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5
노자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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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들로부터 신년 모임의 의미로 아주 근사한 뷔페 레스토랑에 초대받아 참석하게 된 시간이 있었다. 1인당 식대가 보통 서민들이 왠만하면 쉽게 갈 수 없을 정도의 매우 값비싼 음식점이었는데 입장하고 나서 테이블에 진열되어 있는 음식들을 둘러보는 순간 역시 헉!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의 기가막힌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굶주려 한껏 예민하게 고양된 손님들의 미각과 시각, 청각은 눈앞에 펼쳐진 온갖 산해진미들의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현란한 몸짓을 통한 유혹의 손길 앞에 점점 더 격앙되어져 간다. 일반적인 뷔페 레스토랑과는 음식의 종류와 격이 다르다는 느낌이 강하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무렵 어느새 내 손에는 접시 가득 갖가지 다양한 음식들이 차츰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 이후의 상황은 더 이상 묘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나와 일행들은 식욕이라는 본능에 충실하며 미친듯이 마구마구 음식을 쓸어담는 오직 단 하나의 임무에 묵묵히 충실할 뿐이었다. 그러나 항상 배불리 먹고 나서 그 포만감에 한동안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부른 배를 두드리지만 이내 몰려오는 이 알 수 없는 허탈함과 마치 굶주린 짐승이 식욕의 본능을 채우기 위해 몸부림친 듯한 존재의 저급함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러는 와중 너무나 유명한 <도덕경>을 통해 고전의 숲에서 '노자'를 만난다. 도덕경은 기원전 약 580년경 춘추전국시대 가운데 진나라에서 태어난 노자에 의해 쓰여진 동양 사상의 최고봉을 이루는 고전이다. 도가 학파의 창시자로서 그의 저서 도덕경은 도경과 덕경의 총 81편으로 구성되어 노자의 정치, 동양철학, 병법, 양생의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 보통 흔히들 공자의 <논어>, <주역>과 더불어 동양 사상에서 최고로 여기는 위대한 저작으로 손꼽는다.

도덕경을 통해 노자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바로 무위(無爲)와 자연(自然)이다. 중고교시절 도덕 수업 시간에 졸지 않고 잘 경청한 독자라면 아마 노자와 도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알고 있을 것이다. 공자가 인의예지를 숭앙했다면 노자는 무위, 자연을 주창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흔히들 노자의 도교가 강조하는 무위와 자연의 개념을 살짝 오해하여 노자의 주장이 마치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원시적인 삶을 살아갈 때 인간 세상 속에는 평화와 행복이 깃들 수 있다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들은 그의 저서 도덕경을 꼼꼼히 정독하게 될 때 지금껏 우리가 배우고 알고 있었던 노자에 대한 오해와 도교에 대한 혐의를 말끔히 씻어줄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와 자연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손놓고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현실 속에서 사람들을 어렵고 힘들게하며 비참하게 만드는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모든 관습과 제도, 법령, 욕망, 철학적 사유 체계에 대한 적극적이고 가감없는 비판이며 대안인 것이다. 인간 세상의 불행은 무엇인가 자꾸 사람들에게 인과 예라는 미명하에 멍에와 굴레를 씌우는 강제성 가운데서 잉태된다. 유한한 유무형의 자원에 대해 인간들은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을 얻을 때만이 인간으로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며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정된 자원에 대한 끊임없는 탐욕과 얻지 못한 명예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갈망이 불러 온 것은 인위적인 제도이며 관습이고, 철학이다.그렇기에 노자는 무위정치를 주장하며 자연에 순응하며 겸양과 청정 등 인간이 자연스러움의 도를 추구할 때 그것은 윤리적인 덕으로 흐르게 될 것이며 결국 이상 정치의 현실에 다다른다는 그만의 깊은 철학적 사유를 설파한다.

중국인들은 공적 사회 속에서는 유교의 가르침을 숭앙하고,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는 도교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한다. 그만큼 유교적 가르침은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추구해야 할 인의예지의 정신이 명확하다는 것이며 도교적 가르침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자기수양에 있어서 더 확고한 사유체계라는 점이다. 공자의 <논어>도 읽어보았고, 노자의 <도덕경>도 접해보며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귀중한 가르침 속에서 그래도 개인적인 성향상 내게는 노자의 도교적 가르침이 더 마음 속 깊이 와닿는다. 어찌보면 욕심과 탐욕을 비우고 자연의 순리를 그대로 따르는 삶의 객관성을 유지하는 노자의 가르침은 일견 현실도피라는 누명을 쓰고 있지만 결국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의미있는 개조야말로 전체 인간사회의 참된 변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이해는 어찌보면 공자보다는 노자가 더 탁월한 혜안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탐욕과 욕심을 버리는 것, 자연의 순리에 겸손히 적응하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이라는 노자의 가르침을 배우며 본 서평의 서두에 밝힌 나의 일화가 떠오른다. 식욕으로 대변되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미친듯이 음식을 쓸어 담았던 내 자신의 짐승같은 모습이 노자의 가르침 속에 오버랩되어 책을 읽는 내내 얼굴이 달아오르는 경험을 한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검약하고 간소한 음식, 치부를 가릴 수 있는 정도의 깨끗하고 단정 소박한 의복, 더위와 추위를 피하며 일신을 평안히 누이며 쉴 수 있을 정도의 화려하지 않은 거처로 만족할 수 있는 자족함의 정신, 명예와 지위를 갈구하지 않는 진실된 겸손함이야 말로 하나로도 더 빼앗고 움켜쥐려고 아등바등 발버둥치는 사치와 탐욕으로 점철된 아수라장같은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두고두고 가슴깊이 새겨보아야 할 귀중한 덕목이며 가르침이다.

어느 하나 흘려들을 수 없는 노자 선생의 가르침들이 마치 진주와 보석을 알알히 꿰어 놓은 것처럼 즐비한 가운데 특별히 내게 깊은 깨달음으로 마음의 심연을 울린 가르침 몇구절을 아래에 소개하며 마친다.

그런데 이 '무위'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에 순응하게 하고 사물의 객관 규율을 준수하도록 돕는다. p27

부귀와 교만은 스스로 재앙을 취하는 것이다. 공을 이루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p46

진흙을 빚어서 그릇이 만들어진다. 그릇에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그릇의 쓰임새가 있게 된다.(중략) 그러므로 '유有'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고, '무無'는 쓰임새가 있게 한다. p52

총애와 사람들의 인정, 존중...기실 이러한 것들은 단지 내가 살아가는 데 부가적으로 붙은 것일 뿐이다. (중략) 총애와 모욕 모두 결국 나 자신이 아닌, 외부의 요인에 지나지 않는다. 모쪼록 살아가면서 외부 요인에 휘둘리지 않아야 할 일이다. 그것은 삶의 주인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본말전도(本末顚倒)되어 노예로 예속되는 길일뿐이다. 만일 우리가 총애든, 인정이든, 모욕이든, 그러한 외부적 요인에 좌우되지 않게 된다면, 그러한 부차적 요인들에 전혀 개의할 필요가 없이 진실로 독립적인 인간으로서의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p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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