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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나이트 - 천일야화 ㅣ 현대지성 클래식 8
작자 미상 지음, 르네 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7월
평점 :

세계 각국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 정서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비롯해서 북유럽 신화, 이솝우화, 안데르센 동화, 탈무드, 우리나라의 흥부와놀부전 그리고 오늘 서평으로 소개하는 <아라비안 나이트>까지 문화와 관습, 사람들의 삶의 모양은 다르지만 그 안에 인간 사회의 희노애락과 권선징악과 같은 교훈과 가르침을 담은 고전의 인문학적 가치는 이루말할 수 없이 크다.
아라비안 나이트하면 알라딘과 요술램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신밧드의 모험 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린시절 아라비안 나이트는 이렇게 가장 대표적이고 흥미로운 주제의 이야기들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TV에서 방영되었던 것을 본 경험이 전부였던 내게 이번에 만나게 된 현대지성의 <아라비안 나이트>는 대표적이고 유명한 이야기들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에게는 좀 덜 알려진 아라비안 나이트 원작의 다른 이야기들이 다수 수록되어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책은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에서도 잠간 언급한 것과 같이 유명한 이야기들을 제외한 나머지의 이야기들은 모두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스토리들로서 읽는 내내 재미와 교훈을 선사하는데 있어서 결코 어느 책에도 뒤지지 않는 탁월함이 엿보이는 이야기책이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흔히 '천일야화'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1001일 밤에 들려진 이야기' 라는 의미로서 아리비안 나이트의 서막이 어떻게 열리게 되었는지를 파악하게끔 하는데에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는 키워드이다.
고대 페르시아 사산왕조의 황제인 샤리야르는 자신의 아내에게 배신을 당하고 난 이후 아내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자기만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새롭게 아내를 맞이하면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죽여버리는 악행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왕국의 수 많은 처녀들이 그렇게 하룻밤 왕비가 된 후 이튿날 아침에는 싸늘한 주검으로 궁전에서 나오게 되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그 나라 재상의 딸 셰에라자드는 아버지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자청하여 황제의 아내가 되기로 결정한다. 황제의 아내가 된 첫날 밤 셰에라자드는 황제에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황제는 아내가 들려주는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듣다가 가장 궁금해 할 대목에서 이야기가 다음날로 이어지게 되는 마치 주말연속극 클라이막스에서 "다음 이야기는 다음 주 이 시간에..."와 같은 감칠맛을 곁들인 아쉬움 한 스푼을 시전받게 된다. 이러니 황제가 어떻게 자신의 아내를 다음날 아침에 죽여버릴 수 있겠는가? 다음 이야기의 내용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인 왕은 계속적으로 아내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아내를 살려주게 되고, 그 이야기가 1001일밤 동안 계속되었다고 해서 본서는 <천일야화>라고 불린다.
그 천일야화 속 다양한 이야기들 중 몇가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신밧드의 모험, 알라딘과 요술램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들과 같은 이야기들로서 이들이 마치 옴니버스식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구성적으로 보아도 매우 흥미롭다. 마치 한편의 액자소설을 보는 것과 같다. 본서의 서문격인 셰에라자드 왕비의 이야기를 큰 틀로 그 안에 11개의 독립된 이야기들이 들어간다. 그러나 3장과 6장, 7장, 8장, 10장의 이야기들은 그 안에 또 세부적인 이야기들로 나눠진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존재하듯이 본서는 그 구성에 있어서도 남다르다.
어린 시절 TV앞에서 알라딘이 램프를 문질러서 램프의 요정 지니를 불러내어 소원을 말하는 장면이나 열려라! 참깨! 를 외치는 알리바바의 모습 속에서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동심의 시절 느끼지 못했던 원작을 통한 새로운 사실들과 교훈들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만큼 이제 내가 사리를 분별하고, 세상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동심의 상상력을 세상의 사리판단과 맞바꿀 정도로 이미 세상의 온갖 때가 많이 묻었다는 반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본서를 읽는 독자가 만일 어린 시절 TV속으로 빠져들어갈 정도로 몰입하며 보았던 그 재미와 흥미로움 속에만 머물기를 원한다면 어쩌겠는가? 독자의 선택이니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본서를 통해 인간사의 숨겨진 의미와 교훈을 발견하는 것에 어느 정도의 관심을 기울이기로 결정한다면 독자는 우리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아라비안 나이트가 독자들에게 주는 새로운 가르침의 향연을 누리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이 책이 인간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 한권의 책에는 인간의 희노애락과 권선징악, 흥망성쇠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인간의 선함과 악함, 착한 행실과 깨끗한 마음, 끝없는 욕심과 탐욕이 공존하며 은혜와 배신이 대립각을 이룬다.
특별히 9장 아메드 왕자와 페리 바누 요정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의 욕심과 의심의 추잡한 마음에 대한 교훈을 발견한다. 자신의 착한 아들마저 자신의 왕권을 찬탈할 수 있는 잠재적 원수로 여기며 의심하는 아버지 왕의 그 타락되어져 가는 내면의 모습 속에서 인간 영혼의 그늘을 보게된다. 또한 10장 하룬 알 라시드 왕의 모험 이야기 속 이야기로 등장하는 바바 압달라는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 준 은인에게 사례를 한 재물마저도 아까워서 탐욕을 부리며 급기야는 그 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 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맹인이 되는 길을 선택함으로서 시력과 수 많은 부를 한꺼번에 잃고 맹인 거지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이 바바 압달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바 압달라는 아라비안 나이트에 등장하는 수 많은 탐욕스런 인간들 중에서 자신의 삶을 파멸에 이르도록 만드는 그 바닥이 보이지 않는 탐욕과 욕심의 끝판왕이라 칭할 만하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책의 전면에는 재물에 대한 끊을 수 없는 유혹과 탐심을 지닌 인간들이 수 없이 등장한다. 자족할 줄 모르는 인간들의 탐욕은 징그럽기만하다. 남을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신의 눈초리를 쏘아 보내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의 인간들이 넘쳐난다.
책을 읽으며 어느 하나의 책이 가진 향기가 전해져 온다. 몇해전 읽은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가 그것이다. 캔터베리 대성당의 참배를 위한 일단의 참배객들이 노상에서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각자 흥미로운 짧막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는 것이 책의 주요 줄거리이다. 본서와의 동일한 느낌은 바로 여과없는 인간군상의 민낯을 목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랑과 배신, 유혹과 탐욕, 믿음과 의심이라는 인간사에 있어 세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흐르는 주요 화두들은 두 책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주제이다.
책을 덮으며 선행과 믿음, 신뢰, 자족할 줄 아는 마음과 같은 제대로 된 정상적인 인간들이 탑재하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인간성의 본질을 다시금 돌아본다. 어린 시절 시간만 되면 우리를 TV 앞으로 이끌었던 아라비안 나이트의 대표적인 스토리 '알라딘과 요술램프' 가 영화로 제작되어 요즘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 벌서 1000만 관객을 넘었을 정도로 평이 좋은가보다. 물론 나는 아직 못보았다.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원작의 인기 또한 상승해보길 기대한다. 원작 속 26편의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재미와 교훈이라는 두 가지 물고기를 함께 잡아볼 수 있는 여유있는 여름 휴가 시즌을 보내는 것도 분명 매력적인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