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입문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사이구사 미쓰요시 지음, 이동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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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과 2018년에 걸쳐 한국영화로서 전국 관객수 각각 1400만과 1200만을 찍은 최고의 흥행작이 있는데 다름아닌 <신과 함께 1, 2>이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망자들 가운데 덕이 있는 삶을 살다가 죽은 이른바 귀인 49명을 지옥 7개의 심판으로부터 무사히 통과할 수도 있도록 도와 환생시키면 본인들도 환생할 수 있는 상급을 받기 위해 저승 삼차사가 벌이는 이야기를 탄탄한 스토리 라인과 더불어 화려한 볼거리의 CG기법을 동원하여 제작한 토종 환타지 블록버스터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의 내용을 알기에 자세한 스토리를 차치하고, 이 영화의 1편과 2편 모두를 흥미롭게 관람한 후 내가 느낀 단상은 영화의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깊은 불교적 색채를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영화의 주된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스토리를 끌고 가는 영화의 사상적 배경이 다름아닌 불교에 기인한 것임을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 49재와 환생, 10대 지옥과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소재 모든 것이 불교적 세계관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을 발견하면서 불교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함을 느끼며 집어든 책이 바로 오늘 서평으로 소개하는 책 <불교 입문>이다.

본서는 불교의 시작인 인도, 중국, 한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탄생과 시조, 불교의 사상과 분화, 역사적 변천과정과 각 나라에 끼친 문화적 영향력에 대해 일본의 저명한 불교학자 '사이구사 미쓰요시' 교수가 집필한 저작이다. 불교의 성립은 인도가 아닌 엄밀히 말해 지금의 히말라야 기슭의 네팔 지역에서 시작된다. 작은 왕국의 왕자였던 '고타마 싯다르타'가 29세에 출가하여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과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붓다'가 됨으로서 불교는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책은 넓게보아서 당시 불교의 시발점이 인도 문화권 안에 있었던 점을 생각할 때 불교의 시작을 인도로 말하며 인도의 불교를 초, 중, 후기불교로 구분한다. 본서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먼저는 인도 불교의 역사를 언급하고, 이어서 인도 불교의 사상사를 말하며 마지막에는 각지로 전파된 불교의 분화와 다양한 변천과정을 다룬다.

