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교회사다 : 진리의 보고 - 초대교회사 편 이것이 교회사다 시리즈
라은성 지음 / 페텔(PTL)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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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가장 좋아했던 과목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함 없이 역사 과목인 국사와 세계사를 꼽는다. 역사 과목을 너무나 좋아해서 어린시절 한때 장래희망이 대학의 사학과에 들어가서 역사학자가 되는 야무진 꿈도 꾸었다. 또한 중학교 때는 방학 과제물로 고조선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주요한 역사적 사료들을 잡지와 신문 등에서 찾아내어 스프링노트 한권에 스크랩하고 빈칸에 그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을 코멘트로 기술하여 과제로 제출하는 등의 역사 과목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보면 기겁할만한 그런 일들을 즐겨 시전하곤 했다. 왜냐하면 역사를 공부하고 만날때마다 그 안에서 우리보다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고, 그들의 생각과 삶의 모습 속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 이후 살다갈 후손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기에 역사는 내게 항상 설레임과 떨림의 대상이었다. 역사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길을 찾는다. 지금도 유적지등을 방문하면 남들은 무심히 지나치는 사적지 안내판의 깨알같은 글씨를 눈이 빠져라 정독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함께 간 일행은 멈춰 선 나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러한 역사 마니아 요즘 아이들의 시쳇말로 역사충이라 불릴법한 나의 이러한 모습은 자연스럽게 개신교 신자로서 만나게 되는 교회사에 대한 관심으로 고스란히 옮겨간다. 오랜시간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아마 한국 교회 대다수의 신자들은 교회사에 대한 관심이 전무할 것이다. 역사라는 학문 자체가 가져다주는 그 주제의 건조함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대다수의 교회는 교회사와 뗄 수 없는 관계인 교리 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일절 성도들에게 교회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교회사와 교리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바른 경건생활과 신앙교육이 요원하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교회들은 성도들의 입맛에 맞춰 갖가지 흥미로운 프로그램과 세미나 등에만 집중한다.

언급했듯이 교회사라고 하면 무엇인가 고리타분한 느낌이 들고, 신학 공부를 하는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서는 목회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교회 역사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려주기에 충분한 힘을 지녔다. 특별히 이 책은 총신대에서 역사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라은성 교수의 '이것이 교회사다' 시리즈 중 AD 1~5C까지 초대교회의 역사 가운데서 중요한 사건과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파헤친 내용으로 가득한데 '진리의 보고' 라는 책의 부제와 같이 그야말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귀중한 역사적 사실과 진리가 가득 담긴 보물상자와 같다.

저자는 초대교회의 역사는 4가지의 큰 기둥으로 이루어져있고, 이 큰 틀을 살펴보는 것이 예수님 이후 초대교회의 역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길임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로마제국, 핍박, 교부들, 이단에 관한 것이다. 초대교회의 역사는 로마제국이라는 당대 최강의 강대국과 얽혀 있으며 그 안에서 수 많은 순교자들이 온 몸으로 받아낸 핍박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이러한 핍박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지켜내며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훼손시키는 각종 이단들에 대해서 변증하고 싸워갔던 믿음의 선배들 즉 교부들의 삶과 신앙, 그들의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를 포함한다. 또한 영지주의를 비롯한 각종 이단들의 발생, 그들의 주장과 정통신앙과의 차이와 바른 진리에 대한 견해는 초대교회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잡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너무나 귀한 보석같은 진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빼곡한 본서를 펼쳐들고 가슴떨리는 행복감을 느꼈다. 본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 복음전파를 위해 남겨진 12명의 사도들이 하나 둘씩 순교한 직후인 1세기어간 이제 막 초대교회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출발한다. 예수님의 직속(?)가르침을 받았던 12사도의 제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 속사도(사도적 교부)들의 시대는 로마시대와 맞물린다. 로마제국 다수의 미치광이 황제들의 잔인하고 잔혹한 기독교 박해를 통해 초대교회는 끔찍한 핍박을 온몸으로 받아내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와 기독교 진리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한 교부들인 변증가들이 등장한다.

