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그 개념의 역사 - 모든 인간은 세계관적 존재다! 칸트 이후 최고의 지적 담론
데이비드 노글 지음, 박세혁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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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넘은 오래 전 한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선박을 개조해서 병원시설을 갖추고 아프리카의 후진국과 개도국을 방문하여 무상으로 의료 수술등으로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참으로 값진 일을 하는 기독교 병원선박이 있다어느 날 그 배에 승선한 한무리의 기독교 선교팀이 정박해 있던 어느 아프리카 내륙 부족으로 복음 사역을 위해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참으로 기이한 일을 맞닥뜨리게 된다. 오랜 기근으로 먹을 것이 없어서 피골이 상접한 사람들과 앙상한 뼈를 드러낸 채 누워서 엄마의 마른 젖을 빠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선교팀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러나 그러한 슬픔도 잠시 뿐 그들을 크나큰 충격에 빠뜨린 장면이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다.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마당에서 뛰어 노는 살이 통통히 오른 적지 않은 수의 닭들의 모습이었다.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부족의 리더와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 어린 아이들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죽어가는데 왜! 저 닭들을 잡아서 먹이지 않는가? 라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답변 한마디는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장면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 닭들은 우리의 부족신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해야 할 제물들이다. 그렇기에 설령 아이들이 굶주려 죽어간다 한들 제물을 잡아 먹을 수는 없다!"라는 단호한 답변이었다.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뒤로 한 채 배로 돌아온 팀원들은 그날 저녁 한술도 뜨지 못하고 아이들의 모습과 그들의 정상적인 사고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 오버랩되어 깊은 절망과 슬픔에 잠겼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실화이다. 그러면 이 메시지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아이들이 죽어도 아이들은 또 낳을 수 있다. 그러나 부족신께 드리는 제사는 멈출 수 없다는 그들의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그들의 사고와 생각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생각, 즉 세계관(Worldview)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세계관이 뭐길래! 자기 아이들의 생명까지도 하찮게 여길 수 있다는 말인가? 본서 <세계관 그 개념의 역사>는 바로 세계관이 무엇이고 인류 역사 가운데 인간의 지성을 지배했던 수 많은 세계관의 역사를 상세하게 간파한 총 분량 700페이지, 참고문헌만 100페이지가 넘는 괴물 대작이다. 읽는 내내 숨이 가쁠 정도로 그 방대한 지적 담론에 함몰되어가는 내 자신의 모습을 숨길 수 없었다.

우선 독자들은 저자 데이비드 노글 박사 본인이 기독교 세계관 전문가로서 기독교적 세계관의 관점과 틀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음을 인지해야한다. 그러나 이 책이 가진 탁월함은 기존 개신교 세계관을 다룬 책들이 가진 한정된 지식의 공간을 뛰어넘어 로마 카톨릭, 동방 정교회를 비롯해서 일반적인 철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다시 신학적인 부분까지 저자가 다루는 그 주제의 학문적 스펙트럼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방대하다는 점이다.

첫장에서 우리는 개신교 복음주의권의 세계관 사상가 제임스 오어, 아브라함 카이퍼, 프란시스 쉐퍼와 같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지성들을 만나게 된다. 슐라이어마허와 같은 감정의 신학자들의 거센 공격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오어는 "종교적 삶, 특히 교리에 대한 강조라는 독특한 성격을 지닌 기독교의 종교적 삶에 꼭 필요한 관념적 요소를 강조한다. 강력하고 안정적인 종교적 삶은 지적 확신이란 토대 위에서만 세워 질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는 마음뿐 아니라 지성도 다룬다"라고 응수했다. 이처럼 이들은 성경적 전통안에서 성경이 우리의 모든 가치 기준의 판단과 준거가 되며 기독교가 추구하는 믿음과 삶은 일시적 감정에 의해 통합된 확신이 아닌 명확한 이성과 지성의 토양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대해 그들의 모든 신학적 역량을 총동원해서 변증한다.

