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자치통감
사마광 지음, 푸챵 엮음, 나진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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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권이 떠들썩하다. 패스트트랙이니 공수처니 하면서 여야간의 당쟁이 정말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추잡스러운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기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정치권의 당쟁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 정치체제가 발현된 이후 어느 한 시대, 한 나라도 예외 없이 항상 있어왔던 필요악이었기에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지만 지금처럼 자신들의 당리당략에 목을 메고 아귀다툼 하듯 달려드는 모습은 모양새가 영 보기 좋지 않을 뿐더러 탐욕스럽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결국 정당 정치라는 것이 내면 깊이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보면 전부 자신들의 권력욕과 명예욕, 물욕을 채우기 위한 목적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다고 그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그런 유치원생도 비웃을만한 거짓말은 입밖에도 꺼내지 말자! 그냥 솔직히 남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내 말 한마디에 만인이 두려워 떨며 고개를 조아리게 만들고 싶고, 나의 이름 석자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역사에 길이 남으며 자자손손 놀고 먹어도 될 만한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것, 오직 이것만이 이 나라 정치인들의 가장 큰 목적 아닌가?

이 나라를 떠나 국적을 파버리고 싶다는 미친듯한 갈망이 샘솟는 요즘 한권의 책을 만난다. 역대 제왕들의 교과서, 세종대왕이 곁에두고 탐독하였고, 모택동과 시진핑이 사랑한 바로 그 책, <자치통감>이다. 북송 시대를 살다 간 위대한 역사가 사마광이 지은 본서는 1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국시대부터 송나라 건국 직전까지 1362년에 걸친 중국 역사의 중심 축을 이루는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집대성한 대작이다. 본래 294권이라는 어마무시한 분량으로 집필되었지만 내가 만나게 된 본서는 '푸챵'이라는 유능한 중국인 편집자가 후대에 전해줄 만한 가치가 있는 자치통감의 정수 58편을 엄선하여 편집 한 것을 이번에 현대지성 출판사를 통해 <한 권으로 읽는 자치통감>이라는 제목 하에 출간한 저작이다.

책의 제목에서 풍겨져 나오듯이 고대 중국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를 통한 역사 속에서 정치, 경제, 민족, 병법, 인간관계 등의 다양한 이슈들을 통해 그 안에서 정치의 바른 원리를 발견하고, 인간 세상사의 다채로운 문제들의 해법을 찾아가도록 돕는 이른바 정치와 행정의 가이드북과 같은 역할로서의 쓰임새는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크나큰 도움으로 다가온다. 선조들의 성공과 실패를 거울 삼고 그 안에서 탁월한 삶의 지혜를 배워 이 시대가 맞닥뜨린 각종 난제들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본서는 매우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는 위대한 저작 중 한권이다.