1부의 인도 불교사 속에서 초기불교는 석존이라 칭하는 붓다(고타마 싯다르타)가 그를 추종하는 제자들과 함께 재가신자들에게 시주를 받는 검소하고 검약한 생활을 통해 깨달은 바를 발전시키고 계율을 확인하며 가르치는 일련의 일들을 행하는 모습속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속에서 아직 좀 더 체계적인 종교로서의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했음을 보게된다. 그러나 이후 석존이 입멸하고 다수의 불제자들이 모여 석존의 생전 가르침과 계율을 확인하는 모임을 이룸으로서 중기불교의 시대를 열게 되는데 이를 부파불교의 시작이라 본다. 중기불교의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는 그동안 '아가마' 즉 구전으로 전래된 석존의 가르침들을 비형식적 형태에서 벗어나 초기 경전의 형태로 집대성하게 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초기 경전은 바로 팔리5부, 한역4아함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때 대승불교 또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석존의 가르침은 깨달은 바를 통해 수행자 본인의 인격 도양과 수행 완수에 초점을 맞추었던 지극히 편협한 개념의 불교였다면 대승불교는 석존의 가르침을 통해 수행자 본인을 둘러싼 중생에 대한 구제와 긍휼을 우선시하는 불교의 또다른 사상적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즉 수행자 본인만이 성불하여 부처가 되기를 추구했던 이전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보살로서 무지한 중생을 위해 석존의 가르침을 일상의 삶 속에 적용하기를 독려했고, 이러한 선행을 행하는 모든 중생의 보살들 또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이전 전통적 부파불교와는 다른 사상적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러한 대승불교는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에까지 전파되고 이렇게 동북아시아에 전래된 불교는 중생 구제라는 사회적 운동의 이미지를 적지 않게 갖게 된다. 반면 대승불교와는 달리 전통적이고 개인적인 성향 속에서 석존의 가르침을 고수하며 개인의 해탈과 성불을 목표로 삼는 소승불교는 스리랑카와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의 동남아시아로 전파되며 남방불교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책의 중반부에서는 인도 불교의 사상사가 기술된다. 사실 불교를 심도 있게 공부한 사람이나 독실한 불자가 아닌 이상 불교의 사상적 가르침들을 전부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을 듯 하다. 많은 한문과 생소한 산스크리트어로 이루어진 어휘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기에 그렇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집중하게 된 인도 불교 사상사에 관한 내용 중 한가지는 '십이인연' 즉 '연기설'에 관한 내용이다. 현재의 삶 속에서 인간이 만나게 되는 고난과 고통, 선악의 일들은 원인과 여러 조건을 포함하는 많은 연(인연)에 근거한 생기, 즉 관계를 통해 성립된다는 것이다. 일련의 결과는 그 결과를 만드는 필연적 원인과 관계된다는 의미로서 그렇기에 인간사 모든 일들은 독립적이고 독단적으로 형성되고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 모든 것이 인과 연으로서 얽히고 설켜 서로에게 인과관계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인과응보라는 사자성어도 이러한 불교적 맥락에서 이해할 때 더 쉽사리 받아들여질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서평의 서두에서 언급한 영화 <신과 함께> 2편의 부제가 바로 '인과 연'이다. 영화를 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2편은 바로 이 원인과 결과로서 얽히고 설킨 인물들의 과거가 공개되며 스토리는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또한 카르마로 불리는 '업' 에 관한 내용은 흔히들 어떠한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에게 닥친 어려움을 빗대어서 "그것이 바로 당신의 업보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기하게 만든다. 즉 업이란 행동, 행위로서 표현되어지며 이것은 불교의 윤회사상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업은 원인에서 행위로 행위에서 결과로 그리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어 또 다시 행위를 이끄는 윤회적 양상을 보인다. 본서에서 저자는 이러한 업을 행위의 연속선상에 있으며 그것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며 그것은 죽더라도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불어 사람의 업은 행위에 수반하는 책임이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렇기에 현생에서의 행위는 사후에 본인이 어떠한 존재로 재생될 것인가에 대한 윤회적 결과를 결정짓는 요소이다. 즉 전생의 행위는 사람이 사후 다시 태어날 때 고귀한 계급의 귀인으로 태어날 것인지 아니면 개, 돼지와 같은 축생, 그것도 아니면 아귀와 같은 악마적 존재로 환생할 것인지를 가르는 중요한 준거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업의 사상은 동남아시아로 퍼져나간 남전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 또한 <신과 함께> 1편의 부제가 바로 '죄와 벌' 이라는 것을 통해서 영화의 전면에 흐르는 주된 메시지의 모티브가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차태현이 열연한 극중 소방관 자홍을 귀인으로서 환생시키기 위해 저승 삼차사는 지옥의 7가지 심판을 통과한다. 그런데 이때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지옥 심연의 형벌을 받고 있는 수 많은 망자들의 모습을 리얼한 CG로 재생시킨 장면들은 바로 이 업 사상과 관련된 업보, 즉 자신의 죄된 행위의 결과로서 벌을 받는 인간들의 당연한 귀결 속에 흐르는 불교적 세계관 그 자체이다.

이후 책은 3부를 통해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의 남전불교와 중국, 한국, 일본, 티베트의 북전불교를 구분하고 비교하며 특색있게 토착화 된 각지의 다양한 불교적 가르침과 사상의 한단면을 간략하게 기술한다. 어려운 용어들이 수 없이 등장해서 사실 일독을 통해서는 저자가 말하는 내용을 온전히 섭렵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그러나 불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읽었을 때 대략 지식의 기본적 골격을 세울 수 있기에는 적당한 저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더 깊이 들어가려면 불교학을 전공해야하겠지만 독자들 대다수가 그렇게까지 할 만한 사람은 없으리라 보기에 본서 한권으로도 불교에 관한 보편적 지식을 얻기에는 무리가 없다. 지난 2주간 본서를 읽으며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개신교 신자인 나의 책상에 <불교 입문>이라는 책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지인들이 "불교로 개종하게?" 라고 웃음끼 섞인 농을 던진다. 내가 믿고 신뢰하는 개신교 신앙에 내 삶을 맡겼는데 무슨 개종을 하겠는가! 단지 타종교를 이해하고 그들이 추구하고 주장하는 그들 입장에서의 진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지적 호기심이 본서를 집어들도록 이끌었을 뿐이다.

불교의 형성과 발전, 불교 사상이 가진 깊은 의미를 그들이 볼 때 타종교인이며 이방인인 나의 관점으로 얼마나 더 이해할 수 있겠느냐만서도 한가지 확실히 깨닫는 바는 모든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초월적 존재를 향한 그 끊임없는 갈망과 타는듯한 종교적 목마름이 있다는 사실이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7장에서 사도 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너희가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라고 말했다. 오직 초월적 존재만이 채울 수 있는 인간의 텅빈 마음은 갈급한 영혼들에게 무엇인가 궁극적 채움을 요구한다. 그것은 인간의 학문과 철학, 사상이 될 수도 있고 돈과 명예와 권력, 쾌락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불교의 시작을 알린 석존은 고뇌와 고통으로 가득한 인간사 모든 영욕의 시간을 내려놓고 보리수 아래에서 고행을 수반한 명상과 깨달음을 통해 해탈과 열반을 추구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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