이후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밀라노 칙령이 공포됨으로서 기독교에 대한 길고 지난한 박해가 종식되어지고, 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지만 고난이 사라진 교회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방향성을 잃게 된다. 이러한 와중에 기독교에 대한 여러 이단들이 등장하면서 교회의 진리와 순수성을 오염시키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는 영지주의 이단이 있다. 이러한 이단에 맞서 정통신앙을 고수하는 아타나시오스같은 교부들은 자신의 전 삶을 다해 싸워 마침내 초대교회 이단으로부터 교회의 정통신앙을 지켜낸다. 이후 핍박이 사라진 교회는 정교유착과 세속화로 말미암아 빠르게 타락해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피해 개인의 신앙과 경건을 지켜내기 위해 발생한 것이 바로 본서의 마지막 주제이며 중세교회사의 다리가 되어지는 수도원운동이다.

저자는 성도들이 교회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남 앞에서 자신의 지식을 뽑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사를 통해 바른 기독교적 역사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랜 세월 흘러온 교회의 역사와 그 안에서 정립되어져 갔던 성경에 기반한 바른 교리적 지식을 올바른 시각으로 접하고 배우게 될 때에만이 신자의 신앙과 삶은 어떠한 주변의 상황과 고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흔들림없이 믿음을 굳건히 지키고 서 있을 수 있으며 더불어 지금의 한국 교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수 많은 난제들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 또한 성경과 함께 교회 역사 속에서 찾아갈 수 있다.

로마황제들에 의해 아무 죄도 없이 단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표현하기 힘든 고문과 끔찍한 방법을 통해 죽임을 당하면서도 신앙과 믿음을 고백했던 수 많은 신자들의 삶과 각종 이단들로부터 기독교 진리의 체계를 세우고 파수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초개와 같이 던졌던 많은 교부들의 신앙과 삶을 보면서 마음 속 깊은 감동과 함께 숙연해진다. 더불어 믿음의 선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 가운데서 그들이 목숨 걸고 지켜냈던 기독교 진리와 신앙을 누리고 있는 나의 안일한 태도를 점검하고 반성하게 만든다.

기껏해야 고민하는 문제라는 것이 고작 부동산 시세 폭락, 주식이 곤두박질쳐서 반토막 난 것, 자녀가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지원할 수능점수가 나오지 않은 것과 같은 싸구려 고민들은 말할 것도 없다. 가정, 교회, 직장,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서 만나게 되는 얽히고 설킨 수 많은 인간관계와 재정의 문제들과 같은 시련의 바람이 한번 몰아닥치면 대부분의 신자들이 추풍낙엽과 같이 믿음 안에서 떨어져나가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하게 된다. 평안했을 때는 그토록 열심히 주님을 사랑한다 외쳤던 그 신앙의 고백과 믿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채 말이다. 고난과 고통에 대해서 아파하지 말고 무관심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고난과 고통에 대해서 낙심하지 말라는 이야기 또한 아니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고통과 고난 앞에서 아파하고 낙심할 수 있다. 십수년간 신앙생활했지만 여전히 작은 관계의 갈등 속에서 재정의 문제 속에서 자녀의 문제 속에서 배우자와의 문제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어 허우적 대는 신자들의 그 기반 없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의미이다.

로마제국의 박해 가운데 초대교회 신자들은 자신의 눈 앞에서 한껏 굶주린 맹견들에게 갈가리 찢겨 죽는 어린 자녀들의 처참한 광경을 목도해야만 했다. 또한 원형경기장에서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당한 후 맹수들에게 뼈마디까지 씹혀 먹히는 극렬한 고통의 순간을 담담히 받아냈다. 이처럼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고수했던 초대교회 신앙 선배들의 그 결연한 모습 앞에 위에 언급한 우리의 죽을 것만 같은 고민들이 얼마나 하찮게 여겨지고 초라하기만 한지...

믿음의 시련 앞에서 결코 물러섬이나 후패함이 없는 굳건하고 견고하여 안정감있는 신자의 삶은 우리의 귀에 달콤하고 위로가 되는 부드러운 말씀이나 흥미를 유발하는 프로그램 위주의 훈련이나 세미나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성경에 기초한 올바른 교리적 가르침과 성령님의 은혜, 무엇보다 신자가 바른 기독교 역사관을 견지할 때 신자는 정통신앙 안에서 건강하고 강인한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교회사는 우리의 신앙과 삶을 반추하고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기능과 함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훌륭한 이정표의 역할까지 톡톡히 감당한다.

숨을 고르고 이제 그 진리의 보고들이 어떻게 묻어둔 진리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본서의 후속편인 중세교회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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