역사서 장르가 다소 부담스러운 독자들도 한번 펼친 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를 통해 독자를 중국의 역사 속 한가운데로 빨아들이는 책이 가지는 큰 원초적 흡입력은 대단하다. 나 또한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상당 분량을 마시듯이 읽어 내려갔는데 58편의 이야기들이 대부분 이어지지 않고 단편적인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기에 어려운 역사 속 인명과 지명, 고대 중국 특유의 그 수 많은 나라 이름들과 같은 복잡성에 읽기 전 기부터 질리는 독자들에게 오히려 이 단편적 구성은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내용의 요지는 권력암투, 당리당략을 위한 끊임없는 당쟁, 권모술수와 이전투구, 시기와 질투, 모략과 배반, 음해와 이간질을 통한 암살, 군주의 주색잡기와 기행, 파행적 정치 행보, 끊이지 않는 주변국과의 전쟁과 도탄에 빠진 민생에 관한 이야기 등이 책 전면에 편만히 기록되어 있다. 읽다보면 무척 흥미롭지만 또 한편으로는 권력의 허무함과 그 허망한 권력을 좇기 위해 죽고 죽이는 암투를 통해 서로 물고 물리는 지독한 아수라장의 한장면을 보는 것 같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역함을 느낀다. 더군다나 이것이 모두 지어낸 픽션이 아니라 실제 역사의 무대 가운데서 벌어졌던 역사적 사실들의 한장면임을 기억하면 더 진저리쳐진다. 그러나 이렇게 혼탁한 이야기들 속에 몇편의 미담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후한의 한장제 시절 중앙 정치 무대를 혼란스럽게 할 우려가 있는 자신의 패밀리인 외척에 대해 어떠한 상과 벼슬도 내리지 못하게 했던 마태후의 그 강직함과 깨끗한 심성은 후대에 청렴함과 깨끗함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이야기이다. 또한 당나라 태종의 아내였던 장손황후는 아녀자로서 결코 정사에 관여하지 않으며 검소하고 검약한 모습으로 아랫사람들과 자녀들을 돌보고, 남편인 태종을 보필하여 군주의 부인으로서 후세에 길이 남는 모범을 보인 여인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권력 한번 손에 넣고, 어떻게든 한자리 해 먹으려고 아귀다툼하는 소인배들이 들끓는 현대 정치판의 탐욕스러운 모습과 너무나 대조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읽으며 항상 견지해야할 중요한 사실 한가지는 그럼 이 책이 다른 사람이나 세상이 아닌 나의 삶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고 나에게는 어떠한 가르침을 베푸는가에 관한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필요한 교훈이 가득한 역사 대작이기에 일개 개인인 독자들의 삶과는 깊은 연관성을 찾기 어려울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본서를 통해 다시 한번 내 삶과 나를 둘러싼 삶의 정황들을 돌아볼 수 있는 귀한 통찰을 얻는다. 믿음과 배반, 시기와 질투, 음해와 이간질, 끝이 없는 명예와 재물을 향한 욕심과 탐닉 등 인간 관계 안에서 너무나 쉽게 발견되는 삶의 이슈들이 고대 중국 역사의 중심축을 이루는 주제들과 놀랍게도 일치하는 모습을 보며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구나!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처자식 먹여살려야 하는 의무감을 가지고 자신의 밥 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힘 가진자에게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굽신대지만 반면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상대적 약자에게는 차갑게 돌변하여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리더들, 나에게 필요할 때는 친구지만 필요성이 사라질 때 너무나 쉽게 인간관계를 토사구팽해버리는 리더들, 자신의 기준으로 능력이 있어보이는 사람들은 따뜻하게 대함으로서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지만 자신의 기준에 못미치는 사람은 그냥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관계의 간격을 두고 그러한 사람들은 챙기지 않는 리더들, 1인자에게 잘보이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자신의 어줍잖은 권력을 사용하여 약자들을 컨트롤하는 1인자 그늘 아래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간신배 같은 리더들,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모두 다 자기 밥줄 지키기와 사람들에게 받는 명예와 인기, 자신의 자아성취를 통한 만족감을 위해 쇼를 행하는 리더들...열거할수록 토 나올정도로 역겨운 행태들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더 징그러운 사실은 이런 모습들의 사람들을 실제로 내가 경험했다는 것이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이런 시대에 살아 숨쉬는 것 자체가 고문이다.

그러나 본서를 통해 깨닫게 되는 반전 교훈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한순간에 나 또한 위의 나열한 모습의 사람으로 분해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뼈저린 자각이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에게 이미 나도 저런 흉칙한 괴물의 모습으로 평가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태후, 장손황후와 같이 자신들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채 낮아지고 또 낮아지는 삶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잊혀져야 하고, 처절하게 낮아져야하며 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내 존재감이 완전히 잊혀져야 하는 삶. 내 자아가 온전히 소멸되는 삶을 추구하는 것만이 자치통감을 관통하는 그 인간사 치열한 각축장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하는 길이다. 쉽지 않다. 그렇기에 오늘도 현대의 정치판과 인간사 모든 관계들은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난 시대상 그대로를 반영한다. <한 권으로 읽는 자치통감>을 통해 고대 중국 역사 한복판에서 혼탁한 지금의 시대를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인생의 해답을 발견하기 원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이 책을 기꺼운 마음으로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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