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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문장 수업 - 하루 한 문장으로 배우는 품격 있는 삶
김동섭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0월
평점 :

라틴어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이제 사용하지 않는 사어(死語), 카톨릭의 언어, 식자층이나 사용하는 학문의 언어와 같은 이미지다. 이 책은 이렇게 특정 계층의 언어라고 생각하며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접하기에는 너무나 멀고 생소한 라틴어에 대한 두터운 편견을 조금이나마 불식시켜준다. 유럽의 언어, 그중에서도 로마의 언어라고 불렸던 라틴어는 지금의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 그리고 포르투갈어의 근본 뿌리가 된 언어로서 그 역사가 매우 깊은 고대어 중 하나이며 매우 논리적인 특징을 갖기에 학술적이며 그 문체의 수려함으로 인해 예술적인 아름다운 매력을 지닌 언어이다.
혹자는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만 라틴어의 명문을 접하게 될 때 앞선 두 언어에 버금갈 정도로 문장과 문체의 세련됨에 공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이렇게 멋진 언어인 라틴어의 명문장들을 통해 라틴어 어휘를 분석하며 대표적인 명문들의 탄생 비화를 소개하기에 매우 흥미롭고 유익하다. 책을 펼치면 눈에 익은 많은 라틴어 문장들이 보인다. 책에서건 매스컴에서건 너무나 쉽게 보고 들었던 문장들의 그 기원이 라틴어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 독자는 라틴어가 지금은 한정된 장소와 사람들에게서만 사용되어지는 한계성에 비해 우리의 일상 속에 참으로 널리 퍼져 있고, 스며들어 와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특별히 라틴어는 정치, 법률, 의학, 예술, 종교, 철학 등 사회를 구성하는 인문, 과학의 영역 속에 매우 깊이 관여되어 사용되고 있는 언어임을 볼 때 라틴어의 문화적 우수성과 탁월함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으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문장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Festina lente(페스티나 렌테 : 천천히 서둘러라) 카이사르의 후계자였던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가 공화파인 브루투스 일당에게 살해 당한 후 후계자로서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차근차근 세밀한 준비와 더불어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가 되어서는 과감한 결단을 시행한 인물이다. 정적들에 의해 비명횡사한 카이사르 사후, 제국의 기초를 튼튼히 놓는 일에 있어 아우구스투스는 차분하면서도 치밀하게 그리고 과감하고 재빠른 결단을 통해서 로마 1인자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튼튼히 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제국 융성의 기틀을 다잡아 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위의 문장은 어찌보면 매우 역설적이고 반어법적인 의미로서 다가오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속뜻은 자신의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열심히 그리고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정작 그 결과로서 얻게 되는 중요한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서는 망설임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쳐버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명문이다.
두번째로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익히 들어서 그 탄생 비화를 알고 있는 명문이다. Memento mori(메멘토 모리 : 죽음을 기억하라) 옛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들이 로마 시내로 개선행진을 하게 되는데 이 때 행렬의 맨 뒤에서 2~3명의 노예들이 뒤따르며 큰 소리로 목청껏 외치는 소리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 소개하는 Memento mori(메멘토 모리)라는 문장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이 문장을 노예들로 하여금 소리높여 외치게 만든 이유는 지금은 당신이 개선장군으로 천하를 다 얻은 것처럼 의기양양해하지만 그래봤자 당신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 겸손해라! 라는 의미이다.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이 문장의 숨은 의미 중에는 당시 큰 싸움에서 승리한 후 군단을 이끌고 다소 거만한 모습으로 개선하는 장군들의 쿠데타 위협을 염려한 황제들이 개선장군들에게 이러저러한 혐의를 씌워 사형시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이러한 '메멘토 모리'의 외침이 장군들로 하여금 현재의 상황에 도취되지 말고 겸손히 황제 앞에서 자신을 낮추라는 각성의 기능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겸손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만은 진실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는 자신만은 평생 죽지 않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여기며 남보다 가진 것 좀 있다고 남보다 힘 좀 있다고 뻣뻣한 목을 하고, 극도로 교만해져서 사람들을 짓밟고 깔아뭉개며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짐승같은 인간들에게 크나큰 교훈으로서의 깊은 울림이 있는 명문이다.
책을 통해 수록된 모든 문장 하나하나가 참으로 아름답고 수려하다. 인류 역사 가운데서 라틴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매우 광범위하며 하나의 언어가 미치는 영향력 또한 놀랄만큼 방대하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사회 문화 각계 각층의 다양한 영역 속에서 라틴어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부분이 없을 정도로 이 언어의 쓰임새는 다방면에 걸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의 언어가 전 세계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그 언어의 문화적 우수성을 의미한다. 지금 현재 세계 공용어라고 하는 영어의 뿌리가 라틴어라고 하니 우리는 이 라틴어를 다시 볼 수 밖에 없다. 로마라는 당대 유럽 최강의 나라가 사용한 언어로서 당시 시대상과 문화를 고스란히 그 말 속에 간직한 라틴어가 지닌 그 높은 문화적 우수성과 무형의 정신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한권의 책을 통해서 느껴보기 원한다면 본서는 교양 라틴어 소개 도서로서 손색이 없다.