대 로마 철학자의 입을 통해 발견한다.

또 한가지 마음을 울리는 격언은 이와 같다. "가장 중요한 때는 현재이다. 현재에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인간은 현재 그대가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이다. (중략)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사람들과 사랑하며 화합하는 일이다." 아마 많은 이들은 현재의 어려움보다는 내일의 소망을 바라며 살아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갈등과 아픔에 대해서 일부러라도 회피하고 싶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굳어진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는 한다. 책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현재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과거는 말할 것도 없고, 다가올 미래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현재이다. 현재의 내가 중요한 것이며 현재 내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내 주변의 이웃들이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점은 우리 영혼이 가진 현재성의 실체를 직면하도록 이끈다.

마지막으로 나의 머리를 때리고 지나가는 격언은 영국의 사상가 '러스킨'의 말이었다. "어리석고 무지한 인간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침묵이다. 그런 사람에게 말대답을 하면 그 말은 곧 그대에게 되돌아온다.비난을 비난으로 갚는 것은 타오르는 불 속에 장작을 넣는 것과 같다. 자기를 비난하는 자에게 온화한 미소를 보낼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상대방을 이긴 것이다." 정말 멋진 말임을 실감하며 나의 무릎을 친다! 세상을 살다보면 정말 어떤 사람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종류의 사람에게 러스킨은 침묵이 가장 효과적인 대처법임을 처방해준다. 그렇다. "침묵은 금이다!" 라는 너무나 많이 들어서 익숙한 다소 상투적인 격언이 결코 상투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침묵의 가치를 실현해야 할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기에 그렇다.

또한 자기를 비난하는 자에게 온화한 미소를 보냄으로서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은 놀랍기만 하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일견 유사한 의미를 가지는 격언이 아닐 수 없다. 나를 비난하는 자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 줄 수 있을까? 그러한 행동을 하려면 그만큼 한 인격의 깊은 성숙함이 전제된다. 즉 자신의 원수에게 온화한 미소를 던져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그의 인격 속에 참된 인간으로서의 숙성된 인격과 고결한 인품의 씨앗이 싹트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소를 보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것으로 벌써 그 사람은 순수한 인성의 승리자이다.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9년의 마지막 달, 한해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나는 본서에서 톨스토이의 손을 빌어 설파된 인류 지성들의 위대한 격언들에 걸맞는 삶을 살았는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본서를 통해서 여전히 미운 사람은 밉고, 보기 싫은 사람은 피하고만 싶은 나약한 정신의 소유자인 나의 연약한 내면의 속살을 마주하게 된다. 그까짓 것 한번 웃어줄 수도 있었을텐데, 먼저 따뜻한 눈빛 한번 건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본서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먼저 낮아짐을 선택하지 못하고, 나 자신의 의로움과 잘났음을 자랑하는 말라비틀어진 자존심을 2019년에 남겨둔 채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책의 끝장에 남겨진 미국 유니테리언파 목사인 '채닝'의 경구를 남겨본다.

"행복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겸허이다. 교만, 권력, 허영이 가득하다면 그 자리를 친절과 겸허로 대신해야 한다. 교만한 인간은 아무런 유익도 취하지 못한다. 그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함으로써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자기 자신이 쓸모없게 여겨진다. 여기에 현명한 사람이 되는 첫 번째 과정이 있다. 현명해지려면 겸손하라. 그것은 사람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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