이후 그동안 개신교 세계관의 그늘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했던 로마 카톨릭과 동방 정교회가 가진 세계관의 개념과 특징, 역사를 다룬다. 개신교 세계관이 성경의 권위와 탁월성을 강조했다면 로마 카톨릭과 동방 정교회는 좀더 예전적이고 성례전적인 기독교 전통안에서의 세계관 개념을 발전시킨다. 이후 독자는 세계관 용어의 문헌학적 연구를 통해 임마누엘 칸트를 만나게 되며 세계관과 철학의 관계를 다루게 되는 4, 5, 6장을 통해 관념주의 헤겔과 실존주의 키에르케고르, 관점주의 니체, 학문의로서의 철학의 위치를 강조했던 후설, 정신적 틀로서의 세계관을 강조했던 야스퍼스, 존재론적 관점에서 철학과 세계관을 이해했던 하이데거와 같은 쟁쟁한 철인들의 철학 속에서 세계관의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다.

철학적 세계관의 다소 머리아픈 개념을 넘어 독자는 이제 세계관이 자연과학, 사회과학과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고 발전해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토마스 쿤, 프로이트, 융, 칼 막스, 엥겔스와 같은 패러다임, 심리학,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주제를 통해 세계관이 각 분야에서 어떠한 의미로서 연결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데 한정된 서평을 통해 그 내용을 전부 열거하기는 쉽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본서를 통해 저자 데이비드 노글 박사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정신과 사고 체계의 근간이 되는 무형의 요소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세계관임을 강조한 것이며 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기초로서 세계관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며 그것이 왜 인류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지 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서평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패턴을 결정하는 그 보이지 않는 틀이 바로 세계관이며 사람은 무슨 세계관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본서를 통해 그 세계관이 인류 지성의 역사 속에 살다간 위대한 성학들을 통해서 어떠한 과정을 거치며 발전되어 왔는지 독자는 한눈으로 살펴 볼 수 있는 위대한 지적 자산이 베푸는 시혜를 누릴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 정신이 지배하는 지금의 세대는 보이지 않는 세계관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자신의 사고와 가치관이 이미 정립된 성인들은 물론이거니와 특별히 아직 자신 스스로가 생각하고 결정하기 보다는 손에 든 스마트폰 하나로도 수백 수천의 가공할 만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타자와 외부로부터의 수동적 교육에 매몰되어 가는 어린이들과 청소년, 청년 세대의 공허한 정신세계의 빈방을 차지하기 위해서 지금도 수 많은 종류의 세계관들이 격돌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저자가 기독교 세계관 전문가이기에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기독교 세계관이 다루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성경적 절대권위에 근거한 기독교 세계관의 탁월성이 절대진리는 없으며 오직 상대적인 것만이 나이스하다고 외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 조류속에서 새로운 세대의 텅빈 사고의 방을 어떻게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채울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한 흔적 또한 역력하다.

자원은 유한하고 경쟁자는 넘쳐나는 이 좁은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에서 남을 짓밟고 일어나서라도 승리하고 쟁취하라는 세계관이 교육계를 점령했다면 이 사회의 미래는 어둡다. 그러한 세계관에 노출된 자녀들은 자기 밖에 모르는 극도로 이기적인 성인들로 성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며 이러한 모습은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 같이 자신의 아이들이 죽더라도 자신들의 신에게 바칠 제물은 결코 잡아 먹을 수 없다고 말한 부족민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모습이다. 또한 이데올로기적 세계관이 다른 이들을 배척하고 자기들의 국가와 민족, 인종, 사회 공동체만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틀을 잡는다면 그것은 제 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의 600만 유대인 대학살, 크메르 루즈 폴포트 정권의 캄보디아 킬링필드 대학살과 같은 집단적 광기로서 드러날 것이 자명하다.

생각은 결과를 낳는다! 결국 세계관의 이슈는 인간 영혼과 정신에 대해 뺏을 것인가? 빼앗길 것인가? 의 문제로 귀결된다. 내용이 워낙 방대하여 읽으면서 뿐만 아니라 서평을 쓰는 지금도 얼마나 숨이 가쁜지 모른다. 머릿 속에 그 방대한 내용을 정리해서 서평으로 풀어놓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저자가 쏟아내는 그 폭포수같은 지적 담론 속에 빠져 죽고 싶지 않았기에 정신줄을 놓치 않으려 아등바등 애를 썼다. 오랜만에 잠든 뇌를 깨우기에 충분한 묵직한 저작 한권으로 1주일 넘게 지난한 지적 통증과 함께 역설적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위대한 저작을 펼쳐 낸 저자의 천재성에 박수를, 그리고 그의 학문적 성실함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기독교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의 한획을 그은 지적 유산의 거장들을 통한 세계관의 개념을 파악하기 원한다면 단연 이 책은 최고의 저작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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