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내는 믿음의 글들 세계기독교고전 43
새뮤얼 러더퍼드 지음, 이강호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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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까지만 해도 인터넷과 휴대폰이 상용화 되기 전 누군가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유선전화기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직접 편지나 엽서를 써서 우표를 붙여 동네마다 거리마다 흔히 발견할 수 있었던 빨간 우체통에 집어넣는 일이 흔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어느 순간 인터넷이 개발되고 휴대폰이 상용화되면서 우리네 일상 또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니 편지를 대신해서는 인터넷 이메일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고, 유선전화, 공중전화 등을 대신해서는 이제 손안에 들어오는 휴대폰, 그것도 스마트폰이 그 일을 대신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아니 요즘은 이메일도 잘 안쓴다. 그냥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메신저앱을 이용해 문자로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기에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 로그인하고 글을 써서 보내는 이메일도 어느 순간 우리네 삶 속에서는 벌써 한세대 전의 유물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이렇듯 과학기술과 현대문명의 총아로서 이메일과 휴대폰등이 우리의 삶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하게 만들어주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모를 허전함이 있다. 전자기계와 소프트웨어들은 결코 가져다 줄 수 없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아날로그적 감성은 뭐니해도 역시 사람이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따라올 수 없다. 편지만이 가지는 그 고유한 날 것 그대로의 감성은 이메일이나 휴대폰의 한번 열어보면 날아가버리는 것 같은 휘발성과 일시적인 느낌들에서는 결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편지에 대한 단상을 가지고 기독교 고전 한권을 만나니 책의 제목은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이다. 17세기 스코틀랜드의 목회자이자 신학자였던 새뮤얼 러더퍼드가 유배지에서 자신이 담임했던 앤워스 교구의 성도들과 친구들에게 보낸 200여편의 편지를 책으로 엮은 본서는 그야말로 기독교 서신 문학에 있어서 고전으로 불리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탁월한 저작이다. 러더퍼드 목사는 앤워스 교회에서 목회하던 시절 주교정치와 알미니안주의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목회지를 박탈당하고, 에버딘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러더퍼드 목사는 자신의 교구 앤워스의 성도들에게 목회자로서 한편 한편 목양의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교회의 부패와 퇴조를 느끼고 염려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는 사람들, 영적성숙을 추구하는 사람들, 각종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 , 그리스도의 성품을 사랑하고 닮기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축복과 소망 가운데 주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목자의 마음을 담아 애절한 목회서신을 보내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 동역자들과 초대교회들에게 보낸 신약성경 중 13편의 서신들 가운데 특별히 감옥에서 써 보낸 4편의 옥중서신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같이 본서는 목자가 자신의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목양의 그 뜨거운 마음이 깊이 아로새겨져 있기에 본서를 읽는 현대의 독자들 또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혹 그냥 본서를 무덤덤하게 일반적인 편지로서 지나치듯 읽음으로서 그 깊은 감동을 놓칠 수도 있는 독자들은 새뮤얼 러더퍼드가 살면서 사역했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조금 이해하게 될 때 이 경건한 편지들이 가지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면서 본서의 숨은 감동을 맛볼 수 있으리라 본다. 러더퍼드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칼빈을 중심으로 한 칼빈주의와 칼빈의 5대교리에 반대하여 생성된 알미니안주의의 신학적 충돌이 항존했던 시절이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회자였던 러더퍼드는 당연히 알미니안주의를 반대했을 것이고, 더불어 주교정치를 반대함으로서 미움을 받아 유배를 떠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자신들과 신학적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는 목회지 박탈과 유배라는 아픔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 속에서 탄생한 저작이 바로 본서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본서를 그냥 단순히 한 목회자가 자신의 성도들에게 보낸 다양한 편지를 엮은 책 정도로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편지 한편마다 실려있는 러더퍼드 목사의 성도들을 향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 때로는 깊은 위로와 격려, 함께 아파하는 그 목자의 애타는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기에 읽는내내 깊은 감동을 떨칠 수 없다. 자신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환경인 유배지 가운데 있는 사람이기에 가장 불쌍한 사람일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러더퍼드의 온 관심은 자신의 한탄스러운 처지가 아닌 오직 앤워스에 두고 온 자신의 옛 교구 성도들과 그들의 삶에 관한 것이었다.

책을 읽으며 가만히 생각해본다. 유배지로 떠난 자신의 옛 목회자에게 받는 한통의 편지는 그 편지를 받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그러한 편지를 받고 경박스럽고 가벼운 마음으로 편지의 겉봉을 뜯어보았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러더퍼드 목사의 편지를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편지를 가슴에 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수도 있을 것이고,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을 만끽했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하여 어쩌면 편지지가 손떼묻어 해질 정도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행여 러더퍼드의 대적자들에게 발각될까 염려하여 편지를 아무도 모르는 깊은 곳에 숨겨놓고 조심스럽게 꺼내보며 남몰래 깊은 한숨과 함께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후 유배지에서의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풀려난 러더퍼드는 1643년 그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서를 만드는 영광스러운 작업에 참여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알미니안주의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유배를 떠났지만 결국 그는 웨민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서라는 역사적인 개신교 개혁주의의 신조를 탄생시키는 위대한 과업에 동참하는 소위 인생 역전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진리 안에서 진리를 사랑하고 그 진리를 위해 결코 시류에 영합하지 않았던 한 목회자의 삶을 들어서 결국에는 그들의 대적자들을 향해 그의 탁월함과 의로움을 드러내신다. 책을 덮으며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간다. 어려운 상황 속에 러더퍼드는 자신의 옛 교구 성도들의 삶을 끝까지 돌보며 격려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영혼을 돌보라고 위탁받은 목회자들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유배라는 기약없는 형벌 속에서 세상에서 제일 가련할 것 같은 자신의 처지는 아랑곳 않고, 오직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앞뒤를 분별하지 못하는 가엾은 양들에 대한 그 한없는 목양의 마음은 지금 우리 시대의 모든 목회자들에게 요구되어지는 동일한 마음이다.

어느 순간 자신이 목회하는 목회지가 밥벌어 먹고 살기 위한 직장으로 여겨지고, 자신이 목양하는 영혼들이 자신을 먹여 살리는 ATM 기계처럼 보이는 목회자가 있다면 당장 이 책을 집어읽으라고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긴급동의에 귀를 기울여보길 바란다. 소명을 회복하라! 식어져 버린 영혼에 대한 구령의 열정을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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