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내 기억으로 약 7~8년전 쯤 TV에서 방영된 <싸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한국 사회에 여전히 낯선 분야인 법의학과 법의학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였는데 당시 그 생경한 분야를 다룬 드라마의 매력에 빠져 한회도 거르지 않고 빠짐없이 챙겨 봤던 기억이 있다. 범죄와 연루된 시체를 부검하여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는 법의학자들의 활약이 꽤나 멋있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래도 망자는 자신의 죽음에 관한 마지막 메시지를 자신의 몸에 남기고 간다는 일념하에 비명횡사한 죽은 자의 몸을 부검하며 "제가 당신의 마지막 원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법의학자의 모습에서 비장함과 숭고함마저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래서 이번에 만나게 된 본서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이며 현직 법의학자로 있는 저자가 다년간 수 많은 시체를 부검하며 겪은 법의학에 관한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들려주기에 나의 독서욕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법의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소개와 저자가 어떻게 법의학이라는 낯선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한국의 법의학 역사가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고, 곧이어서 20년간 현장에서 각종 사건 사고로 인한 죽음의 의문들을 파헤친 법의학자의 살아있는 경험들을 고스란히 수록하고 있기에 독자로 하여금 책 속에 몰입하게 끔 만든다. 그러나 본서는 미국 범죄 드라마 와 같은 단지 흥미만을 전달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 아님을 2부와 3부의 내용을 통해 발견한다. 원래 본서는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국내 최고의 브레인들이 모인 서울대의 교양 수업 강의를 엄선하여 엮은 것이기에 재미+인문학적 교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선사해준다.

2부에서 저자는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생명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함을 말하며 생명 시작의 기준 등에 대해 언급하고, 죽음의 과학적 이해를 통해 뇌사나 심정지와 같은 죽음의 시점에 대한 논란, 안락사, 존엄사와 같은 연명의료와 생명 윤리, 자살과 같은 개인적이지만 사회적으로 그 파급이 전해지는 사회적 죽음 등을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부를 통해 요즘 우리 사회에서 심심찮게 듣게 되는 잘 죽는 웰다잉(well-dying)과 관련된 내용들을 통해 인생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력하게 그러나 합리적이고 부드러운 필치로 전달하고 있다.

작은 책 한권에 죽음이라는 누구나 터부시하는 주제를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담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저자가 자신의 일상 속에서 죽음을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 접하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누구나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것은 정해진 사실인데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해 너무나 두려워하고, 입밖에 내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금기시하고는 한다. 요즘 새롭게 건축되는 곳은 조금 덜하지만 예전에만 해도 오죽하면 아파트나 건물 엘리베이터에 4층 대신 F층 이라고 써놓는 경우가 있었겠는가? 이런 사소한 것 하나만 봐도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보다는 마냥 타자화하고 싶은 내면에 숨겨진 의식을 감출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본서의 저자가 대놓고 죽음이라는 주제를 수면 밖으로 끌어올려 공개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것도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아닌 죽은 시체를 부검하는 법의학자의 시선으로 본 죽음은 독자들로 하여금 죽음을 더욱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기에 충분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내용은 생명연장을 위한 연명의료에 관한 저자의 고찰이었다. 말기암 환자나 더 이상의 의학적 처치가 무의미한 중환자들에 대한 연명의료거부에 대한 내용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의 죽음을 인간답게 준비하고 인생의 마지막을 의미있게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나 또한 동의한다. 우리 사회는 평생토록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했던 사람에게 삶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왜 그 기회를 빼앗아가는가? 라고 반문하는 저자의 외침에 온전히 동의하게 된다. 죽음을 직감하고 이제 자신에게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낄 때 의미없는 연명의료적 처치가 아닌 사랑하는 가족, 친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짓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꿈꾸는 웰다잉 아닐까?

나는 잘 먹고 잘 사는 것 하나에만 집중하는 웰빙의 그 동물적 허망함에 비하면 사람답게 잘 죽는 웰다잉 속에서 더 깊은 인간다움을 발견한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기억하고 준비하는 삶이야말로 삶의 참된 가치와 소중함을 잊지 않는 지름길이다. 잘 죽기를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선행 조건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덧붙여 저자는 본서의 마지막에 2045년, 죽지 않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바람일 뿐,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성경에도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라고 하지 않는가? 불사를 위해 몸부림쳤던 중국의 진시황제도 죽었고, 그 많은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도 결국에는 죽었다. 우리는 이제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 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은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살다가 인생이라는 연극의 무대에서 아름답게 퇴장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한다. 나의 죽음이 타인의 손에 원치않게 조정되어지고 조율되어지는 일보다 더 비극적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다양한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도하며 달려온 평범한 법의학자의 목소리로 들려지는 본서의 내용 하나하나에 독자들은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